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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줌싸개

by 가을산 Feb 23. 2025

   용변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초등학생만 ‘나, 오줌 좀 싸고’라 말하는 게 아니다. 고등학생도 ‘지금 똥 싸고 있어.’라 하고 반듯해 보이는 청년까지 ‘여기서 오줌 싸고 가자.’ 고 말한다.


   카페에 있는데 가까이서 ‘오줌 좀 싸고 올게’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힐끗 보니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다. ‘왜 계획적으로 오줌을 ‘싸’지?’ 뒤의 탁자에서는 이런 말이 들린다. "우리 남편은 오줌 쌀 때마다 변기를 너무 더럽혀. 냄새도 나고 오줌 얼룩이 지저분하게 묻어있는 걸 보면 구역질이 나. 차라리 앉아서 싸면 좋겠어." ‘변기까지 가서 누는데 왜 싼다고 하지?’ 대략 생후 2년 정도면 해결하는 대소변 가리는 과제를 이 어른들은 여태 해결하지 못했을까? 설마.


   아들이 네댓 살쯤 되었을 때 속옷을 사러 갔는데 그동안 입혔던 것과 달리 옷의 앞부분이 막혀 있었다. 왜 그렇게 되어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젊은 남자 판매원이 ‘요새는 다 옷을 내리고 오줌을 쌉니다. 어른 것도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오줌을 누는 일을 싼다고 말하는 걸 그 때 처음 들었다. 오래전 일이니 사람들이 오줌을 누지 않고 싼지도 오래되었겠다.


   요즘은 아이도 어른도 오줌을 누는 행위를 싼다고 하는 것 같다. 어린 자녀에게 용변 가리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부모까지 그랬다. 어른인 자신도 오줌을 ‘싸’면서 아이가 쌌다고 혼내는 것도 이상하고 ‘여기서 싸야지’라는 말도 이상하다. 쌌다고 혼났는데 거기서 ‘싸’라니 아이도 얼마나 헷갈리겠는가? 엄마에게 동생이 생긴 걸 알고 오줌을 가리던 애가 자꾸 오줌을 싼다고 걱정하는 글을 SNS에서 읽었는데 ‘자기 전에 반드시 오줌을 싸게 해도 매일 밤 오줌을 싼다’고 하는 게 아닌가. 똑같이 ‘싸’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오줌을 싼다고 말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오줌은 누는 게 아니고 ‘싸’야 하는 건가, 혹시 그게 표준말로 정해지기라도 했나 싶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오래된 종이 사전이 아니라 최신으로 업데이트된 온라인 사전이다. 거기에는 오줌을 싼다는 것은 오줌을 참지 못하거나 제대로 가리지 못하여 이불이나 옷 등에 누는 행위라고 분명하게 나와 있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자신의 의지로 오줌을 누면서 싼다고 하는 건 역시 어법에 맞는 말이 아니었다. 사전에는 또, 어린아이에게 ‘빨리 화장실에 가서 오줌 싸고 와’처럼 ‘누다’를 써야 할 자리에 ‘싸다’를 쓰면 속된 느낌을 준다고 적혀 있었다. ‘속되다’는 사전에 ‘고상하지 못하고 천하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속된 말을 열심히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중병으로 입원한 환자도 아니고 치매에 걸리지도 않아 화장실에 가서 대소변을 잘 처리하고 있는데 왜 자기 입으로 똥과 오줌을 싼다고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잘 먹고 잘 싸면 건강하다고 하는데 이 또한 아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면 잘 먹고 잘 눈다고 해야 맞다. 집에서나 병원에서나 대소변을 스스로 보지 못하는 병자와 노인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혼자 화장실 가는 게 소원인 나는 절대 잘 ‘싸’고 싶지 않다. 끝까지 잘 ‘누’고 싶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은 ‘똥’이라고 한다. 그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게 보는 그림책은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이다. ‘똥’ 소리를 한 번만 들어도 그렇게 웃음이 나오는데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누구 똥인지를 알아내려는 동물들의 ‘똥’ 소리가 수십 번은 나오니 어찌 아니 재미있겠는가.

  하지만 언제까지 똥, 오줌 소리만 하고 키득댈 수는 없다. 똥, 오줌도 못 가리던 아기는 쑥쑥 자라서 수많은 훈련 끝에 똥, 오줌 누는 건 일도 아닌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된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 와 다시 똥, 오줌을 싼다니 이 집단적 퇴행 현상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일어났을까?


   사람은 틀에 박힌 생활을 힘들어한다. 하루 종일 학교 의자에 붙들려 앉아 입시와 진로 부담을 안고 공부하는 중고생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바르고 정제된 언어를 써야 하는 직업군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종일 업무용 언어를 쓰다가 집에 오면 무장을 풀어놓고 편하게 말하고 싶다. 격의 없는 친구들과 거친 말을 하고 아무 말이나 마구 떠벌리며 폭소를 터뜨리다 보면 첩첩이 쌓인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다. 규격에 맞추듯 얌전한 느낌이 드는 ‘오줌을 눈다’는 말 대신 ‘오줌을 싼다’고 하는 것도 그런 해방감 때문일까? 그래도 하필이면 다 큰 어른이 오줌싸개 되기라니!


   어른 된 우리는 더 이상 똥이라는 말이 그렇게 우습지 않다. 똥, 오줌을 입에 올리는 모습이 귀엽지도 않다. 똥싸개, 오줌싸개가 된다고 해서 부모가 돌보아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리는 천부당만부당하다. 그러니 똥, 오줌을 누면서 '싼다'는 말은 그만하자. 요즘은 외국인의 출입도 빈번한데 온 국민이 오줌싸개라면 국가적 망신 아닌가. 늘 격조 있는 언어를 쓰지는 못해도 듣기에 거북하고 속된 말은 되도록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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