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몇 해 전 99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100을 채우지 못해 아쉽지만 어머니는 아직 살아계신다. 나와 우리 아이들의 대화 속에.
어머니는 수원 근처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머니의 말은 이모나 외삼촌들과도 좀 다르고 독특했다. 큰 며느님의 고향인 충남 말씨와 호남 지방의 사투리가 섞인 듯도 하다.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 말투를 아주 재미있어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쓰시던 그게 뭐여, 이게 뭐하는 거여, 자는 거여, 어디로 가는 거여, 같은 말을 빈번히 따라 썼다.
아녀, 몰러, 우뎅이(위),는 딸이 지금도 매일 쓰는 말이다. 비쩍 마른 딸아이를 두고 어머니가 그래도 뚱뚱한 것보담은 나아, 하신 데서 나온 ‘~보담은’ 이나, 이게 저것보다 ‘훨썩’ 낫다는 말은 아들이 잘 쓰는 말이다. 할머니 특유의 말투를 쓰면 재미도 있고 이해도 더 잘 되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아들이 ‘할머니가 그러셨어. 가려운 데 다 긁다가는 제사 못 지낸다고.’ 하며 일어나 행동을 개시했다.
어디 나갈 채비가 한없이 이어질 때 일찌감치 준비하고 소파에 정자세로 앉아 기다리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인 '신주 단지 개가 다 물어간다' 나 '지는 게 이기는 거여', '돌부리 차면 발부리 아픈 법이여' 같은 말은 이제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되었다. '속을 닦아야 사람이 되는 거여'도 종종 쓴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흔히 ‘할머니 전용 단어’가 튀어나와 웃곤 한다. 웃으려고 일부러 어머니(할머니)가 잘 쓰시던 낱말이나 말투를 쓰기도 한다. 풀 방구리 쥐 드나들듯 왜 이렇게 들락거리냐, 김치에 말국(국물)이 별로 없네, 그보담은 이게 좋지. 그렇게 하니 훨썩 낫구먼, 하면서.
어머니의 일곱 자식과 열다섯 명의 손주들 가운데 나와 아이들만큼 자주 어머니를 소환하는 사람이 있을까? 시댁 식구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어머니 얘기가 나오지만 모이지 않을 때는 어쩌다 혼자 생각하는 자손은 있을지언정 우리 식구처럼 일삼아 어머니 말투를 쓰며 어머니를 살려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식구 중에도 정작 어머니의 아들인 남편은 이런 대화에 끼어들 새가 없고 있더라도 별 감흥이 없는지 나와 아이들만큼 재미있어하지도 않는다. 어떤 말은 어머니가 잘 쓰시던 말인지도 몰라 아이들과 나만 어머니 고유의 말투를 마르고 닳도록 쓰고 또 쓴다.
자부심이 강하고 강직한 성품의 어머니가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지금은 어머니 말투를 듣거나 떠올리면 항상 웃게 된다. 어머니가 거의 날마다, 때마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신다.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오래 살아계실 것이다.
몇 해 전에 인기 있던 영화에서 ‘납득이 안 가, 납득이.’ 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던 남자 배우는 ‘납득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크게 유명해졌다. 신청곡을 들려주는 커피숍이 있었을 때 항상 같은 노래를 신청하라는 걸 연애 비법으로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 언제 어디서나 그 노래가 들리기만 하면 자신을 떠올리게 될 거라고. 그럴 것 같다.
오랜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신 손위 시누이가 계시는 추모 공원에 갔을 때다. 여러 분들을 지나 형님 자리까지 걸어가자면 가로 눕혀진 묘석에 쓰인 글도 절로 눈에 들어온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너무 그립습니다, 한없이 사랑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수없이 많은 묘석에 쓰인 글이 다 비슷했다. 몹시 고심하고 새긴 글이겠지만 좀 다르게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같이 간 아이들더러 생전에 자주 하던 말을 쓰면 어떨까 했더니 아들이 바로 엄마는 ‘양치질했니’로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게 엄마다운 말이고 그래야 엄마한테 온 거 같을 거라고. 딸은 ‘방 정리했니? 빨리 자라.’ 는 말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쓸 만한 말을 찾아낼 때마다 깔깔거리며 재미있어했다. ‘화장실 청소했니’도 써야지, 하며 꽃다발이 스산한 수백 개의 묘지 가운데서 나도 웃었지만 쟤들도 제 엄마가 반드시 저희를 떠나갈 걸 아는구나, 나도 그럴 걸 아는구나 하는 마음에 서글프기도 했다.
이왕이면 좋은 말로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는데 나는 평생 아이들이 내놓는 저런 말밖에 하지 않았던가, 어머니처럼 지혜가 담긴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지만 늦었다. 처음부터 다시 살지 않고는 불가능하리라.
훗날 아이들은 무심결에 ‘할머니체’로 말하다가 같이 그 말투로 이야기하던 엄마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내가 하던 말도 떠올리게 될까? 양치질했니, 얼른 자라, 같은 말이라도. 그 하찮은 말이 사랑의 말이었음을 그때쯤에는 알까? 나도 어머니처럼 종종 아이들이 불러내어 죽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절대 풀릴 수 없는 궁금증을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