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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지

by 가을산

나는 말을 못 하는 아이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선생님께 절대로 말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그리도 어려웠을까? 가족이 아닌 남이고 집도 아닌 학교에서 잘못하면 혼내는 무서운 어른, 이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의 정의였다. 집에 온 손님도 보고 웃을 뿐 말로 인사를 못 했으니 무서운 선생님께는 오죽했으랴. 요즘처럼,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엄마니까 무슨 일이든 다 말해도 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인 그날도 그랬다.

쉬는 시간에 무얼 했기에 요의도 느끼지 못했을까? 짝이나 뒤에 앉은 아이와 지나치게 놀이에 몰두하느라 깨닫지 못했던가?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야 오줌이 마렵다는 걸, 그것도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정도라는 걸 알았다. 당장 화장실로 가야 했다. 가고 싶었다. 그런데 한창 수업 중인 선생님께 말하기가 무서웠다.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면 쉬는 시간에 안 가고 뭐 했느냐고 꾸중할 것 같아서였다. 순순히 갔다 오라기보다 ‘쉬는 시간에는 뭐하고? 참아!’ 하는 선생님이 더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참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발표력도 없는 내가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께 손을 들어 그 말을 하려면 전 생애를 걸어야 할 터였다. 걸었어야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혼날 각오를 하고서라도 말을 했더라면 더 나은 생이 되었을 것이다.

배가 단단해졌다. 아랫도리에서는 금방이라도 물을 쏟을 준비가 된 듯한데 힘을 주어 참고 있으려니 배가 아팠다. 배를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았다. 선생님이 하는 말이 들리지 않은 지 오래였다. 더 참을 수 없다, 이제는 말하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입에서는 말을 내보내지 못했다. 손을 들지도, 선생님을 부르지도 못했다. 다만 참으려고, 참으려고만 했다. 1초도 더디게 흐르는 시간이 빨리 가기만 기다리면서.

행여 말하지 않아도 선생님이 알아봐 줄까, 바랐다. 그러나 얼굴이 노래지고 불편한 기색이 완연했을 나를 80명 가까운 아이들 가운데서 선생님은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홀로 노력에 노력을 더했다. 전장에 홀로 살아남아 적과 싸운들 그토록 외롭고 힘들까?

참아 보려고 죽도록 애를 썼지만 압력을 이기지 못한 수문이 기어이 열리고 말았다. 뜨뜻한 물이 바지에 젖어든 다음 다리 쪽으로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마침 선생님이 재미있는 말을 했는지 아이들이 하하하, 웃었지만 처참한 지경에 빠진 몸에 집중하던 나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앞을 보지 않으면 안 되니 똑바로 얼굴을 들고는 있었지만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고 싶었다.

오래 참은 만큼 양이 많았던지 의자 밑에까지 오줌이 흘러 있었다. 그걸 보고서야 선생님은 알아챘다. 내 주변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나의 상태를 알고 난 다음이었다. 바지의 엉덩이께가 젖어 몸에 붙어 있는데 모를 수가 있으랴.

마지막 시간이었던지 청소 분단이 청소를 하고 다른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선생님이 나를 보고 놀란 얼굴로 ‘ooo 왜 이래?’라고 했다. 선생님의 질문에는 반드시 대답하는 나였지만 그 물음에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나왔어요.’? ‘선생님께 말하는 게 무서워서요’, ‘말해도 안 보내주실 것 같아서요’, 이들 중 어느 것이 정답이었을까?

선생님의 높은 말투에 다른 데서 청소하거나 집으로 가던 아이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죄인처럼 교실 바닥을 보고 서 있었지만 누군가가 옆의 아이에게 귀엣말하는 게 다 보였다. ‘쟤 오줌 쌌나 봐’ 했겠지.

한참 뒤에 <TV 문학관>에서 ‘와룡선생 상경기’를 보았다. 시골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퇴임한 선생님이 서울에 가서 성장한 제자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선생님(이일웅 분)이 3,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서너 명을 교실 바닥에 꿇어 앉히고 손을 들고 벌서게 하는 장면이 나왔다. 남녀 아이가 섞여 있는데 그중 한 여자아이가 오줌을 쌌다. 벌서다가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100% 이해한다.

얼굴이 벌게진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아이 옆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는 걸 본 선생님은 바로 상황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양동이에 물을 담아 와서는 이놈들 또 그럴 거야, 하고 짐짓 호통을 치며 아이들이 꿇어앉아 있는 쪽으로 물을 확 쏟아버린다. 잘못했으니 물세례도 받을 만하다는 듯이.

오줌 싼 아이는 다른 아이가 알지 못하도록 모두의 바지를 젖게 만든 선생님이 얼마나 고마웠으랴. 어른이 된 그 아이(서승현 분)는 상경한 선생님께 그때 그 오줌싸개가 자기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 영화를 보고서야 내가 오줌을 쌌을 때 선생님이 하신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생각지 못한 일이라 본인도 놀랐겠지만 높은 목소리로 확인 사살하여 더 많은 아이가 알게 하는 대신 선생님으로서 해줄 일은 없었을까? 조용히 셔츠라도 가져다 입히거나 허리에 둘러주면 좋지 않았을까? ‘다음에는 화장실 가고 싶으면 공부 시간이라도 괜찮으니 꼭 말해.’ 하면서. 그러나 선생님은 자신의 놀람만 큰 목소리로 표현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아홉 살짜리 나는, 아홉 살이나 된 나는 누가 봐도 엉덩이가 젖은 걸 알 수 있을 바지를 그대로 입고 척척함을 참으며, 치욕을 견디며 집으로 갔다. 같이 간 친구의 이야기는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매일 다니던 동네는 낯설어 보이고 집까지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누구는 아홉 살에 인생을 알았다는데 나는 아홉 살에 학교에서 오줌을 쌌다. 인생은 몰랐다. 이제는 안다. 아홉 살에 교실에서 오줌을 싼 게 내 인생이라는 걸.

그때의 나에게 선생님이 해주지 않았던 말을 해주고 싶다.

“오래 참으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어. 어른이라도 그래. 그러니까 창피해하지 마. 넌 오줌싸개가 아니야. 바보도 아니고. 만약 누가 널 놀리면 말해. 내가 혼내줄 테니까.”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 주었다면 죽도록 부끄럽고 비참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을 텐데. 그랬다면 선생님은 나에게 이야기 속의 와룡 선생님처럼 영원히 고마운 선생님으로 남았을 텐데. 좋은 기회를 놓친 선생님, 안 됐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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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활자화한 적 없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일이 <학생 시대>의 마지막 글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기억나지 않으면 없었다고 하고 싶은 과거가 있다. 그러나 없었다고 하고 싶은 일은 더 또렷이 기억나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선생님께 따귀를 맞고 빵점을 받고 교실 걸상에서 오줌을 싼 일도 그렇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고해성사도 아닌데 뭐하러 치부를 드러내나. 그런데 썼다. 글을 쓰는 한 절대 쓰고 싶지 않은 글도 결국 쓰게 되는 것일까?

어떤 형식이든 글은 쓴 사람의 자서전이며, 영광뿐인 자서전은 없다. 기억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도 엄연히 내 인생을 이루는 조각들이다. 오욕일지언정 사실대로 쓴 뒤 그걸 밟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선생님의 놀란 표정과 멸시하는 얼굴,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발견한 아이들의 모습과 먹잇감이 된 치욕의 순간들을 최대한 자세하게 그리려고 했다. 혹독한 응시로 그곳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온기를 찾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학생 시대>를 통해 초, 중, 고등학교 주변과 교실 풍경을 많이 그렸다. 주요 등장인물은 언제나 친구와 선생님들이었다. 학생 시대는 곧 선생님 시대요, 친구들 시대였다.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학교란 상상할 수 없다. 철부지 아이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길목마다 나타나 역할을 다한 선생님과 친구, 선배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들 덕분에 내 학생 시대는 풍요로웠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그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


교실 뒤에서 봐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재미있었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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