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다.
국어 교사였던 언니가 학생들과 세종 대왕릉에 소풍 갔을 때 같은 과목 담당 선생님들을 불러 모으며 우리가 이분 덕에 밥 먹고 사니 능 앞에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자, 했다던 일이 생각난다.
왕릉에 누워계시는 세종 대왕님은 자신에 관해 쓴 책의 제목이 ‘킹 세종’이라 하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세종의 ‘리더쉽’을 배우자는 말에는 어떤 생각이 들까? ‘킹왕짱’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사람들에게 혹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세종 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오랜 연구 끝에 한글을 창제한 때는 1443년, 반포한 해는 1446년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건 1492년이었다. 우리는 지금 580년 전 우리나라가 독창적인 글자를 만들었을 때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나라의 언어를 배우느라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다. 자연스럽게 익히게 한다고 갓난아이 때부터 이중언어 어쩌고 하며 야단법석을 떤다. 영어 발음하기 쉽게 한다고 아이의 설소대를 자르는 광풍이 불기도 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체를 훼상할 수 없다며 머리를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겠다고 했다는 구한말 선비들이 생각났다. 고작 남의 나라 말을 잘하기 위해 자청해서 신체를 훼손하는 후손들을 그들이 본다면 뭐라고 할까? 어린아이는 전신 마취를 하고 잘라야 한다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정말 제정신인가?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니르고져 홇 배 이셔도 한자를 몰라 할 수 없는 어린 백성들을 어엿비(측은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어 사람마다 편히 쓰게 하려 했다는 세종 대왕을 우리가 어엿비 여기는 걸까? 지금 나라 백성들은 니르고저 홇 배 있으면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말한다. ‘미안해’ 대신 ‘쏘리’, ‘고마워’ 대신 ‘땡큐’라 흔히 말하고 ‘주차 좀 부탁합니다.’라 니르지 않고 ‘발레 해주세요.’ 한다. 그렇게 하는 걸 더 세련되었다고 여기는 모양새다.
언문일치 운동으로 이제 말과 글은 거의 다르지 않은데 사람들이 쓰는 우리말은 외국어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베스트지’, ‘이건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야’, ‘내가 컨펌하고 콜할게’에서 보듯 깨강정에 간간이 든 땅콩만큼만 우리말이다.
미국은 없었지만 세종 대왕은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영국이라는 나라를 알았을까? 엄청난 독서가라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나라의 언어를 직접 들어본 적도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 장차 그 언어로 우리 말이 강정에 발린 깨와 땅콩처럼 범벅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다르듯 영국과도 다른데 영어를 이렇게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우리 말보다 더 높은 지위를 주어 섬기고 살 줄은.
요즘은 아무도 회의하지 않는다. ‘미팅’을 한다. ‘셰프’는 요리사의 높임말이 된 듯하다. 많은 사람이 운동화를 신고 달리지 않고 러닝화를 신고 러닝이나 조깅을 한다. ‘러닝 크루’도 대단한 말인 양 수시로 출몰한다. 내가 ‘한글’ 프로그램으로 쓴 위의 외국어 밑에는 죄다 틀렸다고 빨간 줄이 그어져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세종 대왕은 굳이 한글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까?
만약 우리에게 한글이 없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글을 쓰고 있을까? 한자? 성격 급한 우리에게 획수 많은 한자를 일상어로 쓰기는 무척 어려웠겠다. 일본 강점기에 강제로 배워야 했던 일본어가 그대로 우리 글자가 되었을 확률도 매우 높다. 아니면 좀 뒤에, 세계화 시대라며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져 어차피 우리는 글자도 없으니 잘 됐다며 영어를 우리 언어로 덥석 끌어안고 말았을까? 그랬다면 영어로 인한 온갖 고생과 현재의 비정상적인 영어 열기는 없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글자도 없이 일제 치하에서, 정식 합방 이전에 억압, 수탈한 시간까지 쳐 40년쯤 살았다면 우리는 독립할 수 있었을까? 독립 선언서는 뭐로 쓰고? 독립하겠다면서 제 나라 글자도 없어 벗어나려는 나라의 글자, 일본어로 썼다면 얼마나 비웃음을 샀을까? ‘대한 독립 만세’도 일본어로 써야 했다면. 독립운동하는 사람들 간에 연락은 잘할 수 있었을까? 독립 의식을 드높이는 데 공헌한 순 한글로 된 독립신문도 당연히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 이름을 본 적 없으니 ‘창씨개명’ 할 것도 없이 우리는 그냥 일본어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을 것이다. 내 이름이 무슨 꼬, 라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한글날을 맞아 식구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한글날이니 외국어는 물론 외래어조차 쓰지 말고 한 번 지내볼까? 컴퓨터는 셈틀, 계란 후라이는 달걀부침, 전기 레인지는 아궁이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평소 국어 사용, 바른 언어생활을 강조해서 아이들도 말에 외국어를 섞어 쓰지 않는 편이다. 때로 ‘아, 영어 안 쓰려고 했는데. 적당한 말이 생각 안 났어.’라 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외국어를 우리처럼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는가 보다. 노크를 손 기척, 도넛을 가락지 빵, 라면은 꼬부랑 국수, 로터리는 도는 네거리라 한다니 얼마나 듣기 좋은지. 한자어도 미소를 볼웃음, 출입문은 나들문, 주차장은 차마당이라 한다니 적당한 우리말을 찾게 하는 정책을 펴는 사람들과 고심하는 그곳의 국어학자들이 퍽 존경스럽다.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진다.
그들을 따라 침대는 높은 요, 샐러드는 나물 버무림, 커튼은 창 가리개, 라 해봤다. 우리말의 절반 이상이 한자어라 한자어까지 쓰지 않기는 쉽지 않아 핸드폰은 손전화, 소파는 푹신 의자라고 하는 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북한 학자들처럼 더 고심해야 할 것 같다. 원래 있던 말을 바꿔 보는 건데도 생전 처음 본 사물에 이름을 붙이듯 재미있었다. 창조의 기쁨일까? 새로운 말을 생각해낼 때마다 같이 웃었다. 우리 집에서만 통용되고 곧 잊히기도 하겠지만 해 볼만한 일이라 종종 해보려 한다.
오래전 국문과 학생이었다. 1, 2학년 때 교양 과목은 몇 개 학과가 같이 듣는 경우가 많았다. 아주 넓은 강의실에 대여섯 개 학과가 모여 듣기도 했는데 어느 날 철학 선생님이 말했다. 채점하다 보면 영문과 학생들은 괜히 영어를 많이 쓰고, 불문과 학생들은 불어를, 독문과 학생들은 독어를 많이 쓰더라고. 마지막으로 ‘국문과 학생들은,’ 해서 뭐라고 하나 귀를 쫑긋했더니 한자를 많이 쓴다고 했다. 한 독문과 학생이 ‘데카르트(descartes)’를 ‘데스카르테스’라 썼다는 말에 폭소가 터졌다.
영문과 학생들과는 두 과씩 묶는 체육을 포함한 여러 교양 과목들을 단짝 친구처럼 늘 함께 들었다.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냈다. 축제가 가까워지자 영문과 학생들이 자꾸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강의실에 나타났다. ‘과 잠’ 아닌 ‘과 티’로 흰색 티셔츠에 ‘I love Shakespeare’라는 까만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예뻤다. 무슨 과인지 바로 알 수 있어서도 좋았다. 그걸 보고 우리 과 애들끼리 ‘우리는 아이 러브 세종 대왕, 해야겠다’ 하며 웃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게 말이나 될 소리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글을 만든 세종 대왕을 영어로 러브한다고 하다니 말이다.
아무도 임명한 적 없지만 오랫동안 한글 지킴이를 자처하며 살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만난 때문이 아닐까 싶다. 거기서 아멜 선생님은 나라를 빼앗겨도 그 나라의 언어를 잊지 않고 있으면 감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며 프랑스어는 세상에서 가장 분명하고 아름다운 언어라고 했다. 원래 국어 과목을 제일 좋아했지만 그 말에 프랑스어를 궁금해하면서도 우리나라 말을 사랑해야겠다는 의지가 강렬하게 솟았다. 시간이 흘러도 그 의지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 건 우리말로 하려고 노력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키’라고 하지만 나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문을 여는 물건을 반드시 열쇠라고 한다. ‘숍’이 아닌 가게에서 ‘블랙으로 드릴까요, 화이트로 드릴까요?’ 할 때 ‘검정이요.’ 한다. 뷰가 좋다, 보다 전망이 좋다고, 웨이팅이 많다, 대신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이런 고집에 누군가 코웃음을 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뿐이다.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아무 갈등 없이 영어를 쓰고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일본어를 가장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문과라서 데카르트를 독일식으로 데스카르테스라 한 학생처럼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기에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제일가는 언어로 자리매김하고 더 바르게, 더 아름답게 쓰고 싶다.
어릴 때 텔레비전의 사극을 보면 왕 앞에 엎드린 신하들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나 ‘통촉하시옵소서, 전하.’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여러 번 보니 그 말이 나올 때도 예측할 수 있게 되어 이제 나오겠구나, 싶으면 틀림없이 나왔다. 지금이다. 영어나 다른 외국어를 국어보다 윗길로 대접하며 국적 불명의 말을 아무렇게나 해대는 오늘, 틀림없이 나와야 한다. 세종 대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한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하지만 우리 글자를 만들어주신 걸 고마워하며 우리말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고 나 혼자만은 아닐 터라 다시 조아리며 사뢰어 본다.
‘통촉하시옵소서. 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