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엘리펀트> 上
창작(創作)이란 '예술 작품을 독창적으로 지어냄'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창작에는 주체가 존재할 것이고, 창작의 결과로 만들어진 '창작물'은 그 주체(= 창작자)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태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독창적인 창작물'은 다음 둘 중의 하나이기 마련이다.
1) 새로운 주장을 표현하는 경우
2) 새롭지 않은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그 표현 방식이 기존에 없었던 것인 경우
그런데, '일반적이지 않은' 제3의 길을 가려고 하는 창작자들이 존재한다. 그 길은 바로 '어떤 태도도 견지하지 않는 것'이다. '그게 뭐가 힘드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필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찍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시선에는 그 사람의 생각이 맺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 사람이 속해있는 사회, 그 사람이 지금껏 살아온 삶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은 불쌍하고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교육을 받아온 사람은, 장애인을 볼 때 측은한 감정이 담길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예로, 반일 감정이 심한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에서, 노인분들은 일본 문화를 향유하는 젊은 사람들을 고깝게 볼 때가 많다.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 담겨있는 생각들이 무의식적으로 삐져나와 시선에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또한, 순수한 진실로써 머무를 수는 없다. 그 또한 '누군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에 불과하다. 다큐멘터리는 취재자의 '이렇게 찍고 싶다는 욕구'와 피취재자의 이렇게 찍히고 싶다는 욕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태어난다. 예를 들어, 황우석이라는 사람의 논란이 터지기 전, 황우석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연구 성과 및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었다고 하자. 이것은 황우석을 긍정적으로 찍고 싶어 하는 방송국과, 자신을 화려하게 포장하고 픈 황우석 본인의 욕구가 일치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진실인가? 거의 연구 성과가 거짓이었다는 건 우리 모두가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진실이라는 거대한 미로 속에서, 카메라가 어떤 곳에 포커스를 맞춰 촬영하느냐에 따라,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현실은 달라진다. 취재자 혹은 창작자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진실은, 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진실이라는 미로의 개략적인 지도에 불과하다. 우리가 정말로 그 미로에 들어가서 모든 통로를 다 뒤져본 게 아닌 이상, 우리는 진실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창작물의 한계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가공된 것인 이상, 그것은 순수한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
여기서 앞서 말했던 '제3의 길'이 펼쳐진다. 이 작품들의 창작자는 자신의 창작물이 진실을 모두 담을 수 없다는 한계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관객들이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건이 하나 필요하다. 창작물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에게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해서는 안된다. 한 인물에게 초점이 맞춰진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면, 그 인물을 통해 창작자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다루게 될 두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그리고 <엘리펀트>는 아주 특이한 작품이다. 두 영화모두 실제 벌어졌던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전자는 대만 역사상 최초의 미성년 살인범을, 후자는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보통의 범죄 영화라면 사건과 깊이 관련된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관객이 그 인물에게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극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영화는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이들의 시선은 의도적으로 주관을 배제하며, 어떠한 인물에게도 감정이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사건의 원인과 의미를 해석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관객에게 넘어가게 된다. 자, 이 영화들이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서 다루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이 영화들이 어떻게 ‘감정이입의 배제’를 구현하고 있는지, 그 기법들을 먼저 살펴보자.
'클로즈업'은 관객과 극 중 인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기법 중 하나이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관객과 인물 사이의 거리이다. 관객과 인물 사이의 거리를 좁혀짐으로써, 인물들은 관객의 공간을 침범하게 된다. 관객들은 극 중 인물들이 자신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그 착각에 빠진 순간부터, 관객들은 더 이상 극 중 인물들을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이 하는 행동,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클로즈업의 반대쪽에 대응되는 기법이 롱 쇼트이다. 인물의 특정 부위(특히 얼굴)만을 프레임에 담는 클로즈업과는 달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롱 쇼트에서는 프레임에 인물의 전신이 나온다. 롱 쇼트(long short), 영어로 풀어놓자면 '긴 쇼트'인데, 대체 뭐가 길다는 것일까? 그건 바로 '관객과 인물 사이의 거리'이다. 롱 쇼트에서 인물들은 관객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앞서 말한 클로즈업 때와는 달리, 롱쇼트를 통해 관객은 인물들이 자신과 다른 세계에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인지하게 된다. 만약 영화에서 전적으로 클로즈업을 배제한 채 롱 쇼트만을 사용한다면, 관객들은 극 중 인물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착각에 빠질 일이 없을 것이고, 그들을 아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인물들은 종종 어두운 공간에 위치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그 공간을 환하게 비춰줄 만한 빛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손전등 정도의 작은 불빛뿐이다. 스크린이 어둠으로 가득하면, 관객들 또한 지금 작중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진실은 어둠 속에 직접 자리한 자만이 알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위치에 있는 인물조차,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진실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관객들에게 허락된 '진실을 볼 수 있는 시야'는 손전등만한, 아주 좁은 영역에 불과하다.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은 분명 무언가를 보았지만, 그것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영화 제작자는 프레임을 통해 소재를 보여줄 범위를 정하고, 무의미하거나 무관한 것들을 삭제하여 현실세계의 한 부분만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프레임을 사용하는 방식은 다른 영화의 사용 방식과는 살짝 다르다. 많은 영화에서 선택된 특정 소재를 관객들에게 집중적으로 조명시키기 위해 프레임을 사용한다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는 프레임 안에 있는 제한된 정보만을 관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프레임을 사용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의 커튼, 창틀, 벽과 같은 프레임들은 화자의 얼굴을 가려버리기도 한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헷갈리는 상황이 벌어지니, 감정이입의 경로가 차단되어 버리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특정 인물이 작품 내에서 관객들에게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객들은 해당 인물에게 더 큰 친밀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관객들이 해당 인물에게 느끼는 친밀감을 줄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정 인물에게 많은 시간을 배분하지 않고, 여러 인물에게 골고루 시간을 분배하면 된다. 이렇게 복수의 등장인물이 중심이 되어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을 군상극(群像劇)이라고 부른다. <엘리펀트>의 경우 특별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없다. 사건이 벌어진 같은 날, 우연히 학교에 있던 존, 일라이, 미셸 등의 여러 학생들과 범인 알렉스, 에릭 모두가 비슷한 러닝타임을 할당받는다. 심지어 동일한 시간대의 사건이 서로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반복되어 제시되기도 한다. 이로써 영화는 관객이 특정 인물에 몰입하지 못하게 하고, 동시에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영화적 재구성임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관객이 화면을 또 다른 현실로 착각할 여지를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TMDB, flim-grab
참고 문헌
1.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것들>
2. 루이스 자네티, <영화의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