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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들

<남쪽>과 <욕망>

by 조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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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남쪽> / (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욕망>


*영화 <남쪽>과 <욕망>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에는 한도가 없다. 욕망의 주머니는 참 신기한 것이여서, 만족할 정도로 꽉 채우고 나면 어느새 주머니의 용량이 커져있어 더 많은 것을 집어넣어야한다. 그 주머니를 채워야한다는 생각은 인간에게 삶의 원동력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인간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그들이 자신의 욕망 주머니를 채워나가는 흐름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그 주머니에 무엇을 채워넣어야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걸까? 욕망 주머니가 원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건 그 주머니의 주인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욕망이란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다. 이것은 인간에게 결코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주인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내에 두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인간은 결코 잡을 수 없는 욕망이라는 존재마저도 이름을 붙이고, 형태를 부여하려 한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얼굴 형태를 새기듯, 우리는 욕망을 보려 하고, 찍으려 하며, 기억 속에서 재현하려 애쓴다. 오늘 다루게 될 두 편의 영화, 빅토르 에리세의 <남쪽>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욕망의 윤곽’을 더듬는 이야기이다. 그와 동시에, 결코 실체화할 수 없는 것을 향한, 인간의 오래된 시선에 관한 이야기다.



잡히지 않는 욕망

od0tGndY7zhjxhjeACXZsl2sbgQ.jpg <욕망>의 주인공 토마스는 사진에서 총 모양의 물건을 발견하고 현장으로 달려가 시체를 찾아낸다. 하지만 곧 사진을 도둑맞고, 시체 또한 사라지면서 사건의 진상은 묘연해진다.


<남쪽>과 <욕망>에서 주인공이 욕망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불확실', '불특정'이다. <남쪽>의 주인공 에스트레야는 아버지가 남쪽과 관련하여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비밀의 정체에 대해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비밀의 속사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 <욕망>의 주인공 토마스는 우연히 찍은 사진에서 살인사건과 관련된 단서들을 발견하고,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은 확실하게 잡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다.


형체가 없고 제대로 정의내릴 수 없는 '그것'을 어떻게든 구체화하기 위해서, 두 영화는 특정한 장치들을 사용했다. <남쪽>에서는 진자, <욕망>에서는 사진이다.



<남쪽>의 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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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레야의 아버지에게는 특별한 ‘기’가 있었다. 그는 그 ‘기’와 ‘진자’라는 장치를 통해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했고,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기적이라 불렀다. 이 ‘진자’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형체는 없는 것, 즉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세계를 대변한다.


에스트레야의 아버지는 이러한 능력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독함을 지니게 되었다. 자신에게는 분명히 감지되는 세계가 타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간극에서 생겨나는 소외감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에스트레야에게 진자를 건네고 사용법을 가르치려 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을 이해해줄 단 한 명의 이해자를 남기고자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남긴 그 진자로도, 에스트레야는 모든 진실을 알 수는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남쪽’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딸에게 말하지 않은 채 어딘가로 떠나버린다. 그것은 말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기도 했다. 어떤 말도 상대에게 닿는 순간 본래의 의미를 잃는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정직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정확한 언어는 어둠 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버린다.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中)


일찍이 에스트레야의 할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바 있던 아버지는, 자신의 내면을 완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침묵을 택한다. 과연 딸 에스트렐라가 언젠가, 말이나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그의 진의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세계를 느끼며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릴 날이 올까. 마치 진자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리듬에 이끌리듯이.



<욕망>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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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물질적인 형태로 응결시킴으로써 붙들어 두려는 욕망을 가지며, 그러한 욕망은 대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 사진, 영상과 같은 이미지의 형태로 가시화된다.

(이솜, <이미지란 무엇인가> 中)


<욕망>의 주인공 토마스는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사진가다. 그에게 사진이란 스스로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담아내는 매개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가변적이다. 그 존재의 본질을 어딘가에 고정시키려고, 혹은 가두려고 하는 순간, 본질은 잽싸게 모습을 바꾸어버린다. 그래서 그는 사진을 통해 정지된 시간을 그 안에 담아내고자 한다. 사진이란 존재의 본질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존재의 본질을 대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미지이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인간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욕망 또한 함께 흩어진다. '내가 뭘 하고 있었지? 내가 뭘 생각하고 있었지? 과연 내가 진짜로 원하고 있는 것은 뭐였지?' 사진을 도둑맞은 토마스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테니스장에서 보이지 않는 테니스 공으로 테니스를 치는 무리와 함께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결국 욕망이란 것은 어떠한 형체로 고정시킬 수 없는 존재임을. 욕망을 이미지라는 형체에 담고자 했지만, 그 이미지의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욕망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버린다. 새장 속에 고릴라를 가둘 수 없듯이, 애초에 사진이라는 프레임 속에 욕망을 가두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불변에서 가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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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원하고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자신도 그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현시점에서, 어떠한 욕망을 고정적인 형태로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게 허용된 것은 '이해와 몰이해의 경계에 있는' 욕망의 세계를 표현해내는 것이 고작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철학자 베르그손은 우리가 '실재적 경험'의 충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적 경험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인간적 관점을 넘어서는 일이란, 고정적인/불변하는 시간이 아니라 가변적인 시간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또 다른 철학자 질 들뢰즈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영화(시네마)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스크린에서 출현하는 것은 상식적 관점으로는 불가해한 무언가, 일상적 비전 속에서 늘 대면했던 것이지만 동시에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생경한 괴물이다. 운동과 이미지로 세계를 바라보는 이 새로운 관점에서 기존의 고정적이고 고체적인 사유는 그 윤곽과 경계를 전제하지 않는 미분적 운동으로 대체된다.

현상학적인 의식이 늘 특정한 좌표에 사로잡힌 채로 작동하는 것과 달리,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고정점을 가지지 않는 지각이다. 편집장치, 이동식 카메라 등 기술적 발전을 통해 세계는 일상적 비전의 한계를 넘어 확대되거나 축소되며 더 느려지거나 빨라진다. 운동-이미지란 바로 이렇듯 영화의 역량에 의해 발견된, 자연적 지각의 조건들을 초월하는 이미지이다.

(이솜, <이미지란 무엇인가> 中, 질 들뢰즈의 <시네마>에 대하여)


질 들뢰즈는 이에 더해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글에서 사진과 이미지로, 사진과 이미지에서 영상으로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이 점차 달라지고 있는 지금, 그의 말이 실현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순간이다.


이미지 출처 : TMDB,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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