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리뷰
오후 다섯 시, 젊은 가수 클레오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암 진단 결과를 기다리던 중,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타로 카드 점괘를 받았기 때문이다. 불안에 잠긴 클레오는 의사의 최종 진단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녀의 주변은 무의미한 것으로 가득하다. 뉴스에서는 사사로운 사건들이 보도되고, 길가에는 뜬금없이 산 채로 개구리를 먹는 노인이 있으며, 카페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도 그녀와는 큰 관련이 없는 것들 투성이다. 클레오의 지인들 또한 그녀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지는 못한다.
가정부 앙젤은 미신이나 징크스에 집착하며 클레오를 성가시게 만든다. 징크스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연이라는 무의미가 집적되어 만들어진 또 하나의 무의미에 불과하다. 또한, 클레오의 애인은 그녀를 자주 찾아오지 않아 그녀가 섭섭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 때문인지 클레오는 그에게 자신의 고민을 제대로 털어놓지도 못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 지인, 도로시는 앞서 나온 인물들보다는 클레오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어둠 속에 휩싸인 터널 속에서 털어놓은 클레오의 고민은, 결코 도로시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전달되지는 못한다. 앙젤은 "남자들은 다 들어주기만 바라고 귀 기울여 듣는 법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을 클레오의 세계에서 보면, 이 말은 앙젤을 포함한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누구도 그녀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
많은 창작물에서 예술은 고통받는 인물들의 탈출구로써 기능한다. 그러나, 그런 예술마저 클레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클레오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무대 위 소프라노의 독무대처럼 연출된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현실 그대로를 묘사해 오던 이 작품에서, 해당 장면은 명백히 이질적이다. 그러나 이 장면이 '뭔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뿜어내는 것과는 다르게, 그 뒤에도 클레오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혼란이 더 가중된 것을 느낄 뿐이다. 도로시와 함께, 그녀의 애인인 라울의 영사실에 들러 본 단편 영화는 클레오의 불안을 잠깐이나마 해소시켜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로맨틱한 기류 속에 있는 라울과 도로시와는 달리, 클레오는 끝내 혼자 남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현실을 또렷이 마주하게 된다. 결국, 예술은 결코 그녀의 세계에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주지 않는다.
클레오는 스스로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들을 하나둘씩 버리고, 지나치면서 홀로 남게 된다. 그러던 클레오의 눈앞에 앙트완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이 남자는 말이 참 많은 군인으로, 오늘 저녁 부대로 복귀해야만 한다. 클레오와 앙투안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 두 인물은 모두 다가올 결과를 기다리면서 불안감에 떨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두 인물은 대화가 아주 잘 통한다. 그동안 클레오에게 스쳐 지나가던 일상의 순간들이, 앙투안을 만나고 난 뒤에는 조용히 의미를 되찾아가기 시작한다. 영화의 진행 방식은 앙트완이 나타나기 전이나 후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키스와 같은 농밀한 신체 접촉도, 갑자기 흑백이 컬러로 바뀌는 식의 연출도, 앞서 클레오가 노래를 부를 때 나왔던 것과 같은 이질적인 연출도 없다. 두 사람 사이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천천히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클레오 주변의 분위기는 분명히 바뀌었다. 스스로의 껍데기에 집착하던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새 앙트완에게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던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방식으로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 간의 연대 혹은 사랑이 무의미를 의미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클레오라는 여성 캐릭터가 5시부터 6시 반까지의 걸어온 행보를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 내에서 흘러가는 시간 1시간 반은 영화의 러닝타임과 동일하다. 즉, 영화와 현실의 시간적 흐름이 동일한 것이다. 그렇게, 현실이 아님에도 현실과 닮아있는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에 침투한다. 앞서 말했듯이 클레오는 예술을 통해 구원을 얻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에게 구원을 내려준다. 어떠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방식, 또는 잠시 동안 현실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의 삶에 조용히 스며드는 것이다. 대다수의 창작물에서 성장은 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주어진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도 그런 방식을 동경한다.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거대한 무언가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그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앙트완을 만나기 전의 클레오의 삶이 그러했듯, 삶의 대부분은 무의미로 구성되어 있고, 의미 있는 것은 얼마 없다. 하지만 그러다가 맞닥뜨린 우연한 사건 하나가, 나도 모르는 새에 조금씩 내 삶을 바꿔버릴 수는 있다. 이 영화는 극적인 장면이나 메시지를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시간과 비슷한 호흡으로, 아주 담담하게 삶을 바라보는 법을 일깨운다. 현실과 가까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깨달음을 선사하는 영화. 이 영화를 어찌 뛰어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