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PTA)이 구원을 다루는 방식 - 2
<리노의 도박사>부터 <펀치 드렁크 러브>까지, PTA는 자신이 제시하는 구원의 이미지를 점점 더 뚜렷하게 구축해왔다. 그 구원의 이미지는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가장 선명한 '사랑'의 형태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후의 세 작품—<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는 그 해상도가 급격히 흐려진다.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었던 구원의 형태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추악한 미국 사회의 욕망 속에서 태어난 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구원 대신 절망과 파멸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관객들을 비참하게 만든다면, 그 뒤를 잇는 <마스터>는 한층 더 교묘하게 관객들을 괴롭힌다. 이 영화는 마치 구원을 줄 듯 말 듯 관객을 흔들어대며, 최후에는 구원을 허공으로 흩뜨려버린 채 아무런 정답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형체가 사라진 이 세계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게 될까? <마스터>는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프레디 퀄’이라는 인물을 제시한다. 프레디는 관객들이 쉽게 정을 붙이기 어려운 인물이다. 삐딱한 자세 때문에 척 보기에도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이 남자는, 성도착증이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성적인 표현을 하며,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자주 내보인다. 프레디는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을 통제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본능만이 남아있는 사냥개와 같은 인물이다.
그렇다면 프레디라는 인물이 채우기를 원하는 결핍이란 무엇일까? 일단, 해군을 전역한 후의 프레디에게는 마땅한 '소속'이 없다. 그는 해군을 전역한 뒤 사진기사로 활동하지만, 고객과 트러블을 빚어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뒤이어 농장 일을 하게 되었을 때도 타인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게 되어, 그곳에서 도망치게 된다. 그의 결핍, '소속감'은 한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을 찾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다니던 사냥개 앞에, '도드 랭커스터'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그 남자는 이 사냥개를 길들여보고자 했다. 도드는 사냥개를 길들여 철창 속에 집어넣고자 하는, 사육사 역할을 자처한다.
그러나 도드가 프레디에게 일종의 심리치료, 혹은 세뇌를 반복해도, 프레디의 불안정한 상태는 전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길들여줄 주인을 찾아 꼬리를 살랑거리던 그 사냥개는, 철창 속에 집어넣자 사납게 돌변하여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소속감이라는 결핍이 충족되자, '자유'라는 새로운 결핍이 생겨난 것이다. 프레디의 삶은 소속과 자유라는 상반된 두 욕구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삶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은 프레디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사육사인 도드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자신의 소속 '코즈'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지배하는 아내 '페기'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 프레디가 필요했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깨달은 둘은 운명처럼 만났다.
도드의 심리치료는 프레디가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도 계속된다. 이때 창문에 드리운 커튼 틈으로 도드가 프레디를 바라보는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드는 프레디를 끊임없이 응시하고 있지만, 그 시선은 커튼이 걷히지 않은 좁은 틈새를 통해서만 닿는다. 도드는 그 좁은 프레임 안에서만 프레디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도드의 이런 불완전한 응시는 끝내 프레디의 내면에 제대로 닿지 못한다. 마침내 심리치료는 실패로 돌아가고, 도드와 프레디는 서로가 지닌 결핍을 결코 메워줄 수 없다는 씁쓸한 진실만을 확인하게 된다.
도드에게서 결핍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 프레디는, 스스로에게 남아있던 자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자 한다. 그 불씨의 이름은 '도리스'였다. 도리스는 프레디가 아주 소중히 여겼던 과거의 연인으로, 프레디와 도드의 대화에서 처음 그 이름이 언급된다. 프레디는 그녀를 '평생 갇혀있어야 한다면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PTA는 프레디의 안에서 명멸하고 있던 그 작은 불씨를 무심하게 꺼버린다. 프레디가 도리스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이미 다른 남성과 결혼한 뒤였다.
결말부에 프레디는 한 이름 없는 여성과 만나 그녀와 성관계를 맺으며, 마침내 본인의 성욕을 완전히 해소하게 된다. 이 여인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는 프레디의 모습은, 한때 그의 마스터였던 도드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장면이 반전되고, 프레디가 모래로 만들어진 여인 옆에 누워 잠이 드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제 프레디는 타인에게 명령을 내리는 위치에 올랐다. 그 모습을 보면, 프레디가 타인을 자신에게 종속시키는 '마스터'가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도드와 같은 마스터가 되었다는 건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애초에 도드 또한 프레디와 같은 결핍을 끝까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던, 불완전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프레디와 관계를 맺은 여성은 이름도, 맥락도 없는 인물이다. 프레디와 그녀의 관계는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일시적인 것일 뿐, 장기적인 관계로 이어지지 못한다. 쾌락은 순간일 뿐, 그의 현실을 바꿀 순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모래 여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바라던 이상적인 존재를 만났지만, 그 존재는 프레디의 환상 속에서만 기능한다. 결국, 그는 두 가지 결핍, 소속과 자유 중 어떠한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어딘가에 자리 잡지 못하고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던 개인의 이미지는 <마스터>의 다음 작품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 국가라는 공동체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 결핍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미국 사회 그 자체다. 물질적인 것을 거부하지만 결국 자본의 논리에 굴복할 수 없는 히피 문화의 모습은 당시 미국 사회가 맞닥뜨린 거대한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PTA의 초기작들에서 불완전한 인간들 간의 연대가 구원으로 이어진 것과 달리,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의 연대는 인물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주인공 '닥'이 옛 여자 친구 '샤스타'와 다시 육체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이 두 사람이 다시 사귀는 것은 아니듯, 그들은 미국 사회의 거대한 모순 주위를 끝없이 맴도는 위성과 같다. 이처럼 PTA의 중기에 해당하는 3부작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 구원이란 어떠한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