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PTA)이 구원을 다루는 방식 3, <팬텀 스레드>
PTA의 후기 작품들 — <팬텀 스레드>, <리코리쉬 피자> — 은 전기와 중기 작품들을 반반씩 섞어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구원이라는 개념을 표현할 때 전기가 정(正), 중기가 반(反)에 해당한다면 후기는 합(合)에 해당한다. 후기의 작품들에서, 인물들은 분명히 구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구원은 그들의 결핍을 완전히 해소해 주지는 못하며, 제한된 조건하에서만 유효하다.
PTA의 <팬텀 스레드>는 후기 단계에서 PTA가 구원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팬텀 스레드>의 남자주인공 레이놀즈의 모습은 이전에 PTA 작품에 나왔던 인물들의 설정을 혼합시켜 놓은 것처럼 보인다. 완벽하게 설계되고, 통제된 세계를 구성하여 그 세계를 타인에게까지 강요하는 레이놀즈의 강박적인 성격은, <펀치 드렁크 러브>의 주인공 베리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그 통제된 세계에서 자신에게 숨 쉴 구멍을 마련해 줄 존재를 갈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스터>의 주인공 프레디 퀄과도 닮아있다.
레이놀즈가 자신의 집에서 문구멍을 통해 알마를 들여다보는 장면은, 그에게 알마가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완벽하게 폐쇄되어 제대로 밖을 볼 수도, 숨을 내쉴 수도 없는 레이놀즈의 세계에서 알마는 유일하게 빛이 스며들고 공기가 드나드는 틈새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토록 레이놀즈에게 알마가 소중한 인물임에도, 아직 그녀는 레이놀즈의 세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의 지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알마는 레이놀즈가 구축한 질서를 어겨서는 안 되는 위치에 놓여 있다. 알마와 레이놀즈가 함께하는 식사 장면이, 이런 두 사람 간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식기끼리 부딪치는 소리, 차를 따르는 소리가 과장되어 울리는 바람에, 일상적인 식사 장면은 레이놀즈의 통제가 극대화되는 전장처럼 변모한다. 이 긴장된 환경에서 알마가 그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른다면, 레이놀즈는 그녀를 주저 없이 내칠 것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애초부터 수평적일 수 없다. 알마는 레이놀즈가 만든 세계에 몸을 억지로 맞추며, 그의 통제와 질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리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알마는 이 불공평한 관계를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레이놀즈와 비교했을 때 한참 아래에 있는 자신의 지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첫 번째 움직임은 ‘바바라 로즈’라는 인물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레이놀즈는 과거 바바라 로즈의 후원을 통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기에, 그녀를 썩 달가워하지 않음에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바라 로즈는 레이놀즈의 옷에 만족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가 만든 옷을 입은 채 갑자기 쓰러져, 그의 심기를 극도로 불편하게 만든다. 이때 알마는 그의 불편한 기색을 재빠르게 읽어내고, 강제로 바바라의 방에 들어가 레이놀즈의 옷을 되찾아오는 과감한 행동을 보여준다. 레이놀즈에게 옷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고 표현하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그 옷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레이놀즈라는 인간과 그가 만들어낸 세계에 대한 인정과 다를 바 없었다. 알마는 이러한 레이놀즈의 무의식적 욕망을 정확히 포착하고 충족시킴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단숨에 끌어올리게 된다.
더 큰 사랑을 받게 된 알마는 이제 이 수직적이고 불공평한 관계 자체를 깨뜨려버리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녀는 ‘깜짝 이벤트’를 통해 레이놀즈가 가지고 있던 관계의 주도권을 가져오고자 했다. 만약 이 계획이 성공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숨에 뒤집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벤트는 레이놀즈가 집요하게 유지해 온 질서와 통제의 세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고, 결국 알마는 그의 냉대와 직면하게 된다.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알마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한다. 그것은 통제된 세계 바깥에 있는 레이놀즈의 결핍 속으로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레이놀즈에게 몰래 독버섯을 먹여 그가 제대로 행동할 수 없게 만든다. 레이놀즈가 무너짐과 함께 그가 세워온 통제와 질서도 점차 느슨해진다. 알마는 바로 그 틈을 타, 레이놀즈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결핍과 마주한다. 그녀는 타인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한 채, 그 결핍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자리 잡는다. 레이놀즈의 시선에서 볼 때, 알마의 행동은 자신의 결핍을 이해하고 세계의 질서마저 존중해 주는 헌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알마의 본심은 그렇지 않았다.
마침내 알마는 레이놀즈와 결혼하며, 그와 수평적 관계를 이루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의 욕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알마는 명백히 레이놀즈의 위에 서기를 원했고, 세계는 점차 그녀의 욕망에 맞춰 재편되고 있었다. 레이놀즈의 삶에서 알마가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자,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녀를 통제할 수 없게 된다. 혹시라도 그녀가 지나친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영영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서서히 그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는 알마가 자신이 먹을 요리에 독버섯을 넣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음식을 스스로 입안으로 들인다. 이제 레이놀즈는 알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버렸고, 그 나약함과 그녀의 통제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렇게 해서, 한때 레이놀즈가 압도적으로 위에 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완벽히 뒤집히게 된다.
레이놀즈는 알마와의 만남, 그리고 그 관계의 진전을 통해 끝내 자신의 결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구원은 불완전하다. <펀치 드렁크 러브>의 레나는 베리의 아름다운 면모뿐 아니라 추하고 불안한 모습까지도 모두 포용하며, 그의 존재 전체를 긍정하는 인물이었다. 반면 <팬텀 스레드>의 알마는 레이놀즈의 통제와 질서를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철저히 파괴한 뒤 자신에게 가해지던 힘을 되돌려 그에게 행사한다. 그 결과 레이놀즈는 약화된 존재로 전락하고, 그 약화된 상태 속에서만 자신의 결핍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제한적인 구원의 양상은 <팬텀 스레드>의 다음 작품인 <리코리쉬 피자>에서도 반복된다. 두 남녀 주인공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주도권을 다투며, 일종의 파워 게임을 벌인다. 마지막 키스 장면에서 두 사람은 겉보기에 수평적인 관계에 이른 듯 보이지만, 그것은 진정한 상호 존중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구원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를 도구처럼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PTA 후기의 세계에서 결핍의 해소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만 허락되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