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1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미슐랭 3스타 떡볶이

by 최지수 Mar 25. 2025

나는 떡볶이를 무지 좋아한다. 

지금은 참치대뱃살과 기름지고 비싼 음식에 밀려 순위가 많이 밀렸지만, 

학창 시절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내 용돈의 9할을 떡볶이에 바쳤다. 

부모님이 맞벌이 셔서 저녁을 혼자 챙겨 먹고는 했는데 라면 다음으로 많이 먹은 음식이기도 하다.

때문에 학창 시절 내내 땀을 흘리면 내 몸에서는 떡볶이 냄새가 났다.(논픽션)


나는 맛있는 식당을 발견하면 똑 간은 메뉴를 일주일에 두세 번 일 년 정도 먹는 특이한 습성이 있다. 

(불안 장애 증상이라고도 하던데...) 

지금껏 34년을 살아오며 그렇게 꽂힌 떡볶이집이 네 군데 있다. 


1. 중학교 때 먹던 은마아파트 후문에 있는 벧엘부동산에서 만드는 떡볶이, 고등학교 올라갈 때 즈음 사라졌다.

2. 이십 대 초반에 즐겨 찾던 개포동에 있는  빨간 어묵부산어묵, 이곳은 맛집으로 매스컴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3. LNG를 운반하는 원양상선 라스라판호에 탔을 때 나를 곧잘 괴롭히던 조리수가 만든 떡볶이. 다시 이 맛집을 가려면 선원으로 취직해서 인도양에 가야 된다.  

4. 울진 바지게시장 떡볶이 


1, 3 번은 이제는 상상으로만 먹을 수 있는 떡볶이집이 되었다. 

아직 2, 4 번은 먹을 수 있는데, 하기에 적힌 미슐랭으로 구분하자면 

(실제로 받은 건 아니고 내 기준이다.)

** 미슐랭 2 스타 식당은 맛이 훌륭하여 그 도시에 방문해야 한다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정도

*** 미슐랭 3 스타 식당은 맛이 매우 훌륭하여 그 식당에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될 만한 가치가 있는 정도 


2번 개포동 떡볶이는 내가 대치동을 방문할 일이 생기면 먹는 정도의 미슐랭 2 스타 레벨의 떡볶이 집이다. 

그리고 4번, 경상북도 울진 바지게시장 내에 있는 미슐랭 3 스타 레벨의 떡볶이 집이 있다. 


그 떡볶이를 먹기 위해서는 집에서 울진 시내까지 25KM를 가야 한다. 

게다가 2,7일이 들어가는 날에만 열리는 5일장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떡볶이를 먹고 싶어도 그날이 아니면 먹질 못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떡볶이를 먹고 싶은 날 달력을 봤을 때 우연히 2, 7일이 들어가는 날이면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사방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즐비한 답답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도시 외곽으로 빠져 

사방이 펼쳐진 강 위를 달리는 긴 다리를 만난 기분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떡볶이를 먹기 위해 집에서 나온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3월 말이 되어서야 봄이 와 하늘에는 적당히 따듯한 햇볕이 있었고,

자동차를 예열하는 동안 장범준 4집 앨범, 찌질의 역사 발매된 것을 확인하고 앨범을 전곡 랜덤재생 하였다. 

귀가 간지러운 장범준의 음악을 들으며 7번 국도를 적당한 속도로 질주하였다. 중간중간 바다가 보여 마음이 조금씩 더 설레왔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흰 가래떡처럼 보이기도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사람이 많이 없는 울진에 오랜만에 사람이 북적거린다. 바지게 시장 장날에는 두 개의 떡볶이 집이 문을 여는데 입구에 있는 떡볶이 집도 맛있지만,

미슐랭 3 스타는 중간 지점에 있는 떡볶이 집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요즘 떡볶이 트렌드는 설탕과 고춧가루로 맛을 많이 낸다. 

여기는 물엿과 고추장이 많이 함유된 옛날 떡볶이다.  

요즘 떡볶이는 색이 맑고 예쁘고 맛이 깔끔하다. 옛날 떡볶이는 색이 거무스름하고 탁하고 맛은 텁텁하고 깊다. 

요즘 떡볶이는 조리 시간이 10분 내외로 완성되는 즉석떡볶이로 맛이 가볍고 신선하다. 

시장에서는 몇 시간이고 조려내기 때문에 입에 떡이 쩍쩍 달라붙고 맛이 무겁다. 

평소에 모든 헤비 한 음식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옛날 떡볶이가 더 좋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혼자 갔기 때문에 떡볶이의 가장 친한 친구 셋 순대, 튀김, 어묵 중 한 친구밖에 선택할 수 없었다.

개포동 떡볶이라면 순대를 택했겠지만, 여기서는 필히 튀김을 택해야 한다. 

왼쪽에 보이는 오이고추 튀김이 있다. 처음 고추튀김을 만났을 때, 나는 헤비 한 옛날떡볶이의 맛을 상큼한 오이고추로 중화시키기 위해 주문하였다.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저 거대한 고추 안에는 다진 고기와 채소가 들어있었다. 마치 샤오롱빠오를 먹는 것 같았다. 


샤오롱빠오라는 만두 속에 돼지기름을 넣고 만드는 만두가 있다. 이 만두는 필히 한입에 먹어야 하는데 만두를 빚을 때 만두소에 돼지 지방을 넣어 만두가 쪄가면서 지방이 기름이 된다. 만두를 입 속에서 이로 터뜨리면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육즙의 홍수가 범람한다.


햄버거를 먹을 때 헤비함을 중화시키려 야채를 먹었는데 그 야채가 할라피뇨가 아니라 알고 보니 기름진 감자튀김 같은 느낌이었다. 

오히려 좋다. 옛날떡볶이와 오이고추튀김의 슈퍼헤비푸드 콜라보에 혈당이 마음껏 스파이크 친다. 

떡볶이 국물까지 오이고추튀김으로 싹싹 쓸어 기어코 바닥을 본 후 떡볶이 집을 떠났다. 

폭룡적인 맛의 한 끼 식사였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오늘 오랜만에 3개월 전에 주말마다 모이던 어떤 그룹에 다시 속하게 되었는데 

얼굴을 마주한 네 명 중 두 명이 시간차를 두고 나를 팼다. 

얼굴에 살이 많이 쪘다며 이름은 익숙한데 못 알아봤다고 말했다. 

내 턱에 떡볶이가 끼었다. 미슐랭 3 스타 떡볶이를 한 달간 끊어야겠다. 

근데 외모 때문에 쳐 맞아서 스트레스 쌓였는데 일단 오늘까지만 먹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