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록 도구
엽서(葉書)는 우표를 붙여 간단한 메시지를 적어 보내는 작은 카드이다. 봉투 없이 직접 내용을 써서 보내며, 공식적인 소통보다는 개인적인 안부, 짧은 소식 전달, 여행 중의 기록 등에 많이 사용하곤 했다.
‘엽서(葉書)’라는 한자는 일본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일본어 ‘하가키(はがき, 葉書)’에서 온 말로,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뭇잎에 적은 글’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과거 통신 수단이 제한적이어서, 간단한 메모나 짧은 편지를 나뭇잎에 적어 주고받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개념이 후에 종이로 된 짧은 편지 형태의 ‘엽서’로 발전하였다. 일본 정부는 19세기 후반 서구의 ‘포스트카드(postcard)’ 개념을 도입하며 이를 ‘葉書(하가키)’라는 한자로 표기하여 정식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한국과 중국에서도 같은 한자를 사용하게 되면서 ‘엽서’라는 말이 정착되었다고 한다.
나는 중학교부터 펜팔을 했다. 서울 중구 소공로 신세계 백화점 옆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한편에 국제 펜팔협회가 있었다. 당시 친누나가 펜팔로 스위스 친구를 사귀고 있어서 나도 호기심에 외국 친구 하나 만들어볼 요량으로 펜팔협회를 찾았다. 전 세계에서 펜팔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편지가 나라별로 다양하게 있었다. 그중에 처음으로 덴마크 펜팔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꽤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다. 생일이면 선물도 서로 주고받고, 한 장의 편지지를 채우기 위해 1-2시간씩 사전을 찾아가며 편지를 써서 주고받았다. 그리고 영어로 편지 써야 하는 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용한 것이 엽서(葉書)였다. 짧게 써서 보낼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리고 92년 유럽배낭여행을 하며 그 엽서는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길을 걸으며 우체국을 찾았다. 스마트폰도, 이메일도 없던 시절, 여행 중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방법은 오직 손으로 쓴 엽서뿐이었다.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엽서는 항상 함께한 여행 노트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엽서 한 장을 펼치고 볼펜을 꺼내 들었다. "엄마, 아빠, 나 여기 OO인데 여행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OO로 갈 건데 그때 다시 연락드릴게요" 글씨가 삐뚤빼뚤해도 상관없었다. 내 손으로 직접 쓴 글자에는 따뜻한 체온이 배어 있었다. 활자로 찍힌 텍스트가 아니라, 내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부모님에게 닿길 바랬다.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였다. 한국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몇 주 후, 혹은 한 달쯤 뒤에야 부모님이 이 엽서를 받아볼 것이고, 부모님이 엽서를 받을 때쯤엔 나는 이미 다른 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요즘 같으면 이메일로 몇 초 만에 보낼 수 있는 안부지만, 그때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는 것은 느끼지만 기다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엽서를 보내고도 어딘가 아쉬우면 가끔 공중전화 부스로 가서 동전을 여러 개 미리 준비해 두고 전화를 걸었다. 국제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제법 많은 동전이 필요했다. 동전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삑삑 경고음이 들려오면 서둘러 할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요즘은 메시지를 보내면 불과 몇 초 만에 답장이 온다. 영상통화로 얼굴을 보며 대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1992년의 우리는 그만큼 느린 시간 속에서 서로를 기다리며, 더 깊이 그리워하고 더 간절히 안부를 전했다.
엽서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며 설레는 시간. 그것이 우리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아날로그 감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