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_02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
네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떠나면서 온 가족은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단다. 우리 형제들은 학교도 가지 않고 바로 돈을 벌어야 했지. 가족 모두가 매일 고기를 잡으러 나갔는데, 나는 그동안 집에 남아서 누나가 일찍 결혼해서 낳은 조카를 돌봤어야 했단다. 아기가 울면 업고 다니고, 잠깐 틈이 나면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해오기도 했어.
아버지는 학교를 너무 다니고 싶었단다.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지. 하지만 할머니는 “조카를 봐줄 사람이 없는데, 네가 학교를 가면 누가 조카를 보겠어?” 라며 내가 학교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셨지. 나는 속이 상해서 “조카가 내 아들도 아닌데 내가 왜 학교를 못 갑니까?”라고 화를 냈었지…. 나는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혼자서 교장선생님을 찾아갔단다.
"교장선생님을 찾아갔을 때가 몇 살이셨어요?"
그때가 9살이었어. 교장선생님을 만나서 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고 단 하루라도 좋으니 학생으로 받아달라고 했단다. 그때 마침 우리 동네 유지가 학교에 와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이 “저 아이가 어떤 아이인가?” 물어봤어. 그분이 “쟤네 아버지는 일본에 징용 갔다 와서 돈도 한 푼 안 가져오고 다른 데로 가버리고, 엄마랑 몇 식구만 사는 집이라 형편이 어렵습니다. 조금 봐주시면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겁니다.”라고 하셨지. 교장선생님은 가만히 고민하시더니 내일부터 한 번 나와 보라고 하셨고, 그날 이후로 나는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단다.
"그 이후로 학교를 계속 다니셨나요?"
얼마 다니지 못하고 3학년이 채 되기 전에 그만두게 되었단다. 학교에 입학했지만 조카를 돌보느라 수업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어. 결석하는 날이 많다 보니 오랜만에 학교를 가도 수업 진도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더구나.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닐 형편이 안 된다는 거였어. 공책 한 권 사기도 어려웠고, 매일 점심마다 먹을 도시락을 싸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단다.
담임선생님은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내가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급반장도 시켜주시고 어떻게든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상황을 많이 봐주셨어.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는데, 더 이상 내가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었다고 하시더구나. 내가 수업비를 오랫동안 내지 못하니 교장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게 하라고 지시하신 것 같았어. 선생님은 집에서라도 공부를 놓치지 않고 하면 언젠가는 때가 올 거라고 말씀해 주시며 많이 우셨단다.
"그 뒤로는 학교에 갈 수 없으셨어요?"
14살이 되었을 때, 다시 학교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제일 가까운 중학교를 찾았는데,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한 시간 이상 배를 타고 고개를 넘어야 학교에 갈 수 있었어. 그때도 교장선생님을 찾아가서, “제가 돈은 없습니다. 학비는 고기를 낚아서라도 갚을 테니 저를 입학시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얘기했단다. 무슨 어린애가 혼자서 공부를 시켜달라고 찾아오니까 처음에는 우스운 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하지만 서너 번을 계속해서 찾아갔더니 결국 한 번 다녀보라고 해주셨어.
하지만 1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단다. 초등학교 때 기초를 쌓아두지 못해서 그런지 친구들이 공부하는 내용을 잘 따라가지 못했어. 그리고 당시에는 굶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단다. 친구들은 싸 온 도시락을 먹고도 배고프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도시락은커녕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학교를 갔었지. 앞에서 선생님이 수업을 하면 하얀 분필이 밥으로 보이기도 했어. 지금도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일이 있는데,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어. 이틀 동안 굶어서 너무 배가 고파 남의 밭에서 몰래 마늘종을 몇 개 잘라먹었단다. 주인이 나를 발견하고는 “이놈 새끼! 남의 마늘 다 캐 먹는다!” 라면서 막 때리는 거야. 정신없이 두들겨 맞고 있는데, 내 뒤에 오던 학교 선배가 “쟤는 엄마도 죽고, 이제 아버지도 없어요. 형제들도 약하고 돈을 벌지 못해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 주세요.”라고 말했지. 그 말을 듣자마자 주인이 나를 보던 눈빛이 달라졌어. 그러더니 갑자기 같이 집에 들어가자는 거야. 들어가니까 고구마를 한 보따리 주면서 집에 가서 삶아 먹으라고 하더구나. 그걸 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