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_04
"아버지는 저를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왜 만날 수 없었나요?"
1970년 4월 29일, 여느 때처럼 원양을 앞두고 인천이나 부산에 회항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단다. 그때가 마지막 원양이었는데, 이때동안 일해서 번 돈을 모두 받아서 너를 찾으러 갈 계획이었단다. 새벽 2시 즈음 아버지는 선박 안 침실에서 자고 있었는데, 배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느꼈어.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니 저 멀리 군함대가 아버지가 타고 있던 봉산호로 다가오더구나. 나는 당연히 대한민국 해군일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단다. 그런데 해군 상선이 점점 가까이 오더니 우리 배에 군함을 가까이 붙이더구나. 배라는 건 슬그머니 대면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우리 배에 붙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그러더니 아무 신호도 없이 군인들이 우리 배에 올라타기 시작하는 거야. 그 순간 갑자기 군함대가 공포탄을 쏘았고 “다 내리지 않으면 죽여, 죽여!” 하면서 선원들을 모두 배 밖으로 불러내기 시작했어. 그제야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했지. 배 밖으로 나와 보니 대한민국 해군 함정이 아닌, 북한군 함정이 우리 배를 둘러싸고 있었어. 총으로 무장한 북한군 10명이 우리 선원들을 위협하며 배를 포위했고, 봉산 21호, 22호에 같이 타고 있던 선원들 27명이 하루아침에 북한에 납치되고 말았단다.
"북한군은 아버지랑 선원들을 어디로 데려갔나요?"
처음에 도착한 곳은 순위도라는 곳이었어. 황해도 제일 끝 옹진군에 있는 기다란 섬이었지. 거기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이 되었는데, 선장이 “기왕에 큰 고기 좀 내와서 마지막으로 같이 아침이라도 먹고 가자”라고 했어. 요리를 해서 한참 밥을 먹고 있었는데, 소좌가 올라왔어. “아바이 동무, 선원들 지금 몽땅 육지로 이동해야 되겠습니다. 얼른 내려갈 준비 하라.”라고 하는 거야. 우리가 밥 좀 마저 먹고 가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지만, 빨리 이동하라며 재촉했단다.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니 북한 군인들이 우리 선원들을 고무보트에 태우기 시작했어. 서너 명이 타면 꽉 차는 작은 보트였는데,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더니 선원 전부를 육지로 데리고 갔단다. 보트를 타고 내리니까 이미 큰 버스 한 대가 준비되어 있더구나. 버스에 타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창밖에 아이들이 줄을 쫙 서서 공화국 깃발이랑 꽃다발을 막 흔들고 있었어. “남조선 인민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런 플래카드를 들고 와서 환영 인사를 하고 있었단다. “아니, 우리가 환영받을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뭐 때문에 환영하는 겁니까?”라고 물어봤더니 “여기는 원래 그렇습니다. 외국에서 오면 다 환영을 잘해줍니다.”라고 하더라고. 근처에 초등학교, 중학교가 여러 곳이 있었는데 거기 아이들이 환영 인사에 동원된 거였지. 선원들이 탄 버스가 지나갈 때까지 아이들이 계속 손을 흔들며 서있었단다.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신 거예요?"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황해남도 해주시에 있는 한 목욕탕이었단다. 우리를 인솔하던 지도원이 목욕을 하라고 해서 시계 하나만 차고 목욕탕으로 들어갔지. 한참 씻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도원이 우리 보고 다 나오라는 거야. “목욕하라고 해서 하고 있는데, 왜 나오라는 건가” 되물으니까 일단 나오라고 하더구나. 우리가 나가니까 지도원이 “당신네들 너무 하지 않는가, 왜 그 아까운 시계를 끼고 들어가서 다 못쓰게 만드나, 우리가 다 빼앗아 갈 것 같으니 고장 내버릴 셈인가? 반항하는 건가?” 라며 우리 보고 막 따지는 거야. 내가 “이 시계는 물에 들어가도 괜찮은 거요. 이거는 방수용이기 때문에 물에 하루 종일 담가 놔도 괜찮단 말이요.”라고 하니까 “아, 그런 시계도 있는가? 아이고 내가 잘 몰랐다.”라고 하는 거야. 그때 북한이 같은 민족이지만 대한민국과는 생활에서 뭔가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지.
목욕이 끝나고 들어오니 남한에서 입었던 옷이랑 신발은 모두 군인들이 가져갔고 퍼런 옷이랑 운동화가 놓여있었단다. 죄수들이나 포로들이 많이 입고 다닐 것 같은 그런 색깔이었지. “야, 이거 색깔이 영 더럽다, 이거 무슨 우리가 죄인들도 아니고 말이야, 죄인 색 같은 걸 이렇게…” 우리끼리 조용히 얘기했어. 전부 옷을 갈아입히고 나서는 어느 여관으로 우리를 데려갔단다. 거기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 날부터 일주일 내내 계속 조사를 받았단다.
"어떤 조사를 받으셨어요?"
바다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남한에서 지령을 받은 건 없는지 조사했단다. 우리는 그저 고기잡이인데 사장이 고기를 많이 잡아오라는 지시 밖에 없었다고 말했지. 하지만 계속해서 우리가 대한민국 해군한테 지령을 받아서 온 것이 아니냐며 자백을 강요했단다. 아무리 아니라고 대답을 해도 수차례 같은 질문을 하더구나.
그렇게 조사를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우리 선원들을 큰 강당에 모이라고 했단다. 거기에는 평양 중앙당 간부들이 와있었어. 중앙당은 북한에서 최고의 권력기관이지. 중앙당 간부 중 한 사람이 “해주 보위부 조사에 의하면, 봉산호 21, 22호는 간첩선이고, 이 배의 선원들은 몽땅 간첩들이다. 국가는 대책을 세워서 문제를 잘 처리하는 게 옳다.”라며 우리를 평양으로 데려가겠다고 하더구나.
"그때의 심정은 어떠셨어요?"
‘나는 고기 잡는 뱃놈일 뿐인데 아무 일도 안 했고, 간첩행위 한 것도 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 하면서 평양으로 가는 열차를 탔단다. 열차를 타는 동안 밖을 보니 중간중간 집이 무너져 있고, 잡초들이 지붕 꼭대기까지 자란 곳도 많더구나.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넘었을 때였지만, 아직 마을들은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모습이었지. 평양에 도착을 해서 우리가 머무를 여관으로 갔어. 여관에 도착하니 이번에도 사람들이 줄을 쫙 서서 박수를 마구 치면서 우리를 환영했단다. 무리들 중에 부장 한 명이 다가와서 “동무네들! 오래간만이오!” 하면서 아버지한테 악수를 하더구나.
그 사람을 따라서 가니까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날은 배부르게 먹고 쉴 수 있었단다. 하지만 그다음 날부터 또다시 조사가 시작됐어. 죄를 인정할 때까지 끈질기게 물으니까 나도 나중에는 지쳐서 간부들이 묻는 말에 “맞소, 맞소.” 이렇게 되더구나.
조사를 받은 지 석 달이 지났을 때, 선원들끼리 “우리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한국에 보내달라고 사정하고, 안되면 데모라도 하자”라고 단식투쟁을 했단다. 간부에게 “우리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줄 때까지는 밥을 먹지 않겠습니다. 우리를 대체 보내주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라며 항의를 했어. 그러니까 간부가 “여기도 질서가 있고 제도가 있는 국가인데, 너희들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다 보내주지 못한다. 붙들어둘 놈도 있고, 보낼 놈도 있고 하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거야.”
그 뒤로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중앙당에서는 갑자기 청진으로 견학을 보내준다며 아버지를 포함한 선원들 8명을 따로 선발했단다. 왜 다 같이 가지 않고 우리만 가냐고 물어보니까, “위대한 수령님의 배려로 여러분을 보내주는 거니 절대로 의견을 갖지 말라”라고 하는 거야. 나는 일부만 따로 움직인다는 것이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지만, 청진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단다.
청진에서 한 달 정도 있다가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는데, 그 많던 선원들은 보이지 않고 3명만 남아 있었어. 너무 놀라서 “나머지는 다 어디 갔는가?” 하니까 갑판장 한 사람이 펑펑 울면서 그저께 모두 다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하더구나. 갑판장이 자신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북한군이 총을 겨누면서 “너 집으로 내려가면 몽땅 다 몰살시킨다. 너 아주머니랑 딸이랑 살리고 싶으면 여기 있고, 아니면 가라”라고 협박했다는 거야.
나는 우리를 속였다는 생각에 화를 참을 수가 없었어. “당신네들 말이야 청진에서 견학하고 나면 집으로 갈 수 있다고 해놓고 이렇게 하면 됩니까? 왜 그렇게 합니까?” 따져 물으니까 간부 중 한 명이 “이미 버스는 떠나갔고 당신네들 이제는 못 간다. 날아갔으면 갔지, 당신네들 걸어서는 못 가니까 이제 포기하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라고 하는 거야. “여기서는 말도 하나 제대로 못 하게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살겠는가?” 막 따지니까 나를 쳐다보더란 말이야. 그러더니 뭔가를 적더구나.
그날 저녁에 중앙당에서 잠깐 나를 보자 하는 사람이 있다며 밖으로 나오라고 했단다. 옷을 대충 챙겨 입고 숙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큰 잠바 하나를 걸친 남자가 다가왔단다. “동무가 이재근인가?” 물어봐서 “네, 그렇습니다.” 하니까 차에 타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누군데 타라 합니까?”
되물으니 “내 이름을 대야겠소?”라고 하기에 “그래, 정확하게 알고 탑시다.”라고 하니, 보위부 사람이라고 대답하더구나.
그때가 해 질 무렵이었는데 차를 타고 가다 보니 어느새 깜깜해졌어. 그런데 보니까 계속 산속으로 들어간단 말이야. 그 사람하고 둘이서만 있는데 뭔가 느낌이 불안하더라고. 그렇게 한두 시간 정도 산속으로 들어가고 나서 차를 딱 세우더구나.
내려서 보니 앞에 100m는 넘어 보이는 낭떠러지가 있었어. 그 사람이 내 뒤에서 “여기서 떨어지면 뼈도 못 찾는다.” 하면서 잠바를 벗었는데 허리 양쪽에 권총이 있더란 말이야. 아까와는 달리 냉철해 보이는 표정으로 변해있었어. 나를 몰래 죽이려고 계획했던 모양이더구나. “대체 왜 그럽니까?”하니까 “당신이 계속 우리 제도에 대해서 비방하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을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지 않으면 그냥 총으로 쏴서 없애버린다.”라고 하는 거야. 나는 여기서 생활하면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얘기한 것뿐이라고 해명을 했지. 하지만 그 사람은 “여기서 오직 할 말은 한 가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절대 받드는 것과 절대복종하는 것, 하지 못하겠으면 죽어야 된다.”라고 하면서 총을 장전했어. 내가 여기서 죽으면 남한에 있는 우리 아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죽겠다는 생각에 무릎을 꿇었단다. 내가 지난 세월 동안 잘못 산 것이 맞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겠으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었지. 보위부 사람은 또 반항하면 자신에게 연락이 올 것이고, 그때는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