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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 번째 집

이모는 집에 언제 가요?_01

by NKDBer

“이모는 집에 언제 가요?”

“안동 집? 나 주말에 가.”

“아니. 이모, 저 북한 집에는 언제 가요?”


나는 막 웃음이 나왔다.


“북한 집? 우리도 너네처럼 여권 들고 갈 수 있으면 좋겠어. 우리는 갈래야 갈 수도 없고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한국에 살아야 해.”

“아, 그래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니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여기 외국 애들이 참 천진난만하지? 우리도 자기네들처럼 돈만 벌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야. 우리한테는 돈 벌어도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모르고. 그렇다고 쟤들에게 뭐라고 말할 게 있나. 그래 베트남 아이들도 설이 되면 사장에게 자기는 집에 한 달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하고 가던데. 야 외국도 저렇게 여권 떼고 가는데 한 나라 땅에 정말 육로로도 갈 수 있고 비행기, 아니 걸어도 갈 수 있는데 그런데도 우리는……. 하물며 한강 터만 이렇게 되니까 그것이 좀 가슴 아팠다. 쟤들은 우리보다 낫구나 싶었다. 너희들은 나보다는 낫구나. 정말 낫지. 아 그 애가 그저 불새 뜩 질문하는데 당황스럽고 정말 당황스럽고 이때까지 없던 물음을 터뜨려야 되니까 가슴이 턱 치밀어오는 것 같았다.


아직 자다가도 고향길 걷는 꿈을 꾸고 지금도 고향에서 시장 다니고 산나물 뜯던 일까지 눈앞에 선하다. 지금이 4월이니까 우리 고향엔 진달래가 가득, 곧 보름 되면 감자도 심기 시작하고 그다음부터 땅을 뒤져서 농사짓고 하겠구나. 여기선 이 쌀이 맛있니, 저 쌀이 맛있니 하는데 세상에 북한은 뭐 맛있는 쌀이 뭐이고 맛이 없는 쌀이 뭐야, 흰쌀은 보기도 힘들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정말 먹는 거는 너무 배가 불렀다. 중국에 있을 때 우리 아들도 너무 밥을 안 먹어서 내가 ‘북한에는 얼마나 지금 먹을 게 없어서 굶고 그러는데 너네는 그따위로 먹냐?’ 하니 거기는 북한이고 이기는 중국이다 하고 아들이 대꾸질하는 일이 있었다. 애들이 곧 들어올 텐데 여기 한국에 와서 교육도 좀 받고 자유라는 것도 누리고 하겠지만 그 덕을 보겠다는 것보다도 애들이 그저 엄마가 이렇게 고생했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의 거리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붙을까.


우리 아들은 중국에서 낳았다. 북한에서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후 두 번째 남편을 만났지만, 남편은 결혼한 지 8일 만에 광산에서 사고로 죽었다. 1990년대 후반, 산으로, 들로 애들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다 며칠 만에 집에 온 부모들이 찬 바닥에 엎드려 굶어 죽은 자식들을 발견하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하도 먹은 것이 없어 위가 마찰되어 나는 열에 애들 목숨이 껌뻑거리다 꺼졌다. 그렇게 있다간 어차피 굶어 죽을 거, 나는 여덟 살짜리 딸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넜다. 잡히면 죽는다는 극도의 두려움에 떨며 그 추운 강을 건넜지만, 강 너머 땅에서 나는 언제 붙잡힐지 모르는 도망자였다. 결국 딸과 함께 지적 장애 중국인에게 팔려갔고, 2년을 겨우 버티다 그 집에서 도망쳤다. 이후 지금의 중국인 남편을 만나 낳은 것이 우리 아들이다.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니 늘 눈에 밟히던 북에 두고 온 동생들 생각이 간절했다. 가족 소식을 알려주겠다는 브로커 말을 듣고 연길에 따라간 것이 화근이었다. 연길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중국 공안에게 체포되어 강제 북송되었다.


여기 새로운 터전에서 옛날 일들을 돌이켜 보면 아득해 꿈이었나 싶다가도 밤에 그때 일을 다시 겪는 악몽에서 깨어나면 지금 여기에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런 하루를 일상으로 여기게 된 것에 감사하다. 일하러 나가면 힘들어도 웃고 떠들고, 사람 모인 데서 남들이 하는 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재미있다. 집에서 놀기도 힘들지 않나. 솔직히 말해 나도 원래 조용한 게 좋았는데 일을 시작하니까 사람들과 같이 휩쓸리는 게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고생은 고생이라 몸에 흔적을 남겼다. 대한민국에 잘 살자고 왔는데 망가져버린 몸은 잊을 만할 때마다 보란 듯 일상이었던 것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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