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둘
제주도에 도착했다.
이제 진짜 한부모 살이의 시작이다.
숙소에 도착해 아이의 옷을 벗겼다.
샤워를 시키려 했지만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보일러를 찾아보아도 어디에도 없다.
대신 방 한가운데 난로가 있고, 그 옆에는 땔감이 쌓여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소나 말이 살던 축사를 개조한 듯하다.
잠자는 공간은 평상처럼 되어있다.
갓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위험한 것 투성이다.
어쩐지 가격이 저렴하다 했더니,
보일러조차 없는 숙소였다.
급히 예약하느라 내가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을 끓여 대야에 붓고 찬물을 섞어 온도를 맞췄다.
물을 아껴 쓰며 아이와 함께 온몸을 씻었다.
찬 공기가 느껴지는 해 뜰 무렵엔
아이가 깨지 않게 천천히 일어나 난로에 불을 붙인다.
촉촉한 새벽 공기와 따뜻한 나무 타는 냄새가 만나
콧구멍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꽤나 낭만적이다.
계절에 맞는 옷이 없어도 괜찮았다.
공기가 찬 아침과 밤엔
우리가 가진 옷을 모조리 겹쳐 입었고,
해가 떠오를수록 한겹씩 벗었다.
그 숙소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아이는 다치지 않았다.평상에서 떨어지지도,
난로를 향해 넘어지지도,
땔감에 찔리지도,
끓인 물에 화상을 입지도 않았다.
평상에서 내려갈 땐 함께 만든 “뒤로 뒤로” 노래를 부르며 몸을 돌려 다리부터 내려갔고,
난로 곁을 지날 땐 멀리 돌아갔다.
샤워할 땐 발가락을 대야에 살짝 담가 자신에게 맞는 온도인지 스스로 확인했다.
뱃속에서도, 지금도 아이는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대견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아이를 향해 움켜쥐고 있는 내 강박과 불안을
한 국자 덜어놓았다.
되는구나, 살아지는구나.
꽤 괜찮구나, 행복이 여기에 있구나.
이 깨달음은 제주도에서 돌아와
아이와 둘이 살 거처를 정할 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남이 쓰던 손때 묻은 벽지 그대로,
여기저기 뜯기고 울룩불룩한 장판 그대로인 집을
기쁨으로 선택했다. 상관없었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깨달음 하나:
행복은 화려함과 편리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와 나는 숙소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유명한 관광지도, 맛집도 찾지 않았다.
엄마, 아빠, 아이로 잘 갖추어진 행복한 이들의 여행, 그 틈에 끼어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저 새소리에 잠에서 깨면
숙소의 뜰로, 알려지지 않은 작은 바닷가로 나가
하루 종일 자연을 구경했다.
햇빛이 비칠 때 나무들이 만드는 그림자,
비가 올 때 나뭇잎 위를 구르는 물방울,
젖은 나무기둥의 냄새,
비를 피하는 개미들의 바쁜 움직임,
봄에 핀 산진달래,
농약 친 예쁜 모양의 과일이 아니라
벌레와 함께 나누어먹는 산딸기,
매일 다른 모양의 구름,
인간이 만들어내는 색깔은 그저
자연을 흉내 낸 것뿐이구나 알게 하는
극한의 노랑, 정열의 빨강, 눈부신 파랑.
아이는 그 많던 플라스틱 장난감을 찾지 않았다.
대신, 말문이 트였다.
말, 딸기, 귤, 오디, 구름, 개미, 새.
매일매일 자연의 단어들을 새로이 입 밖으로 뱉어냈다.
그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면서
아이는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깨달음 둘:
흙, 벌레, 풀, 하늘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