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300일이 되었다.
아이가 300일이 되었다.
그 사람의 최선을 확인했다.
계속 거짓말했고, 성문제를 일으켰다.
그 사람도 괴로워했다.
하지만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그 사람에게는 없었다.
용서할 수 있는가, 같이 살 수 있는가
스스로를 실험했고 점검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충분했다.
아이가 생후 10개월 되던 때,
처음으로 양가 부모님께 사건의 전말과 나의 상태를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전화기 너머로 한참을 우셨다.
친정 부모님은 이혼을 말리셨다.
분노에 미쳐 날뛰는 당신들의 딸보다,
한부모 가정으로 결핍과 상처 속에서 일그러져 자랄 내 딸을 걱정했다.
나는 부모님께 절규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고,
너의 선택을 믿는다고,
혼자서도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다고 말해달라고.
그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 말을 끝내 해주시지 못했다.
내가 아이를 혼자 잘 키울 수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모님은 나 몰래 그 사람과 만나 식사를 하고,
내 마음을 돌릴 계획을 세웠다.
언젠가 나는 울면서 말했다.
“도저히 그 사람과 한 공간에 있을 수가 없어요.
한 달만 친정에 머물 수 있게 해 주세요.”
부모님은 거절했다.
“집으로 돌아가라”고만 했다.
또 언젠가,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울면서 말하면 우리가 네 인생을 어떻게 믿어주겠니.
진짜 준비가 되면, 똑바로 서서 웃으면서 와서 다시 얘기해.”
넘어진 내 모습은 보기 싫으니,
다시 설 수 있을 때까지 혼자 버티라는 뜻이었다.
나는 쉼 없이 무너졌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한부모 가정의 아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없어서 그래. 저게 네 아이의 미래야.”
저주였다.
내가 망가져가는 모습을 부모님은 차마 마주하기 어려워하셨다.
친정에 가면 엄마와 아빠는 눈을 피하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또다시 거실에 홀로 남겨져 울어야 했다.
나는 부모님께 버림받은 느낌을 받았다. 고아가 된 것 같았다.
매일 밤 울며 했던 결심,
곧 어떠한 도움도 없이, 혼자서, 제정신으로 아이를 잘 키워내겠다는 결심은 강박이 되었다.
그 강박은 결국 신체의 증상으로 나타났다.
아이를 재우고 부엌으로 가 물을 마실 때면
불 꺼진 거실 한쪽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대낮에도 방 안에 어떤 존재가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그 존재를 애써 외면한다.
휴대폰에 누군가 도청장치를 심어놓은 것이 느껴진다. 내 얘기를 하루 종일 훔쳐 듣는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면 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가방 깊숙이 넣어버린다.
집안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를 계속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옷 갈아입는 것조차 위험하게 느껴진다.
아이와 나만 있는 집 안에서 하루 종일 어떤 소리가 들린다.
내가 침대에서 아이를 재울 때면 방에서,
내가 거실에서 아이와 놀 때면 쇼파 사이에서,
내가 아이 이유식을 먹일 때면 싱크대 상부장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어떤 날은 진동 소리,
어떤 날은 삐빅거리는 기계음,
어떤 날은 찰칵거리는 카메라 셔터소리다.
울부짖으면서 귀를 막는다. 소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진다.
나는 안다.
전부 진짜처럼 느껴지지만
전부 진짜가 아니다.
나의 강박이
과호흡으로, 어지럼증으로, 환시로, 환청으로, 피해망상으로 나를 덮치고 있었다.
아이가 첫돌을 맞는 동안
내 정신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정신과 약 복용을 위해 4번이나 단유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아니, 실패를 선택했다.
모유수유를 하는 순간에는
아이는 가장 행복하고 편안해한다.
나도 모유수유를 하는 시간만큼은 불안에 떨지 않는다.
내 사랑이 아이에게로 흘러가는 게,
그 짧은 순간만큼은 눈에 보인다.
두 남녀는 이 순간마저 우리에게서 앗아가려고 한다. 화가 난다.
모유수유를 놓지 못하는 것 또한 강박임을 나는 안다.
막 네발로 기기 시작한 아이는 이제
내가 우는 걸 안다.
아이가 놀고 있을 때 몰래 훌쩍였더니 내게로 다가와 물티슈를 준다.
내가 얼굴을 가리니 눈이 빨개져서 나를 바라본다.
이제 때가 되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나가야 한다.
이 얼굴을 아이에게 계속 보여 줄 수는 없다.
2022년 4월의 어느 낮,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아이의 실내복 한 벌과 기저귀 한 팩을 챙겼다.
그리고 낮잠 자는 아이를 들쳐 안았다.
움직임이 없는데 심장박동이 160으로 계속된다는 알림이 워치에서 계속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 지옥 같은 집을 영영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