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을 행동에 옮기게 된 것은 그전 날 밤 아이에게 읽어준 책 덕분이었다.
누군가에게 받은 어린이 책이었지만, 15개월 아기가 읽기엔 어려운 책이었다.
갑자기 그 책에 내 손이 닿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두려움은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해."
그 문장이 내 안에서 울렸다.
나는 그 남자와 함께 사는 것을 매 순간 선택하고 있었다.
다음 날, 집을 나왔다.
한 손에는 기저귀 한 팩, 한 손에는 낮잠 자던 아이를 안은 채였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안동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기꺼이 방 한 칸을 내어주었다.
매 끼니 따뜻한 밥을 차려주었고, 내 얘기를 새벽까지 들어주었다. 함께 울어주었다.
좁은 복도식 아파트였고, 10개월 된 딸을 키우는 부부의 집이었다.
나와 아이는 염치 불고하고 그 가족과 10일을 함께 지냈다.
이불을 펴면 방이 가득 찰 만큼 작은 그 방은,
아이의 낮잠 시간에 맞춰 주황색 햇빛 한 조각이 들어왔다.
작고 네모난 천장, 햇빛 한 조각, 아이의 일정한 숨소리, 고마운 사람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안전하다고 느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행복하다.
다음은 경기도에 있는 고모에게 전화했다.
고모와 사촌동생도 나와 아이가 지낼 방을 내어주며 밤마다 함께 울어주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나와 아이는
안동과 서울, 동탄과 순천
전국을 떠돌며 친지와 지인들의 품을 빌려 살았다.
10분 거리에 있는 친정집엔 가지 못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질 때쯤
상간자 소송의 판결이 났고, 위자료가 입금되었다.
제주도의 깊은 산속, 낡은 숙소를 한 달간 빌렸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곳.
나와 아무 상관도, 관심도 없는 곳.
그곳에서 나는 숨을 고르기로 했다.
삼천포로 갔다.
제주도행 배에 올랐다.
갓 걸음마를 뗀 아이와 단 둘이었다.
여전히 짐은 없었다.
두렵지 않았다, 안전하게 느껴졌다.
두려움을 걷어내었더니
그제야 내 마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목소리는 그 집에서 나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보았다.
그 후로 내 목소리는
내 삶의 정답을 계속해서 알려주었다.
안전함과 편안함, 만족감과 자신감은
언제나 내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와 아이의 새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