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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가 차리는 요리 4부

인생이라는 이름의 식탁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by 과몰입

영화 <리틀 포레스트> 를 아시나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국에서 제작된 <리틀 포레스트>에는

다양한 삶의 순간과 그 순간에 함께하는 요리들이 등장합니다.


너무 뻔한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바뀌는 계절에 따라 등장하는 다양한 요리를 보고 있자면

영화 속 인물과 함께 보는 사람의 마음도 잔잔해지는 영화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일상 이야기와 요리가 함께 등장하는 콘텐츠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각자 인생의 어떤 변곡점에 서 있는지는 다르지만,

결국 오늘, 그리고 지금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같기 때문 아닐까요?


결국 요리야말로 우리의 삶을 연결하는 비밀 레시피일지도 모릅니다.


MBTI가 차린 요리 마지막 주,

INFP와 INTJ의 식탁에 함께 앉아보세요.




인생이라는 이름의 식탁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INFP


"너희 둘이 친해?"

"아 둘이요? 아, 아직 치킨은 같이 안 먹어 봤는데..."

대학 신입생 시절, 선배의 질문에 동기는 이렇게 얼버무렸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쁜 신입생의 엉뚱한 임기응변에 모두가 폭소했다. 하지만 그 자리의 모두가 친하다고 말하려면, 같이 치킨 정도는 먹어봐야 한다는 말에 공감했기에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왜 갑자기 치킨인지, 같이 먹으면 뭐가 좋은지 정확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먹는다는 것은, 때로 인간을 가장 단단하게 묶어주기 때문이다.


같이 먹을 음식이 굳이 치킨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는 과정이 동반되는 요리는 우리를 더욱 가까이 마주 앉게 한다. 어렸을 적, L네 집에서 처음으로 지은 밥은 엉망이었다. 하나도 익지 않은 쌀이 가득한 밥솥을 보고 친구들은 당황했지만, 상상도 못 한 결과에 다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부모님이 모두 계셨고, 그 둘이 모두 일하러 나가도 나를 돌봐줄 어른이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니 내가 직접 쌀을 씻고 밥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사회가 말하는 소위 '정상'으로 보이는 가족 안에서 자란 나는, 첫 번째 요리를 그렇게 장대하게 실패했다. 물론 쌀밥이라면 요리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지만, 초등학생 어린 나이에 그것도 나름의 요리라면 요리였다. 그저 친구들의 웃음이 나의 예상 못 한 실패를 삼켜 넘길 수 있는 완벽한 조미료였던 것만 분명하다.


어느 날, H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날 늦은 시간까지 집에 사람이 없었고, 나는 누군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었다. 메뉴는 모두가 좋아할 법하면서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지 않은 스파게티로 정했다. 다만 여전히 부엌에서 요리하는게 익숙하지 않은 십 대였고, 그렇게 나는 스파게티면 한 봉지를 모두 삶아버렸다. 이전에도 스파게티를 해 먹어 본 적은 있었던가. 저녁 준비에 서투르다면 서투를 수밖에 없던 어린 나는, 무엇이 급해 봉투에 적혀있는 1인분 표시도 읽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나이에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내가 차린 요리를 먹는 즐거움 앞에서,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남은 스파게티는 멋쩍게 웃어 넘기면 그만이었다.


내가 했던 요리들과 또 누군가가 나를 위해 했을 요리들. 그들이 나에게 나누어 준 음식들과 내가 초대받은 많은 식탁에서, 나는 무엇을 받아왔는가. 나도 뭔가 주고 싶은 마음으로 요리를 하겠다고 생각한 걸까?


어쩔 수 없이, 어쩌다 보니, 요리를 잘하게 되었건, 여전히 서투르건, 우리는 어느샌가 요리하고 서로 마주 앉는 법을 깨우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잘 쓰인 요리책처럼, 추억 속의 요리 재료가 무엇이었고 어떻게 요리했는지 자세하게 쓸 수는 없다. 분명히 기억하고 쓸 수 있는 것은 마주 봤던 얼굴, 머쓱하거나 황당하거나 즐거웠던 웃음이다. 어쩌면 그 얼굴과 웃음을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때로 우리의 요리가 완벽하지만은 않았기 때문 아닐까?




INTJ


4.jpeg 던전밥, 쿠이 료코


최근 '던전밥'이라는 만화를 봤다.

설정과 복선회수가 치밀하게 짜인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던전을 모험하며 마물을 요리해 먹는 만화로 알고 있었지만,

작품이 이야기하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먹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으며, 먹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이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고 느꼈다.

음식이란 결국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면서 또 다른 생명을 이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요리는 생명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일까?

같은 재료라도 사람마다 다른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요리는 개인의 기억과 취향을 담아낸다.

나아가 생존을 넘어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늘 '맛있다'보다는 '이런 음식은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가 먼저였다.

어렸을 때 제대로 된 식사를 해본 기억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요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포장마차에서 오뎅 국물을 받아 밥에 말아 한 끼를 대신하곤 했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입맛이 예민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유통기한이 훨씬 지난 음식을 먹어도, 남들이 잘 못 먹는 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다.

우유에 밥을 말아먹거나, 케첩에 밥을 비벼 먹는 소위 '괴식'도 먹을 만하다고 느낀다.

그래서일까, 회사에 다닐 때도 아무도 내게 음식이 맛있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게 어떤 룰처럼 정해졌다.

뭐든 맛있어하는 사람에게 물어봤자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라는 조급함에서 벗어났다.

한 끼를 여유롭고 풍족하게 식사를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요리는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친구가 집에 찾아와서 냉파스타와 계란장을 해주던 날이었다.

번거롭게 찾아와 요리를 하면서도 친구는 즐거워 보였지만, 나는 어쩐지 미안함에 안절부절못했다.

요리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람들은 왜 요리를 하고 음식을 나눠주는 걸까?

어쩌면 나는 요리를 단순한 '필요'가 아닌 하나의 행위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몰랐던 걸지도 모른다.

친구가 남기고 간 계란장을 바라보면서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요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과 손길이 담긴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앞으로 요리를 좀 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요리를 배운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단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맛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든 음식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맛을 음미하는 즐거움을 나눠보고 싶다.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공유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고, 감사를 느끼며 삶의 의지를 찾는 것.

그것이 요리가 우리에게 주는 큰 가치라면 나도 언젠간 그런 요리를 하고 싶다.

나도 나만의 요리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우선은 오늘 점심에 먹을 계란프라이부터 정성스레 만들어봐야겠다.

언젠간 나도 '한번 먹어볼래?'하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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