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복잡하다면 어쩌면 볶음밥을 만들 타이밍
지난주 MBTI 요리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인생에 피해 갈 수 없는 숙제 같은 요리. 여러분은 요리를 잘하는 편이신가요?
저는 요리에 감이 있는 편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레시피나 따라 하기 쉬운 레시피를 자주 참고하는데요.
어느 정도 보증이 된 방법은 따라만 하면 뿌듯한 결과물을 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요리를 하기 전까지는 재료를 준비하는 것부터 시간 낭비 같고,
얼른 먹고 치운 뒤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결과물을 내고 맛있는 밥을 먹고 나면
바쁜 하루, 이 정도는 나를 위해 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당장 먹을 음식을 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요리하는 과정에서 뭔가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번 주는 그런 순간을 포착한 INFJ와 ENTP의 순간을 만나보세요.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어쩌면 볶음밥을 만들 타이밍!
몇 달 전, 나는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삶이 너무 불확실하게 느껴지고, 눈앞에 보이는 결과가 하나도 없었던 그때, 무작정 시작해 버렸다. 요리학원을 처음 갔던 그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요리학원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보낸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서서 재료를 손질하고, 간을 맞추며, 조리법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청소와 뒷정리도 내가 해야 한다.
간이 이상할까 걱정하고, 재료가 예쁘게 다듬어지지 않으면 실망이 들기도 한다. 선생님이 알려준 레시피를 제대로 구현하기도 벅차서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기만 했다. 그런데 요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와, 나 딴 생각 1도 안 했구나.
생각이 많아 속이 시끄러운 사람에게 운동을 추천하곤 하지만,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도 딴생각이 든다. 아마 힘들 만큼 달리지 않아서일까? 하지만 요리할 때는 달랐다. 눈앞에 불이 켜지고 칼질을 시작하면, 뇌는 쉴 틈 없이 레시피에 집중하느라 바쁘다. 몸이 고되니까 다른 생각은 자연스레 밀려나고, 오로지 요리에만 몰두할 수 있다.
요리는 나에게 뇌 세탁소 같았다. 몸은 고되지만 뇌는 맑아지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과정을 거치면 즉각적으로 결과가 나와 안정감을 준다. 불확실성이 없는 그 순간, 머릿속은 비로소 조용해진다.
그래서 요리가 좋다. 머릿속의 복잡함을 잠시나마 씻어내고, 눈앞의 결과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
배가 고픈데, 거창한 요리를 할 기운은 없다. 그럴 땐 늘 손이 가는 메뉴가 있다. 냉장고를 열면 언제나 있는 김치, 그리고 한쪽에 놓인 소시지 몇 개. 거기에 밥만 있으면 충분하다. 소시지 김치볶음밥. 가장 간단하면서도, 이상하게 늘 맛있는 음식.
도마 위에서 소시지를 썰 때마다 특유의 툭툭 끊어지는 촉감이 손끝에 남는다. 너무 얇지도, 너무 두껍지도 않게. 적당히 식감을 살릴 수 있는 크기가 좋다. 김치는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둔다. 손으로 잡고 썰면 그 붉은 양념이 손가락에 배어들지만, 이상하게도 그 냄새가 싫지 않다. 오히려 김치볶음밥을 만들 때면 꼭 맡게 되는, 익숙한 향기 같은 것이다.
달궈진 팬 위에 기름을 두르고, 소시지를 먼저 볶는다. 지글지글 익어가면서 겉면이 노릇해질 때쯤 김치를 넣고 함께 볶아준다. 이때 나는 늘 조금의 설탕을 넣는다. 김치의 신맛이 너무 강하지 않도록, 아주 약간의 단맛을 더하는 것. 그렇게 하면 묘하게 맛이 부드러워진다.
김치가 어느 정도 볶아지면 밥을 넣고 빠르게 섞는다. 불향이 스며들게 센 불로 휘휘 저어주면, 어느새 노릇한 볶음밥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달걀 하나. 반숙으로 살짝 익혀 밥 위에 올리면, 이제야 비로소 완전한 한 그릇이 된다.
숟가락으로 푹 떠서 한 입.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소시지는 탱글하고, 김치는 아삭하고, 반숙 달걀의 노른자가 사르르 흘러내리며 모든 걸 감싸준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힘든 날에도, 이 한 그릇이면 왠지 모르게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소시지 김치볶음밥.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쉬운 요리지만, 그 안에는 작은 행복이 있다. 간단한 재료 몇 개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때때로, 인생도 그와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것. 너무 거창할 필요 없이, 있는 재료들로도 충분히 맛있는 한 끼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이 볶음밥을 좋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