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요리: 귀찮고 불편해도 나를 위해서 차려나가야 하는 것
눈 깜짝할 새에 7월입니다.
본격적으로 내리쬐는 햇빛도 햇빛이지만, 최근에 반나절 밖에 두었다가 냉장고에 정리해 넣은 음식이 이미 상해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그 순간 여름을 실감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인가요?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매일 밥을 챙겨 먹는 것도 참 힘든 일이죠.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없었을 때엔 어떻게 맨날 요리를 하고 상을 차려 먹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귀찮은 일이더라도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리.
이번 주부터 3주간, 여러 MBTI가 떠올린 요리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첫 주, ESTJ와 ENFP A의 요리를 만나보세요.
인생과 요리: 귀찮고 불편해도 나를 위해서 차려나가야 하는 것
나를 돌보는 시간-요리
나에게 요리는 나를 돌보는 시간이다. 나를 돌본다는 것이 결국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내가 한 요리는 사실 크게 맛있지 않다. 그리고 맛있다고 표현할 만한 엄청난 스킬의 음식을 시도해 본 적도 사실 없다. 그만큼 요리에 욕심이 없고, 흥미도 없는 나는 왜 요리를 할까? 바로 나를 챙겨주고 싶을 때다.
나는 요리를 하면 플레이팅을 꼭 신경 쓴다. 이유는 이왕 나를 돌보기로 마음먹고 시작했기 때문에 대충 하기 싫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요리를 마냥 매일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절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 한다. 사실 일주일에 한 번이면 꽤나 자주 하는 느낌이다.
최근에 이사를 가서 주방이 기존보다 꽤나 넓어져서 요 며칠 요리를 자주 했다. 요리 자체가 재밌다기보다는 요리를 하는 내 모습이 너무 좋다.
‘요리’라는 주제를 보고 심장이 덜컥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요리를 못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요리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요리에 관해선 무지에 가깝다. 내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요리를 무시하고 별로 안 좋아함에도 요리라는 것이 자꾸 나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처음엔 표고버섯이 있었다.
나는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에서 마케터로 일했었다. 어느 날, 한식 요리를 촬영하는 날이었다. 나는 촬영장에서 촬영 세팅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었는데,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한식 요리를 준비하시는 분이 표고버섯에 십자 모양을 내는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표고버섯이 원래 그렇게 생긴 줄만 알았다. 아니었다. 칼집을 내어 예쁘게 모양을 낸 것이다. 나도 모르게 ‘저 이렇게 만드는 거 처음 알았어요’라고 말했고, 이 사건은 회사 내에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진지한 한식 요리보다는 디저트 같은 비교적 요리 과정이 복잡하지 않은 브랜드를 담당했었다.
이런 내가 디저트 브랜드 SNS 채널 운영을 몇 년간 하면서 여러 번 자괴감에 빠졌었다. 그 디저트가 복잡한 요리 과정이 포함된 음식은 아니지만, 계절마다 다른 맛의 신메뉴가 나왔었고, 음료도 꾸준하게 새로 나왔었기 때문에 매번 힘들었었다. 음식에도 그닥 관심이 없어서 새로 나온 제품의 맛 표현에도 왠지 자신감이 없었다. 요리에 관심이 없는 내가 이 브랜드를 담당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또 다른 대행사로 이직을 했는데… 또 식음료 브랜드를 맡게 되었다. 이번에는 진지한 요리를 다루는 SNS 채널이라 더 어려웠었다. 왜 자꾸 음식과 관련된 일이 나를 따라오는지… 의문이 들곤 했다.
요리라는 게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지 않은가. 돈이 많더라도 간단한 음식 정도는 내가 해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요리’라는 것이 항상 마음속 깊은 곳에 커다란 숙제로 남아있었다. 회피형이라 계속 신경만 쓰고 미루기만 하는 숙제.
두 달 전, 아빠가 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이 많이 바뀌었다. 암이라는 것이 독한 것이라 그걸 이겨내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 집 식단도 건강한 음식 위주로 바뀌었다. 아빠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 요즘 나도 많이 배우고 있다. 그런데 워낙 요리에 대해서는 자신 있었던 적이 없기에… 엄마와 동생이 집에 없고 나 혼자 아빠의 밥을 챙겨줄 때 아직 부담이 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하는 생각 때문에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미뤄왔었던 요리. 이제는 진짜로 배울 때가 왔다. 아빠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