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로 돌아왔다.
몸은 왔지만, 마음은 두고 왔다. 설렜지만 아팠던 마음, 좋아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다시 왔을 때, 엄마, 아버지는 집을 지키고 있다.
밤늦게까지 회식을 한 막내 딸은, 차려준 아침 밥상을 먹는 체만 한다.
아버지는 이제 술을 드시지 않는다. '술이 맛있지도 않은데, 그동안 왜 드신걸까.'
"얘는 제사도 못 지내고, 일요일엔 교회가야 하고, 할 줄 아는 것은 없네."
"함께 교회 다닐 수 있겠나. 집안에거 방패막이 되줄수 있는가."
엄마는 단호했다. 냉정하기도 했다.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을, 막내딸 흠을 잡는 것으로 끝났다.
몸에서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졌다. 전화가 뜸해졌다. 보라색 전화기를 쳐다봐도 소용없다.
아팠지만 그뿐이다. 그냥 여기까지다.
지나온 시간을 생각할 때, 부족하고 철이 없었다.
모든 것을 잃고, 마음의 평정이 오기까지 수일이 걸렸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목이나, 혹은 부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 질수는 없을 것이다.
30년 가까이 함께 했고, 내가 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침에 버스를 타기 위해 뛰지 않아도 됐다.
작은 오빠가 300만원 넘는 빨간 프라이드를 사주어서 1년째 타고 있다.
면사무소까지 10분이면 갈 수 있다. 오빠는 그랬다. 내말을 거절하지 못한다.
난 오빠에게 아쉬운 말을 하지 않는다. 다 해줄까봐. 오빠는 원래 그러니까.
세상과 부딪치면서 고민하고, 속상한 것이 일상사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일까.
사람은 저마다 본인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노력하지만, 미완성의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사소한 말다툼조차,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말을 하고나면 허전하다.
잘난척하고, 무심코 한 행동 뒤에는 자책이 따라온다.
'왜 그랬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언제나 후회가 남는다.
미련도 없이 털어버리고,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흐르는 물은, 어제의 그물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큰돌을 만나도 그냥 돌아간다. 맞서지 않는다.
내인생도 거스를 수 없다면, 그냥 가자. 거역할 수 없는 삶이다. 순리대로 살자.
양심의 소리가 들린다면 다행이다. 양심을 져버리지 말자.
'이젠 내인생을 추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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