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정희

1월5일

by 김귀자

정희는 50년지기 친구다.

한동네에서 태어났고, 국민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남자 9, 여자 9, 18명이 국민학교 동창이다.

그 중 4명이 소천했다.

이제 남은 친구들 14명.


지난주에 1박2일 동창모임을 했다.

8명이 모였다.

우리는 허물이 없다. 그냥 가족같다.

정희는 오랜만에 왔다.

반찬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다.

고추 장아치를 먹으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거의 잠을 못잤다.

아침은 기선이가 해놓고 간 "동태탕"에 정희의 갓김치다.

"동태탕은 매워야지."

"갓 김치도 맛있다."


11시가 넘어 팬션을 나왔다.

전통 찻집에서 비싼 "쌍화차"를 먹고서야 헤어졌다.

쌍화차와 곁들인 장뇌삼의 쌉쌀한 맛처럼 친구들이 생각날 때쯤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동창모임은 오래전, 우리들의 삶을 소환한다.

정희의 편지를 찾았다.

브런치에 올려본다.


신은 오늘도 나에게 또 한장의 백지를 내밀고야 말았단다.

두렵고 공포스럽기까지한 빗줄기가 끊일 줄 모르고 땅에

부딪치고 있구나.

해가 뜨고 비가 오고, 그리운 날이 저물고, 하루가 가고,

또 가도 한치도 다를 것이 없는 타성의 세월.

종교가 필요하고 기대고픈 사람이 필요한데...

언제나 오늘 할일과 내일의 계획에 묶여 계산하고,

손익을 따지고, 보다 편안하고, 풍성하고, 영예로운 쪽으로 편성되기 위하여 메마른 삶을 우리는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이럴때면 언제나 지나버린 시간이 아쉬워 진단다.

현명하지 못했고 어리석고 잘못되었다.

하지만 지난 세월은 언제나 안개속의 꽃덤불처럼 아득한 것이기에 지금 내 분바른 얼굴보다 더욱더 아름답단다.

빗줄기가 약해진 걸 보니, 그치려나 보다.

파란색 우산을 쓰고 가는 연인이 부럽기까지 하구나.

못나게시리 말이야.

나란 아희 말이야.

편안하게 제대로 한번 실컷 놀고,

일이란 것에서 벗어나 버렸음 싶단다.

일이 매일 부담스럽고, 짜증내고, 난 정말 자타가 공인하는 나쁜 아인지도 모르겠어.

이 편지 받고 친구 표정이 어떠할지.

"환희 웃어주려나."

푸념만 늘어 놓은 편지라 할지라도.

감정이 너무 자질구레 하구나.

하지만 크게 마이너스는 안돼니까 애교로 봐주련

월.화.수.목.금.토.일.

이것들 너무나 둔하게 지나버린 요일들.

좀 과장되게 잃어버리고 살면 좋은 날이 오겠지.

살면서 혹시나 움추려 펴지 못했던 작은 어깨,

그리고 소외감, 좌절감, 열등감 모두, 모두 다 묻어버리고

우리는 젊음이라는 희망이 있으니,

남은 월요일.화요일.수요일.목요일.금요일.토요일.일요일을 위하여 힘찬 환호와 커다란 발자국을 또렷이 남기자꾸나.

춘천에서, 정희


19920726, 정희가 보낸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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