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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69년생 05화

막내

by 김귀자


내가 자란 곳은 원동리 하고도 다리골이었다.

두메산골 속, 조용한 시골 마을,

우리 집은 마을에서 제법 넓은 편이었다.

안방과 윗방을 터서 만든 긴 방에서 어린 시절을 많이 보냈다.

그 방 오른쪽 옆으로 뒷마루가 있었고, 집 중심에는 사랑방을 연결하는 꽤 넓은 마루와 이층 마루가 있었다.

사랑방 왼쪽 옆으로도 작은 마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집 안은 여러 마루와 방들이 서로 연결된 구조였고, 이 모든 공간이 나에게는 끝없는 상상의 무대였다.

특히 사랑방에 붙은 이층 마루는 꿈의 공간이었다.

안방 부엌의 부뚜막은 어린 나에게는 아주 높았다.

솥뚜껑을 열기에도 벅찬 열살 쯤, 밥을 한 기억이 있다.

부엌에는 세 개의 솥이 걸려 있었는데, 왼쪽의 큰 솥은 두부를 만들거나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할 때 쓰였고, 가운데 작은 솥은 매일 밥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오른쪽의 중간 크기 솥에서는 늘 더운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별채로 마굿간, 광이 있었다. 광옆으로 대문이 중간에 있고, 닭장이 있었다.

집은 마당을 중심으로 ㄷ자 모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당 왼쪽에는 화단이 있었고, 그 중앙에는 커다란 배나무가 있었다. 뒤란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장독대 옆에는 키다리 국화가 있었는데, 노란 꽃이 참 예뻤다.

나이 들어 알게 되었는데, 장독 옆에 주로 심어 장독 국화라고도 한다.

봄에는 엄마가 키다리 나물을 데쳐 반찬을 해주기도 했고, 나는 장독대에서 종종 샐러드처럼 먹곤 했다.

장독대 밑은 겨울 김장을 보관하는 공간이었다.


우리집 대문을 들어서기 위해서는 돌계단을 올라야 했고, 그 돌계단 아래에는 바깥마당이 펼쳐졌다.

바깥마당 끝으로는 변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집 변소는 옆집과 함께 쓰는 긴 일자형 초가집이었다.

나무로 만든 문에, 벽은 흙을 발라놓았고,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좌변은 송판 몇 개를 엮어 만든, --그 당시로는 나름 튼튼한 구조였다.

그리고 꽤 높아서 변을 볼 때 물이 튀지 않으니, 나름대로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집 변소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화장지 대신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어린 나에겐 그 책들이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숨바꼭질할 때 변소는 내가 숨는 비밀 장소기도 했다. 아무도 거기에는 숨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그 집은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신작로를 달리는 군인차를 처음 보았다.

군인차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 어린 시절의 봄은 바깥마당과 시골길에서 시작되었다.

땅이 녹으면서 질척거리던 마당이 굳고 나면,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치는 흙 내음이 고향의 봄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봄이 가끔은 그립다.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개울가에 나가면 동무도 없이 혼자 소꿉놀이를 했다.

돌 틈에 나온 뱀풀로 반찬을 하고 작은 돌멩이를 곱게 갈아 깨보세를 뿌린다.

노란 뱀풀 꽃으로는 밥을 짓는 흉내를 냈다.

"아버지, 진지 잡수세요.”혼잣말을 하며 상상 속 아버지를 모셨다.


시골의 봄은 참 바빴다.

손이 다 트도록 계집아이의 소꿉 놀이는 계속되었고, 우리 엄마는 새참 해내랴, 일꾼들 밥해 주랴, 파 다듬고, 깨 볶아 반찬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그 바쁜 엄마는 소꿉놀이에 빠진 작은 막내딸을 찾을 겨를도 없었다.

놀아도, 놀아도 끝이 없던 내 고향의 봄날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엄마가 농사일을 하러 나가셨을 때, 나는 저녁밥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저녁 시간대에는“방울공주”인형극이 방영되고 있었다.

방과 후, 나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이른 저녁밥을 해야했다.

밥을 해놓고는 인근에 사는 사촌 언니네로 가서 방울공주를 봐야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도 텔레비전이 없었다.

그래서 그 시절 나는 방울공주를 사촌 언니네에서만 볼 수 있었다.

"딸랑 딸랑 방울공주, 가엾은 공주, 착한 일을 하려고 금방울을 울리네.”라는 노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텔레비전을 볼 때면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 집 앞에 흐르는 개울은 제법 물이 많아서 수영하기에 좋았다.

나는 혼자서도 거침없이 수영을 즐겼고, 벌거벗고 물놀이를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물놀이가 끝나면, 나는 커다란 청바위에 엎드려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해야 해야 나오너라. 김치국에 밥 말아 줄께.”

이 노래는 물놀이 후 추운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만 같았고, 그저 즐겁고 소소하지만 소중한 기억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하던 놀이 중 하나는‘여우놀이’였다. 놀이의 규칙은 간단하지만 재미있었다.

술래 한 명이 여우가 되고, 나머지 친구들은 여우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반찬은 뭐니?"

"돼지고기, 소고기."

"죽었니? 살았니?"

"살았다."

여기서 여우가 "죽었다"라고 대답하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다시 반복하여 "살았다”라고 대답하면 술래는 쫓아가서 도망하는 누구든 때리면, 맞은 친구가 다시 술래가

되는 놀이였다.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쳤고, 동요와 함께 뛰고 웃으며 시간을 보냈던 그 순간들이 여전히 그리워진다.


또 고무줄 놀이 동요도 있었다.

"장난감 기차가 칙칙폭폭 가네. 과자와 설탕을 싣고서. 엄마 방에 있나? 아빠 방에 있나. 꽃 찾으러 갑니다.”

"솔솔 부는 봄바람. 쌓인 눈 녹이고, 잔디 밭에 새싹이 파릇파릇 나고요. 시냇물은 졸졸졸 노래하며 부르네.”

이외에도 놀이 동요가 또 있다.

방에서 마주 앉아 다리를 사이사이 뻗고,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손으로는 다리를 치며 박자를 맞춘다.

노래가 끝났을 때, 다리 위에 손이 멈춰진 사람은 다리를 빼야 했고, 맨 마지막까지 다리를 빼지 못한 사람이 술래가 되었다.

"개가 고기를 물고 가다가 강에다 빠쳤어, 먹는 둥 마는 둥 그림책.“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탉, 수탉 잡아서 기름이 동동 뜨는 거 나 한 숟갈 안 주고, 우리 집에 와봐라. 수수팥떡 안 준다.”

"빨간 단추야 어디로 가니? 새끼 치러 간다. 몇 마리 쳤니?

다섯 마리 쳤다. 지져 먹고 볶아 먹고, 새새끼 방귀 똥.“

지금 되돌아보면 가사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때는 참 재미있었다.

노래를 부르며 웃고 떠드는 순간들이, 그 당시에는 정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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