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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기침, 멈춰! 어르신들의 따뜻한 비법

겨울에 맞서는 훈훈한 온기

by 제노도아

겨울 문턱에서, 몸주체를 못하고 감기의 으름장에 고개 숙인다.

수업시간마다 진심 어린 말과 마음으로 걱정해 주시는 어르신들께 죄송스럽다.

한 달 남짓 감기를 달고 지내다 보니, 목이 잠기고 밤엔 자지러진 기침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생전 처음 겪는 지루한 감기며 통증이다. 밤엔 자주 깨고, 새벽이면 더 깊은 기침이 올라온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조금씩 내려앉는데, 요즘이 그렇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르신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기다리신다.

내 걸음마다 어르신들이 애틋한 눈길이 따라온다.

“선생님, 오늘은 좀 괜찮아요?”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들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진심 어린 염려의 말이 표정에 드러난다.

도라지와 배, 생강을 넣어 끓인 물이 보온병에 담겨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기침 한 번 하면 여러 분이 재빨리 가방을 뒤져 사탕을 꺼내신다.

'정이 이런 거구나' 하는 다정함이 듬뿍 묻어난다.

"콩나물국에 파, 마늘 많이 넣고 고춧가루 확 풀어서 드셔."

"미역국도 좋아요."

"생강, 대추, 계피를 끓여서 드세요."

"목쉰 데는 모과차도 좋은데."

"아침마다 꿀물이랑 마가루를 섞어 드세요."

"도라지청 그것도 괜찮던데."

"쉰 목소리에는 오미자차가 최고!"

"무즙도 좋아요."

"유자차도 수시로 드시고."

"배 속에 꿀 넣고 중탕해서 먹으면 좋아."

민간요법에서 실경험까지 아시는 것을 다 풀어놓으신다.


겨울이면 천식으로 자주 결석을 하시는 구슬옥님은 내 맘을 안다는 듯이, 기침을 할 때마다 덩달아 같이 얼굴을 찡그리신다.

"그래도 다행히 옮기는 기침은 아니래요. 편도선염과 비염이 심한 거래요."

내가 미소 띠며 변한 목소리로 걱정을 잠재운다.

"선생이 너무 오래 고생한다, 쯧쯧."

버럭순님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시다.

어린 자식을 돌보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따뜻한 온기가 교실에 넘친다.

쉬는 시간, 금향순님은 작은 보온병을 살그미 손에 쥐어주신다.

집에서 직접 깐 생강을 갈아 끓였다고 하신다.

뚜껑을 여니 생강 향이 물씬 풍긴다. 그 향만으로도 목이 다 나을 듯할 정도로 향이 짙다.

나는 몇 모금 마시고 감사하다며 머리 숙여 인사한다.

어르신들은 오늘도 감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말씀하신다. 서너 번씩 반복하셔도 마음이 잔뜩 담겨 있는 진실한 배려와 위로이시다.

"잘 때 목을 따습게 감싸야해."

"자주 따끈한 물 마시고 만사 다 제치고 푹 쉬세요."

"얇은 옷을 여러 겹 입는 게 두꺼운 옷 하나보다 보온이 더 잘 된대요."

들으신, 행하신 경험을 진지하게 풀어놓는다.

이제는 어르신들께 걱정 끼치는 것이 죄송하다, 빨리 안 낫는 것이 민망하고 미안해진다.


요즘 아침 공기는 확연히 더 차다.

교실 창문을 닫아두어도 건조한 기운이 실내에 퍼진다.

감기가 길어지니 몸이 금방 피로해진다.

내가 연신 기침을 하자, 고운정님이 결심한 듯 말씀하신다.

"말을 계속하니까 안 낫지. 우리가 사무실에 가서 한 두 주 수업을 쉬자고 할게요."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 친다.

그 말씀만으로 이미 쉰 것과 다름없다.


며칠 뒤, 교탁 위에 낯선 목도리가 하나 놓여 있다.

고개를 갸웃하며 들어보니, 삐뚤빼뚤한 글씨로 종이가 한 장 있다.

- 폭닥하니까 잘 때도 목에 꼭 하셔요.

꽃잎화님의 손글씨이다.

몸도 안 좋으신데 안경을 끼고 직접 짠 목도리, 꽃잎화님이 침침한 눈으로 정을 엮어낸 목도리이다.

왈칵 눈물이 솟는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듯하다.

엄마의 손길이 닿은 듯하다.


창밖 바람이 창문을 흔든다.

바람이 매섭다.

어르신들께 감기 조심하시라고 외치던 내 목소리가 무색하다.

“에구, 바람소리 봐. 선생, 몸 차게 하지 마.”

"무리하지 말고 잘 쉬세요."

“요즘 독감이 심하던데 우리도 조심하며 건강하자고.”

명랑희님이 주위를 둘러보신다.

"그럼요, 어르신들,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따뜻한 말들이 더께더께 마음의 행복으로 쌓여 간다.

이번 겨울은 이 감기를 끝으로, 힘차게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어르신들의 배려와 사랑이 포근한 목도리가 되어 어떤 한파도 견딜 수 있다.

몸이 괜찮아지면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아픈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건 약이나 휴식이 아니다.

누군가 나를 살피고,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따뜻한 차를 권해준 정겨운 마음이다.


매서운 겨울바람도 어르신들이 건네는 정과 사랑 앞에서는 금세 누그러진다

그 마음와닿을 때마다, 엄마 품에서 느끼던 따스함이 되살아난다.

고맙고, 더없이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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