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문제는 왜 이래

여기에는 슬픈 현실이 있습니다

by 박승연
내신 문제는 왜 이렇게 깔끔하지가 못해?


학교에서 출제되는 내신문항과 관련한 비판이 거세다. 본인도 재학시절 항상 들었던 의문이다. 왜 이렇게 내신문항은 '지저분'할까? 수능처럼 틀려도 내가 실력이 부족했다고 깔끔하게 승복하게 만들어주는 문제보다 "문제를 왜 이렇게 내!"라고 화를 내게끔 했던 문제들과 자주 마주쳤던 기억이 있다. 내신 공부랑 수능 공부는 다르다는 말도 수 없이 들었다. 내신 문제는 왜 이럴까?


내신문제가 비판을 받는 주된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지나치게 지엽적이다.

2. 학교에서 다루는 내용에 비해서 시험범위가 넓다.

3. 계산이 너무 많다. 지저분하다.


위 문제점으로 인해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은 시험에서 성적을 제대로 받기가 어렵고, 공교육이 해야 할 일을 내팽개쳐 사교육에 학생들을 의지하게끔 한다는 비판이 많다. 충분히 생길 수 있는 문제의식이고, 깊이 공감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글쓴이 스스로도 문제라고 느낀다. 그렇다면 공교육의 무능으로 기인한 것인지를 살펴봐야 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조적인 문제라고 주장한다.


위 문제를 따지기 시작하면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순환에 빠지게 된다. 공교육의 목적은 사회에서 충분히 기능하는 시민 양성이다. 대학 입시는 공교육의 부가적인 목적이지 주된 기능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므로 주객전도 상황이 당연시될 뿐이다.


고등학교에서 산출한 내신 성적이 대학입시에 반영됨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내신 성적 산출이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문항을 출제함이 옳다. 동점자가 너무 많아 등급자가 변별이 불가능한 '등급 블랭크' 현상은 재앙이다. 결국 문항의 변별력이 떨어져 상위 성취의 학생들이 등급이 제대로 나뉘지 않으면 피해는 학생들이 보게 된다. 당신은 고육지책인지, 공교육의 태만인지 구별할 수 있는가?


우리가 가르치는 것에 비해 시험문제가 어려워 사교육이 강제되는 것인가. 아니면,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 이들이 증가했기에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험문제가 어려워지는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공교육 내신문항의 출제에 촌극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변별을 하되, 그 기준은 납득이 가능한 형태로 공정해야 하니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시험범위를 늘린다. 구체적으로는 난도가 높은 부교재를 시험범위에 추가한다.

2. 배점을 상세하게 나눈다. 동점자 방지를 위하여 2점, 3점과 같은 자연수가 아니라 3.1점, 4.3점 형태를 이용한다.

3. 계산을 복잡하게 한다. 수학, 화학, 물리 등의 과목에서 사용한다.

4. 지엽적인 내용을 출제한다. 교과서 구석에 있는 년도나, 생소한 인물, 지명, 사건들을 물어본다.


위 방식으로 상위권 학생을 변별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물론 교사 개개인의 능력이 출중하고, 시험문제를 잘 출제하고자 하는 의향이 충분하여 개인의 시간을 갈아 넣어가며 문항 출제에 매달린다는 가정을 해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기는 구조적 문제가 산재해 있으므로


"너네 교사들이 노오오오력을 해서 깔끔하고 변별력 높은 문항을 출제하면 되잖아, 게을러서 그런 거 아니야?"


라는 지적은 인정할 수가 없다.


구조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평가문항 출제 이외에 수업, 생활지도, 상담, 그리고 우습게도 너무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에 갇혀 시험문항의 출제에 전력투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신 시험 범위는 지나치게 좁고, 그 좁은 범위 내에서 학생들을 촘촘하게 변별하기 위해 내놓은 대안으로 지엽적이거나 계산이 지저분하며 지나치게 꼬여있는 문항들을 출제하는 것이


"우리 회사에 지원해 주신 분들 중에서 1차를 통과하신 우수한 자원들을 여기 세미나실로 모셨습니다. 모두 모시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자원들이셔서 '공정한' 절차를 거쳐 우리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채용하고자 합니다. 자, 여기 앞에 있는 공 3개가 보이시나요? 여기 있는 공으로 저글링을 최대 몇 개까지 할 수 있는지 점수를 매겨 채용 전형 점수에 반영하겠습니다."


따위의 상황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업무 역량과 저글링 실력의 상관 계수가 무의미하듯이 말하는 계산기 혹은 전자사전을 만드는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 그치면 불평불만만 잔뜩 늘어놓은 형편없는 한탄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제안할 것이 있다.




공교육에서 다룰 수 있는 학습 범위를 늘려야 한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학습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학습 내용 경감을 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주장으로 보인다. 학습 부담으로 인해 사교육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본 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인데 생뚱맞은 대안으로 보일 수 있다.


예시를 보자.


[시험 1]
성취기준 : 세 자릿수 이하 자연수의 사칙연산
문항 수 : 20문항
시험 시간 : 50분
[시험 2]
성취기준 : 초중고 수학 교육과정 전체
문항 수 : 20문항
시험 시간 : 50분


변인에 따른 시험 문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비교하기 위해 성취기준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통일시켰다. 과연 입시에서 위 두 형태의 시험으로 평가를 할 때 어떤 문항들이 나올지 예상해 보자.


[시험 1]에서는 시험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이 너무 좁다. 그렇기에 상식적인 수준에서 성취기준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문항을 출제할 경우 변별이 불가능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형태의 문항이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 1. 98 X 57 X 987 X 568의 값은? [2점]



저런 문제를 20개 늘어놓으면 변별이야 되겠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시험을 가장한 고문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시험 2]에서는 다루는 범위가 넓고, 다루는 내용의 수준 또한 높기에 변별을 위한 몇 문항을 끼워 넣는 방식이나 전반적인 난이도를 상향시키는 방식으로 충분히 변별이 가능하다. '더럽다', '이런 문제를 풀라고 낸 거냐 장난하냐' 정도의 반응이 나오지 않게끔 출제가 가능하다.





물론 위 두 가지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단적인 예시를 든 것이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아래와 같다.


문항의 지저분한 정도는 시험 범위 및 개념의 수준과 반비례한다.


사교육을 경감하기 위해 학습 내용을 축소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애초에 수능과 내신이 변별이 필요하고, 등위를 나누어 산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입시를 치르는 시스템 하에서 학습 내용 축소는 문항들이 더 어려워짐(더러워짐)을 의미한다.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공부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킬러 문항' 밭이 되어버린다.


국어 비문학 지문을 연습하기 위해 LEET 지문을 풀게 되는 일이 생긴다.
수능 영어를 본 외국인들이 이게 뭐냐고 고등학생들이 보는 게 맞냐고 비판한다.
교원임용시험을 두 번 통과한 필자도 시간 내에 수능물리를 다 풀기가 어렵다.


물론,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개념이 많아질수록 학습 부담은 증가한다.


'양적으로는'


하지만, 그 늘어난 학습 부담에 비해 평가문항의 건전성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학습 부담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학습 내용의 증가는 개별 문항이 가지고 있는 난도의 평균의 감소를 수반하며, 시험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기술이 개입하여 성적의 우열을 가리게 되는 정도가 낮아짐을 말한다.


적어도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시험 문제를 풀 수가 없어요.'에서

"분량이 많이 힘들지만, 노력하면 풀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정 힘든 과목은 학원의 도움을 받을래요."로 변할 수 있다. 학원이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전체 응시자 수 대비 오답률이 높은 문항을 고난도 문항이라고 한다. 많은 학생들이 해당 문항을 틀리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다양한 이유는 차치하고, 적어도 틀리고 해설을 봤을 때


"아 내가 이 부분이 부족했구나, 내가 문제를 똑바로 안 읽었네."와 같은 피드백을 주는 문항이 올바른 평가 문항이다.


그러므로, 시험에서 다루는 학습 내용의 범위를 늘려야 한다. 범위가 늘어날수록 핵심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문항이 출제될 가능성이 높고, 기형적인 방식으로 난이도를 올리지 않아도 충분히 변별이 가능하게 되어 입시에서 학생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


저런 올바른 평가 문항 즉, '깔끔한 문제'들의 가치는 너무나도 높다.


틀렸을 때, "아 내가 이걸 실수했구나..." 읊조리게 만드는.


어쩔 수 없이 정답을 찾아내야 하는 수렴이 그 끝에 있을지라도, 그 문항을 푸는 과정에서의 발산적 사고를 존중하고, 시험이라는 것을 잊고 바라보게 된다면 지적 유희의 측면에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문제들 말이다.


다들 학창 시절에 만났던 깔끔한 문제들이 있을 거다. 필자도 몇 녀석이 기억납니다. 내가 오해하고 있던 개념을 콕 집어줘서 소중하게 노트에 오려 붙였던 문제들. 그런 녀석들이 쌓여서 개념이 완성되었던 기억이 난다.


<끝>



<중학교는 해당사항 없습니다>

물론 이 모든 논의는 고등학교에 한정됩니다. 중학교는 지나치게 어려운 내신 문항을 출제할 이유가 마땅치 않습니다. 내신 등급이 대학 입시와 무관하므로 성취기준의 도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정도로 문항을 출제하면 됩니다.


다만, 고등학교에 비해서 중학교의 학습 분량이나 내용의 난이도가 너무나도 쉬운 나머지 고등학교에 가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형태의 교육과정 개편 및 개별화 학습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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