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감독관 못해먹겠다

그럼 스승 말고 '교육공무원'하시던가

by 박승연

수능감독관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 진상을 알 수 없었을 때에는 '서있는 게 고되겠다.' 정도의 추측만이 남아있었지만, 직접 해보니까 이게 고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특성화고에 첫 발령이 났다.

모의고사 감독은커녕, 시험지도 구경 못해봤다.


그런데 수능 감독관으로 차출되어야 한단다.

'고등학교 교사'라서.


특성화고에서 모의고사 감독 한 번도 안 해본 초임 교사를 수능 1교시 정감독을 주는 게 가당키나 하나?

교사를 해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지 아닌지.


충분한 준비의 시간이 있던 것도 아니고,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전날에 시험교에서 진행되는 연수가 다이다. 그리고 1교시 정감독이라는 사실은 수능시험 당일날 알 수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위험에 노출된 채 수능시험 감독을 한다. 한 치의 실수가 집단소송으로 이어지는 살벌한 현장에서 말이다.



물론 제 경우가 흔하지는 않겠죠. 생각이란 게 있다면 특성화고 초임교사를 국어 정감독에 넣을 생각을 했겠습니까. '중학교 교사'보다는 낫겠지 이 정도 생각을 하면서 배정을 했을 것이라 생각은 해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대입을 위해서 치러지는 수능시험의 감독을 왜 교사가 하느냐.'라는 불만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해당 주장에 대해서 날 선 채로 비판하는 어떤 글을 봤습니다.


요약하자면,


1. 너희들이 힘들게 가르친 제자가 10년 넘는 학창 시절의 결실을 맺는 수능시험도 감독하기 싫다는 게 교사냐.

2. 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꼭 사교육 강사를 무시하더라, 임용시험 통과 못하면 무시해도 되는 거냐. 사교육 강사들이 교육과만 안 나왔을 뿐 입결도 더 높고 실력도 더 좋은 경우가 많다.

3. 이런 사람들은 스승이 아니라 그저 '교육공무원'일뿐이다.

4. 이런 상황에서 헌신하는 사람만이 선생님이자 '스승'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


이에 대한 제 생각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수능시험 감독을 하기 싫다는 게 교사냐

수능시험 감독을 교육공무원이 해야 할 당위성은 없지만, 집단적으로 치러지는 시험의 특성상, 그리고 아이들이 공부했던 공간의 특성상 '학교'가 가장 익숙하고, '교사'가 가장 문제없이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회사 입사 시험을 대학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면 무슨 소리가 나올까요? 비판하고 싶거든,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는 범하지 맙시다.


'너네가 제일 익숙하고 잘하니까 너네가 해라.'

'너네 제자인데 그 정도도 못해주냐.'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설득력도 떨어져 보입니다. 잘하니까 너네가 위험을 무릅쓰고 해라는 말은 구식의 어떤 집단들에서 많이 통용되는 말이죠?


우리가 수능감독을 하기 싫은 이유는,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교사 개인이 다 뒤집어쓰는 시스템적 구조에 의한 것입니다.




2. 공교육 교사들은 사교육 강사들을 무시한다.

누가요? 세상은 넓으니까 정말 저러는 분들도 있겠지만, 요즘에는 더더욱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제 확증편향일 수도 있겠죠.


다만 제 생각에는 둘은 영역이 너무나도 달라서 비교하기가 어렵다는 게 결론입니다. 영역 중에서 '교육'이라는 겹치는 분야가 있어서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고 있죠.


둘은 목적이 전혀 다릅니다.

공교육은 건강한 사회인을 길러내기 위함.

사교육은 입시에 성공하기 위함.


공교육의 부수적인 목표인 지식 습득이 대입을 위한 평가의 지표가 되었고, 그 부수적인 목표를 강조해서 시장을 형성한 사교육이 비교가 된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잘 안 됩니다. 같은 능력의 인간이 밥 먹고 수업준비만 하는 것과 다른 이런저런 것들을 같이 하는 상황에 놓이면 당연히 전자가 실력이 더 좋지 않을까요. 공교육이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냐고요? 아뇨... 둘은 달라요.


"1kg의 물질과 1L의 물질 중에 뭐가 더 큰가요?"

"둘은 단위가 다른데 어떻게 비교하죠?"

"제 말이요. 다른걸 어떻게 비교해요."


둘은 우열을 가릴 필요도, 비교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철인 4종경기 선수가 마라토너보다 기록이 안 좋다고 해서 욕을 먹어야 하나요?

변호사가 변리사보다 특허법을 잘 모른다고 해서 실력이 떨어지는 변호사인가요?

화재로 인해 대민지원을 나간 군인이 소방관보다 불씨제거 실력이 떨어진다고 군인의 자질이 없나요?


둘은 다르잖아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자고요.




3. 이런 사람들은 스승이 아니라 '교육공무원'일뿐이다.

콧방귀가 절로 나옵니다. 스승 대접은 바라지도 않아요. 내 일터와 직업을 사랑하고, 아이들에게 최대한의 진심을 다하고 있지만 스승 대접은 바라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참 교사라고 불리는 분들도 스승 대접을 바라지는 않을 텐데요.


권위는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세워주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입으로 스승이요, 스승 취급을 받고 싶소, 하는 것은 웃기지 않나요.


이 악순환의 굴레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으면 목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어떤 사람이 그걸 모두 감수하면서 직을 걸고 일하겠어요.


내가 살아야 사랑도 하니까 사리는 겁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내 자리를 위협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교육을 하고 싶지만, 아동학대로 신고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모님께 아이의 행동 특성을 소상히 전달하여 가정과 학교가 협력해서 바른 사회인으로 길러내고 싶지만, 편견을 가진 교사로 낙인찍혀 민원과 송사에 시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스승 말고 직업인인 '교육공무원'할게요.


허울뿐인 그런 칭호는 필요 없습니다.




4. 헌신하는 사람만이 '스승'이다.

필요 없어요. 그냥 직업인 할 겁니다.


사명감을 요구하지 마세요. 더군다나 사교육에 종사하시는 분이 교사에게 직업적 사명감을 운운하다니 매우 불쾌합니다.


사명감은요, 그것이 생길만한 토대가 있어야 싹을 틔우는 것이고, 그 토대가 유지되어야 자라나는 겁니다.


말로 그렇게 흔들어댄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교원을 보호해주지 않는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그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까지 우리는 스승이 아니라 '직업인'이자 '공무원'이라고 조롱받으며 움츠리고 버텨 볕 들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비판적인 논조로 제 생각을 막 쏟아내었지만, 저는 여전히 제 직업을 사랑하고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직업과 잘 맞았다거나 제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을 못 하겠네요.


당신처럼


"너네 그런 식으로 하면 스승으로 불릴 자격 없고, 한낯 공무원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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