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학교 교사는 무능해

손발이 다 묶인 상태에서 무언갈 해내는 건 '묘기'죠

by 박승연

1. 7등급이 교대에 입학하면 공교육이 망하나요?


7등급이 교육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이 여러 매체를 통해서 들려옵니다. 호들갑이라고 생각을 한다만,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과연, 내신이건 수능이건 7등급의 학생이 교사가 되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된다면 우리의 공교육이 망하게 되는 것일까요?


앞으로 언급하는 '교사'라는 표현에서 특별히 명시하지 않는다면 사립학교 및 대안학교 교원은 제하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교사'는 교육공무원입니다. 하지만 다른 공무원이랑은 굉장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입직을 위한 기본적이 허들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경찰공무원, 세무공무원, 소방공무원, 교정공무원, 우정공무원 등 공무원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신기하게도 교사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교원자격증이 있어야지만 시험에 응시가 가능합니다. 국가가 설계한 교원양성체계에서 교원을 다른 공무원과는 구별되는 형태로 양성 및 채용을 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따라서 다른 공무원 직렬에 비해서 '기회비용' 자체가 큽니다. 다른 직장을 다니면서 수험을 병행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교육대학원에 진학이 불가능한 학사학위 보유 직장인이 교사가 되기 위한 기본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독학사 취득 및 교육대학원진학 후 교원자격증을 취득해야 합니다. 아무리 빨라도 3년이 걸리죠. 시험 응시 자격을 갖추는 데 말입니다.


교원자격증을 취득했다고만 해서 끝이 아니죠. 교원자격증을 취득한 '예비 교원'들끼리의 경쟁인 교원임용시험을 합격을 해야 드디어 교사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왜 7등급 교대입학생이 생겼다고 해서 공교육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 아닌지가 밝혀집니다.


어차피 3명이 시험에 응시하게 되면, 2명은 불합격입니다.(2025 초등교원임용시험 평균 경쟁률 3 : 1 ) 100명이 응시하면 66명은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하죠. 그래서 만약 저 사람이 열심히 노력을 해서 남들만큼 실력이 갖추어진다면 시험에 합격을 할 것이고, 그렇다면 직무의 수행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교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7등급을 받은 그 사람이 교사가 되기 위한 자질이 부족하다는 가정을 깔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네요. 학창 시절에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던 저는 기적처럼 대학을 문 닫고 입학을 하고, 리버스 수석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원임용시험은 두 번을 합격했습니다. 랜덤 뽑기를 해서 채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고등학교 때 성적은 아무짝에도 상관이 없습니다. 결국 교원임용시험의 경쟁률이 의미가 있는 수준이라면, 공교육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물론 슬픈 가정은 해볼 수 있겠죠.


지금과 같은 교직 기피 현상이 더 심화되어 아무도 교사를 하지 않으려고 하여 지방교대의 입결이 말 그대로 '펑크'가 나버려 성적과 무관한 사람들이 교대에 입학을 한 상황과 동시에 지방기피현상이 심화되어 도지역의 교원임용시험 경쟁률이 1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면, 말 그대로 정말 아무나 가 교사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발생되기 때문에 공교육의 질이 바닥 없이 추락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2. 중등은 어떤데?


중등은 이미 초등이 가고 있는 길을 이미 밟았습니다.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시절 전국적으로 많은 수의 사범대학이 설립되었습니다. 기존에 국립 사범대는 졸업과 동시에 자동임용이 되었고, 사립 사범대 학생들은 순위고사를 응시해서 현장으로 발령이 났죠.


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사람은 늘어나니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특별히 국립사대 학생만 자동으로 임용이 되는 구조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결국 위헌판정으로 국립이건 사립이건 무관하게 교원임용시험을 응시해서 발령이 나는 체제로 변화하였고, 시험의 틀은 조금씩 바뀌어왔지만, 지금과 형태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IMF 이후 교사에 대한 선호도는 하늘을 찔렀고, 이는 비단 교사의 인기라기보다는 불안한 시대상에 정년이 보장된 직장은 모두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한전, 대학교 교직원, 각종 공기업들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였죠.


너도나도 교사를 하려고 하다 보니 사범대학을 제외하고도 교직과정 및 교육대학원을 거쳐 교원자격증이 교원의 자리에 비해 상당히 늘어나게 됩니다.


사실상 시간만 들이게 된다면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솔직해져야죠. 교육대학원에서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는 일은 시간과 돈만 충분히 있다면 누구나 다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고등학교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결론입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교사가 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투자한 사람들끼리의 경쟁인 교원임용시험이 존재하는 이상 공교육의 질이 심각할 정도로 떨어질 일은 없습니다.


안 그런가요?


최상위권만 모인다는 '의대'에 학창 시절 5~6등급을 받던 학생이 몇 입학을 한들 의료의 질이 크게 떨어질까요? 유급을 당하다가 자퇴를 하지 않으면 대단한 일이고 국가고시를 통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합격률이 90퍼센트가 넘는 시험이라고 쉽다고 생각하면 안 되죠. 애초에 응시자 풀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을 응시했는데 합격을 한다면, 애초에 원래 공부를 잘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퍼포먼스를 낸다는 것이기에 의사로서의 직무수행에 문제가 없을 겁니다.


'중학교 하위권, 고등학교 가서 전교 1등 하다' 뭐 이것과 비슷한 사례라고 불 수 있겠죠. 불가능은 아니나 상당히 드문 사례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교대나 사대나 누가 입학하든 간에 결국 다 걸러지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위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왜 학교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까요?




3. 학교만 그런 건 아니야. 공직이 다 그래


사실 학교만의 일은 아닙니다. 지금 공직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인기가 모두 다 함께 손잡고 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엇이 문제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각 직렬별로 다양한 특징이 있기 때문에 쉽게 일반화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치를 떠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민원'이죠. 민원은 사실 나쁜 게 아닙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요청하는 것이 민원이기에 우리 국민들은 언제나 국가기관을 대상으로 '민원'을 제기함이 옳습니다.


지금부터 '민원'이라고 칭하는 것들은 대개 '악성 민원'을 말합니다. 의도를 가지고 민원의 처리 담당자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민원이죠. 우리들은 이러한 민원에 너무나도 취약합니다.


사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에서는 사실 악성 민원에 대해서 높으신 분들의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합니다.


'너한테는 우리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어'와 같은 방식으로 제한을 둘 수도 있겠고,

수사기관에 의뢰해 법적인 책임을 묻게 할 수도 있겠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공공기관이 더 민원에 취약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민원'은 왜 요즘 공직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일까요?

저는 감히 아래의 문장이 정답이라고 확신합니다.


국민의 눈높이 상승.


사회가 발전하면서 국민의 눈높이가 너무 상승한 것이 공공서비스의 수준과 괴리를 일으켜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은 자유인이고, 자유인은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죠. 사회에서는 돈이 권리 행사의 징표와 같습니다. 돈을 지불하는 금액에 따라서 누릴 수 있는 서비스가 달라지고, 같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어떤 형태로 받을 것인지에 대해 선택할 수 있죠.


"트레이너 구별 없이 회당 7만 원"

"강남 XX의원 인모두 최저가 5.9만 원"

"XX갈비에서 식사를 하셨으면 커피를 1,500원에 드립니다."

"분당 OO학원 강사진 : 수학 OOO, 수학 XXX, 수학 DDD 선생님"


우리는 이제 '선택'을 하는 행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영화관 자리도 등급이 있지만 같은 금액에서 선호하는 자리를 고를 수 있고, 커피도 가격에 따라서 충분히 개인의 기호와 취향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카페인 수혈이 필요하다면 1500원에, 내가 원하는 원두를 골라서 먹고 싶다면 7000원에 즐길 수 있죠. 우리는 이제 선택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과거에는 어떠했을까요? 먹고살기가 팍팍해 개인의 기호나 취향 같은 것은 드러내기도 힘들었고,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반영이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자유롭고 자신이 누리는 것들에 대해서는 선택을 숨 쉬듯이 일상적으로 하는 세대가 우리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느낌이 오시죠?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선택'이 불가능합니다.

내가 원하는 학교를 보낼 수가 없고, 담임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반으로 옮길 수도 없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할 때 내가 원하는 경찰서에서 출동을 하지 않죠.

내가 주로 이용하는 2호선의 시트가 차가워서 직물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민원을 넣으면 들어주나요?

내가 다니는 미용의원의 직원들은 매우 친절한데, 보건소에서는 나를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 같습니다.

결혼은 너무 기쁜 일인데, 혼인신고서 작성을 안내하는 공무원은 불친절해서 기분이 나쁩니다.


모든 것을 다 고를 수 있지만, 공공에서 제공하는 것들은 내가 고를 수 있는 것이 없거나 현저히 적습니다.

만족을 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짜증이 나는 것이죠.


그 짜증이 공공기관을 향햐게 되면 '민원'이 되고, 그 민원이 공공기관을 병들게 합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껍질을 뒤집어쓰고 눈만 빼꼼 밖을 바라보고 있는 소라게를 자처하게 만듭니다.


왜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사회에서 제공받는 서비스보다 선택의 폭이 좁고, 친절하지 못할까요.


다 알면서 뭘 물어요. 돈 문제죠 돈. 당신에게 친절해봐야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요.

민원에 대한 친절도로 성과급을 큰 폭으로 변동시키면 동사무소가 아주 친절해지겠죠?

실적이나 능력으로 등급을 매겨서 연봉을 차등지급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계량'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학교는 더 그렇습니다.



4. 공교육 종사자의 '능력'을 계량하기 어려운 이유


공교육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공교육의 목적은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회인 양성'입니다.


거칠게 말해서 이상한 놈이 사회에 돌아다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국민 수준의 최하방을 다지는 것이 공교육입니다. 이런 기관에서 실적을 무엇으로 따질 수 있을까요?


대학입시 성적으로 따져볼까요?

그럼 특성화고는요? 중학교는요?


아~ 중학교는 특목고, 전사고 입시 실적으로 따지면 되죠.


어? 그럼 상대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학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일은 더 힘들고, 돈은 더 못 벌겠네요 거기에 계신 선생님들은.


학원처럼 소위 말하는 학군지의 선생님들의 입시 실적이 더 좋을 테니 실력 좋으신 선생님들이 한 곳으로 다 모이겠네요. 대치, 목동, 중계, 분당, 수성으로요.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입시 성적으로 따지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럼 뭐 학생들 징계 건수나 생활지도 건수, 학부모 상담 횟수로 평가한다고 해볼까요?

그럼 이제 일부 문제 있는 교사들의 제도 오용으로 인한 학교 불신으로 국가가 떠들썩해지겠죠.


네, 그렇습니다. 공교육은 실적을 계량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직급도 교사, 교감, 교장으로 단순화되어 있고, 심지어 단일호봉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기보다는 국가의 재원을 이용해서 학생들을 올바르게 길러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가장 쉽게 실적을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인 '매출', '실적', '수입'과 같은 숫자놀음이 불가능해지죠.


그래서 일반적인 사회의 기준을 들이대면 되게 이상해 진다는 겁니다. 공공기관 중 학교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특징이죠.


그렇다면 학교와 교사는 과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5. 범인 찾기는 중요하지 않아.


물론 문제가 있는 교사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부 교사를 가지고 와서 교사집단 전체를 매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마찬가지로 악성 민원인 학부모도 분명히 '일부'일 겁니다.


만약 교사들도 악성 민원인에게서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우리의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흘러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문제는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것이죠.

학부모는 교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해코지를 할 수 있지만, 교사들은 민원인인 학부모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할 뿐입니다.


자신이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권리 구제를 하려는 교사가 독종이나 별종 취급을 받는 상황이죠. 아니라고요?


"선생님... 물론 선생님 말씀이 옳으시지만 교육적으로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시잖아요..."

"학부모님은 미워할 수 있지만, 학생이 학교에 있잖아요..."

"어떻게 학부모를 고소를 합니까..."

"선생님에 대한 보호 조치 선에서..."


이런 말 직접 듣지는 않더라도 한 다리 건너서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는 '교육자'라는 호칭 때문에 피해를 입어도 쉽사리 대응을 하기가 어렵게 만드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결국 학교는 소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굳이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하지 않습니다.


현장체험학습이 사라집니다.

단원평가가 사라집니다.

체육활동이 축소됩니다.

실험활동이 사라집니다.

밥을 안 먹어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자는 학생을 깨우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에 돌아다녀도 제지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게끔 강제하지 않습니다.


강제하다가 그게 마음에 안 들어버리면 아동학대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데, 뭘 합니까.

손 발이 다 묶여버린 상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운이 좋아 짧은 경력이지만, 선생님들 사이에서 선망하는 '좋은'학교와

한숨이 푹푹 나오는 '힘든' 학교에 모두 재직해 봤던 경험이 있습니다.


두 곳 다 교사라고 불리지만 학교에서의 생활은 전혀 다릅니다.


힘든 학교에서는 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뭘 하려고 해도 다 민원이 빗발치니까요.


좋은 학교에서는 학부모와 교사가 한 팀입니다. 선생님들은 우리 학교에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십니다. 부모님들과의 합작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힘들지만 해내입니다. 힘든 학교에서는 굳이 하지 않는 것들이라도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면 합니다.


"아니 그럼 우리 애가 거짓말을 한다는 건가요 왜 우리 아이랑 하는 말이 다르죠?"

"아이고... 선생님... 우리 아이의 학교에서의 모습을 전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연 어떤 말을 듣는 교사가 아이들을 위하는 진정한 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자녀의 학교생활은 이제는 교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가 제공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충분히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렵습니다.


괜한 정의감에 평생의 직업을 잃을 수도 있는데, 객기 부리지 않고 그냥 숨 죽이면서 버티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숨 죽이는 선생님들이요? '좋은'학교에 가면 눈물을 흘리며 날아다니십니다.


자, 그럼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공립학교 교사들은 무능한가요?


아니면 환경이 그들을 무능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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