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에 집중해서 좋아진 것 뿐이다.
ADHD의 특성은 과행동성, 충동성, 주의력 결핍으로 보통 얘기한다.
요즘 아이들을 키우면서 예전보다 훨씬 학원에 있는 시간을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학습에 걸림돌이 되는 병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계속 문제있고 부족한 사람의 지적을 받는 아이는
자신에 대한 감정과 인식이 엉망이 된다.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부모는 <<너의 문제를 고치라>> 라는 말을 할 것이다. (나도 내 아들에게 그랬다)
아이의 문제를 고쳐야 되니까 고치라고 말을 한 것 뿐이지만
정작 아이에게 도달된 메세지는 <너는 문제있는 못 마땅한 사람> 이라는 인식뿐이다.
아이는 자신을 못 마땅해 하기만 하는 부모에게서 결핍의 에너지만 받는다.
그 결핍의 에너지는 아이의
결핍된 행동, 결핍된 말, 결핍된 분위기를 낳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는 아이가 제발 잘 되기를 바란다. 문제가 고쳐지기만을 바라는 동안
문제 있는 아이만을 느끼고 인식한다.
어떻게든 아이의 그 문제만을 고쳐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록 문제있는 아이의 모습에만 집중한다.
그러면서 결핍된 사람으로만 아이를 느끼는
그 감정 에너지를 계속 준다.
감정과 느낌이 에너지고 이 에너지가 결과를 만든다.
아이는 받은 에너지대로 부족하고 결핍된 사람으로 인관관계를 맺고, 결핍의 우울한 에너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아이의 결과는 받은 그 에너지 그대로 출력된다.
결국 부모가 무엇을 느끼느냐가 아이의 현재와 미래 모습을 결정한다.
과거 어떻게 했던 간에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나도 ADHD이면서 산만하고 충동적인 성향이 있음에도 내과 의사로서 내 의원을 독특한 형태로
(건강 검진이 아니라 치료만 하는 내과임에도 하루에 100명 -150명이 매일 오는, 정말 기상 이변일 때는 80분 정도 오실 때도 있다 ^^; )
키울 수 있었던 것과 ADHD, 틱, 과민성 장, 과민성 배뇨 장애였던 아들이 현재 멀쩡하게 공부하는 학생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쁜점을 고쳐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나쁜 점에 에너지를 주지 않고
좋은 점을 키웠기 때문이다.
과행동성+ 충동성 + 주의력 결핍
나는 나의 이 점들이 좋지 않은 것인 줄은 나중에 한참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고
미친듯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힘인데도.
ADHD가 있으면 좋아하는 일이나 목표에 미친듯이 빠져들 수가 있다. 집중력과 또 다른 의미로 에너지가 엄청 나다. 지치지 않는다. 일종의 과행동성이다.
사실 나는 집중력이 좀 떨어졌지만 하루에 10번이상 내 목표 수능점수를 적고 나서 잠이 들었다. 어린 나에게는 말이 현실을 만든다는 사상과
부모와 다르게 살수 있는 희망인 <의대>에 나는
완전 빠져들었었다.
나는 의대가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내가 부족하고 얼마나 잘못한 것이 많은지에 관심가질 시간이 없었다.
그저 나는 내가 무조건 되어야할 것이 당연히 될 거라는 것을 느끼는 데 집중하느라
바빴다. ADHD라는 걸 아예 몰랐던 재수생이었던 나는 내 산만함이 불안에서 오는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갔었다. 그래야 의대 가기 위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
나에게는 오로지 의대 의대 뿐이었다.
어쨌든, ADHD의 모든 잘못들을 바로 세우려고 그 잘못 단점들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순간 그 집안의 에너지는 엉망이 된다.
선하고 좋은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에 집중해서 얘기할 때
그 선하고 좋은 것의 비중이 점점 키워져 가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숱한 ADHD 단점들은 아이의
높아진 자존감으로 스스로 해결하고자 한다.
아니면 묻히거나. 그럴 때 고쳐지는 것이다.
적어도 이 아이의 장점 하나에 감사하거나 기분좋다고 표현해야 한다..
물론 위험하고 예의 바르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알려줘야만 한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알려준다.
대신 부모가 스스로 아이의 장점 하나라도 찾아서 스스로 기뻐해야 한다.
아이가 아직 바뀌지 않아도 부모가 먼저 스스로 기뻐할 때 그 에너지를 받아서 아이는 바뀌는 것이다.
특히 억지로 잘했다고 칭찬하지는 않는 것이다.
너가 000 하는 모습에 엄마가 참 좋다. 참 기분이 좋다. 엄마가 안심이 된다. 고맙다.
이런 엄마의 감정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라는 아이 덕분에 엄마가 기쁘고 행복하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럴 때 아이에게 기쁨과 감사의 에너지가 전달된다.
아이는 그 기쁨과 감사의 에너지를 먼저 받은 후에야 드디어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가 먼저 바뀌어야 내가 기쁠 수 있다>의 프레임은 <이 아이는 부족한 아이,문제있는 아이>라는 에너지만 계속 내뿜을 뿐이니까 말이다. 결국 어떤 에너지를 받느냐에 따라 아이는 결정된다.
에너지는 부모의 감정 에너지이다.
정리하면 부모가 스스로 기뻐할 때 아이는 그 에너지를 받아서 바뀐다. 스스로 기뻐하는 방법은 부모 스스로 아이의 기특한 점, 고마운 점을 찾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며 하는 말이 아이를 바꾸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해서 ADHD인 아이를 만나지 않고도 부모를 교육해서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물론 지금은 바빠서 하지 않지만 말이다.
대신 나는 이 방식을 환자들과 직원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환자들과 직원들이 바뀌기를 바라지 않고
내가 내 장점에 집중해서 잘 된 것처럼, 그들의 장점과 고마운 점, 기특한 점 하나에 스스로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이 노력을 과연 직원들과 환자들은 모를까. 의사가 항상 환자에게 웃는데.
내가 스스로 기쁠수록 내 편도체는 억제되고 대뇌는 활성화되어 환자에 대한, 치료에 대한, 병원 운영에 대한 창의적인 생각들을 더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결코 환자를 지적하고, 직원을 지적해서 얻는 것이 없었고 내 스스로 기뻐하고 고마워할 때 모든 것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