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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지옥을 경험하다 /수술,중환자실

4기 암환자의 슬기로운 치병 생활

by 암슬생

강동 소재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다. 항암, 수술, 전 항암, 예비항암, 항암제..

나와는 전혀 무관했던 단어들을 접하게 되었다.


수술은 서울대병원에서 하기로 했다. 워낙 큰 수술이라 담ㆍ관ㆍ췌 분야 권위자이신 장*영 교수님 일정을 어렵게 받아 9.25일 휘플수술(pppd)을 하기로 했다.


바터팽대부(Ampulla of vater)는 담즙과 췌즙이 모여 십이지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1센티가량의 통로인데 여기에 종양이 생긴 거다.


희귀한 암이긴 했지만 췌장암이나 담도암보다는 예후가 좋은 암이라고 했는데 나의 경우는 발견 시기가 늦어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췌장, 간 일부까지 포함해 절제하고 담낭을 제거하고 팽대부 제거로 없어진 담즙, 췌즙 통로를 십이지장에 직접 연결하는 8시간짜리 대수술.


최근 유행하는 로봇수술을 하기로 했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회복이 훨씬 빠르고 더 정밀한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여 로봇 수술로 결정했다. 입원을 하고 수술을 했다.


두렵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났지만 와이프의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을 보며 반드시 이겨내리라고 다짐을 했다.


전신 마취 후 수술. 오랜 시긴 뒤에 겨우 정신이 들었으나 혼미했다. 통증이 심해 마약성 진통제를 계속 눌렀다. 마무리 눌러도 15분 간격으로만 진통제가 투여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일반 병실로 옮겨져 비몽사몽 상태인데 잠을 자면 안 된다고 하며 심호흡을 시켰다.

진통제에 취한 상태에서 잠을 참으며 호흡을 하는 건 통증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자기야 물~~ 좀, 너무 졸려. 아파"


"그래 그래, 조금만 참자 자기 잘 참잖아"


그렇게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약이 되길 바라며 악몽 같던 하루가 지나가는듯했으나 또 다른 악몽이 찾아왔다.


수술 부위에서 피가 솟기 시작해 온몸이 피로 뒤범벅이 되었다.


"어머, 저 피. 어떡해 어떡해"


아직 난 정신이 몽롱한 상태인데 와이프의 비명소리와 의료진의 다급한 움직임을 통해 본능적으로 뭔가 잘 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 수술 후 온몸이 피범벅이 되었던 순간

워낙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단다. 온몸에 염증이 너무 많았다고 어찌 이런 상태에서 회사를 다니고 움직일 수 있었느냐고. 그래서 수술이 훨씬 어려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출혈이 멈추지 않아 몸 밖으로 새어 나온 것이다. 긴급하게 중환자실로 이송이 됐다.


이때에도 난 여전히 통증과 졸음, 목마름 그리고 혼미함의 고통, 와이프의 눈물 속에서 또 다른 고통의 순간으로 이송되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3일 동안이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잠도 못 자고, 출혈은 계속되고.. 생 지옥 같았고 거기에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몸서리가 쳐졌다.


와이프의 심정은 또 어떠할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웠을지. 얼마나 내가 가엾고 안쓰러웠을지..

■ 수술 후 배액관을 채운 피와 수술 찌꺼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와이프는 그 삼일 동안 중환자실 앞을 잠시도 벗어나지 않고 밤낮으로 울며 기도하며 버텼다고 한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일반 병실로 옮겨져 본격적인 회복에 들어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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