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일종의 선물
사람은 언제부터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할까. 나의 경우는 분명했다. 고시원과 학원 문을 닫은 그 순간부터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치 세상과 나를 가르는 경계선을 그리는 것 같았다. 이제 이 안에서는 나 혼자라는 걸 선언하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그저 조용함이었다. 침묵이 낯설진 않았다. 오히려 이 고요함이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침묵은 무게를 더해갔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형광펜으로 줄을 긋는 소리, 가끔 들리는 한숨 소리. 이런 소리들만이 나의 하루를 채웠다.
휴대폰을 보면 친구들의 일상이 흘러갔다. 누군가는 회사에 취직했고, 누군가는 연애를 시작했고, 또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들의 삶은 마치 잘 편집된 영화처럼 보였다. 반면 나의 하루는 편집 없는 장시간 촬영 같았다. 같은 장면의 무한 반복.
처음으로 진한 외로움을 느낀 건 저녁시간이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산 편의점 삼각김밥을 도시락을 데우러 갔다가, 문득 식탁 위에 놓인 내 삼각김밥 하나가 너무 쓸쓸해 보였다. 그때부터였을까.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씻으면서도 외로움이 따라다녔다. 마치 그림자처럼.
주말이면 더 심했다. 방이 갑자기 더 좁아지는 것 같았다. 책상과 침대 사이 한 걸음, 문에서 창문까지 한 걸음. 이 작은 공간이 때로는 감옥처럼, 때로는 은신처처럼 느껴졌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라져도 누군가 알아차릴까. 하루 종일 방 안에만 있어도, 밖에서는 여전히 해가 뜨고 지고, 사람들은 걱정 없이 살아갈 텐데. 그런 생각이 들면 더욱 외로웠다. 세상에서 잊혀진 것 같은 기분.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움은 형태를 바꿔갔다. 처음에는 그저 쓸쓸함이었다가, 점차 불안이 되었고, 때로는 분노가 되기도 했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다른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나처럼 외로울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외로움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씩 깨달았다. 이 외로움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특히 밤이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고시원의 모든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마치 별처럼 보였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외로움을 안고 공부하는 사람들. 그들의 존재가 위로가 되었다.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외로움이 조금은 덜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외로움은 일종의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나 자신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지만, 실은 그때야말로 가장 진실된 나를 만나고 있었던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