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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의 늪

by 다니


왜 나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을까. 정말 동물을 사랑해서였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수의사'라고 소개받는 순간을 꿈꿨기 때문이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새벽 여섯 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창밖으로 달리기를 나갔다. 달리는 내내 상상했다. 수의사가 된 나의 모습을. 흰 가운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하루 스물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부족했다. 잠을 줄였다. 네 시간, 길어야 다섯 시간. 그렇게 빼앗은 시간들로 하루를 늘렸다. 스무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이 나중에는 누군가의 부러움이 되리라 믿으며.

SNS는 삭제했다. 하지만 가끔 무심코 들려오는 소식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대학에 합격했고, 누군가는 첫 월급을 받았고, 누군가는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상상했다. '아직도 고시공부 하는 애'. 그 시선이 두려웠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조금만 더'라는 말로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 '조금'이 모여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어느새 오 년이 되어있었다. 시간도, 돈도, 젊음도 모두 이곳에 쏟아부었다. 그런데 왜 나만 제자리걸음일까. 더 정확히는, 왜 나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실패자'로 보일까.

밤이면 이상한 상상을 하곤 했다. 내가 수의사가 되는 순간을. 그때 나를 무시하던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옛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그런 상상 속에서 나는 항상 빛나는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여전히 좁은 고시원 방 안의 평범한 실패자일 뿐이었다.


스트레스 해소법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나를 더 몰아세웠다. 더 적게 자고, 더 오래 앉아있고, 더 많이 외웠다. 그렇게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성공이 절실했다기보다는, 실패자라는 낙인이 두려웠던 걸지도 모른다.

가끔 화장실 거울을 보며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거울 속 얼굴이 낯설어서. 수면 부족으로 푸석해진 피부, 깊어진 다크서클, 생기를 잃은 눈빛.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고통스러운 과정이 나중에는 누군가의 선망이 될 거라고.

실패할 때마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졌다. "아직도 공부해?"라는 물음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 말의 뒤에 숨은 판단이 들리는 것 같았다. '능력 없는', '의지가 부족한', '시간을 낭비하는'. 그들의 시선 속에 비친 나는 점점 더 초라해져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성공 자체보다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 집착했던 걸지도 모른다. 수의사라는 직업보다는 그 타이틀이 가져다줄 인정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남들의 시선 속에서 완벽해지기를 갈망했던 불완전한 존재.

결국 나는 그 싸움에서 졌다. 아니, 어쩌면 그제야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더는 남들의 눈에 비친 나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리고 그때부터 비로소 나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인정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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