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그대, 내 며느리

D-13, 며느리의 출산

by HB

저녁에 아들과 며느리의 집을 다녀왔다. 출산을 13일 앞둔 며느리는 배가 한껏 차올라 숨 쉬는 것마저 힘들어 보였다. 얼굴도 조금 붓고 몸도 무거워 보였지만,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고왔다. 생명을 품은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특별한 기운이 있었다. 힘든 기색 속에서 담담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3년 전 결혼식 날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 무엇을 말해도 살피게 되고, 내가 하는 말 한마디, 며느리가 짓는 작은 표정 하나에도 서로 마음을 헤아리느라 어색한 기운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서히 가까워졌다. 억지로 친해진 것이 아니라, 일상을 오가며 마음이 조금씩 열렸고, 어느새 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해졌다.

오늘 며느리가 조심스레 “어머니, 배 한번 만져보세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순간 멈춰 섰다.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색했고, 솔직히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며느리가 자연스럽게 배를 내미니 내 손이 어느새 며느리의 부른 배 위로 올라갔다. 따뜻한 온기와 함께 작은 움직임이 손끝에 닿았다. 그 순간 마음 한쪽이 울컥했다. 나에게 그런 순간을 먼저 건네준 마음이 그저 고마웠다.


남편이 직접 요리한 비프스튜와 함께 곁들일 바게트, 며느리가 준비해 차려놓은 카프레제와 올리브가 식탁을 채웠다. 우리는 그 음식들을 앞에 두고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며느리가 임신 중 겪는 변화들, 아기의 움직임, 준비해 둔 물건들에 대해 들려주는 말들 속에 그녀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아기방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작은 서랍을 열자 아기 옷, 속싸개, 기저귀등이 차곡차곡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 서랍 하나에 담긴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그걸 준비한 며느리의 마음이 얼마나 예쁜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며느리의 배는 더 불러 보였다. 말을 이어가다 숨이 차오르는지 가끔 짧게 숨을 들이켜고, 한두 번은 조용히 한숨을 쉬는 모습도 보였다. 그 순간 마음 한편이 쿡하고 저렸다. 우리는 흔히 새 생명이 온다는 기쁨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정작 그 생명을 품고 버티고 있는 임산부의 고단함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곤 한다. 눈앞에 있는 며느리가 힘겨울 때마다 애처로운 마음이 들어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되기 쉽지 않지?" 그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동안 말로 하지 못했던 걱정과, 안쓰러움과,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 올라와 꺼낸 한마디였다. 아프진 않을까, 힘들진 않을까, 혼자 참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모든 마음이 섞여 '쉽지 않지?'라는 말로 나온 것이다. 며느리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끄덕임 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들어 있는지 느껴져서 더 마음이 짠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차 오르고, 허리가 쑤시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하는 마음. 그 길고도 단단한 인내의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차근차근 해가는 '엄마가 되어 가는 사람'의 묵직한 성숙함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일어났다. 며느리를 편히 쉬게 하고 싶었다.


집을 나설 때, 아들이 지하주차장까지 우리를 따라 나왔다. 별말 없이 걸음을 맞춰주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저렸다. 이제 진정한 가장이 되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스레 코끝이 찡하며 눈물이 나왔다. 사돈댁에서 며느리를 바라 보는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을 보며 오늘 하루를 천천히 되짚었다. 며느리의 고운 마음, 아들의 배웅,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의 존재까지. 어쩌면 특별하지 않은 장면 같지만, 내게는 모두 다 귀하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슬퍼서가 아니라, 마음이 고마워서 그리고 행복해서.
가족이 이렇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 것 같았다.


고운 그대, 내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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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