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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애호가의 한 달 커피 끊은 후기

by 시안 Feb 21. 2025

나는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술이 체질상 안 맞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술맛을 모르고, 취하는 기분을 싫어한다. 담배는 펴볼생각도 안 해봤는데, 승무원 시절 뭐 10시간 비행 이렇게 하고 났을 때, 그날 같이 비행하는 시니어 크루가 유독 갈군 날. 수용할 수 있는 스트레스가 0~10부터라고 할 때 20, 30을 빡빡 찍어버리는 날에는 아 진짜 담배 한 대 피우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긴 했다.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술 담배도 안 하는데 커피 정도는 마셔도 되지 하고 정말 매일 마셨다. 얼추 근 10년을 매일 마신 것 같다.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고 나서는 아침을 거르다 보니 좀 더 본격적으로 일어나자마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자는 동안 어느 정도 탈수가 일어난 몸에 엄청나게 차가운 카페인을 부어주면 세포 하나하나 까지 카페인이 돈다. 그런 각성과 향긋한 커피 향이 좋아 정말 커피에 열광했다. 게다가 거의 칼로리가 없다시피 하니 더 마음껏 마셨다. 



급성 편도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며칠간 편도선이 심하게 부어 물을 삼키기도 어려워 영양제를 수액으로 맞았다. 이후 상태가 호전되어서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입에 댔던 것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환자복을 입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수혈하는 나의 모습은 내가 봐도 어이없었는데 아직도 그때 그 커피맛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수면에 문제를 겪게 되었다. 보통 잠이 들려면 1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했고, 자극을 많이 받은 날에는 서너 시에나 잠들 수 있었다. 수면의 질이 좋지 못해서 자고 일어나면 항상 몸이 무거웠다. 기운이 딸리니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찾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체질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나 잠을 전혀 못 자거나 할 만큼 카페인 민감도가 높지는 않았기 때문에 불면에 가장 큰 원인이 어쩌면 커피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일단 커피를 너무 좋아하기에 커피를 줄이거나 끊는다는 건 나에게 없는 선택지였다.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면 도무지 아침에 잠을 깨는 것도, 공복을 달래는 것도, 일을 시작하거나 식사를 마무리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커피를 끊어봤다는 글이지만..ㅎㅎ커피를 끊어봤다는 글이지만..ㅎㅎ

그러다 유튜버 최겸 님의 영상을 보고 설밀나튀(설탕, 밀가루, 나쁜 기름, 튀긴 음식)를 가급적 식단에서 배제하기 시작했고, 커피는 끊어보았다. 하루에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한잔 정도는 마셨다. 물론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을 '수혈하는' 기분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여전히 커피의 향과 커피 마시는 기분은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니 커피에 대한 열정이 반감되었다. 나는 커피의 많은 매력적인 속성 중에서도 카페인이 몸에 들어왔을 때의 기분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다. 



처음 며칠은 반신반의했다. 꼭 커피까지 끊어야 하나? 지금껏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한두 잔 마시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끊을 필요가 있나? 그런데 커피를 끊은 후 며칠 이내로 잠을 푹 자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처럼 까무룩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했다. 문득 생각해 보니 나는 잠이 스르륵 든다는 느낌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피곤에 지치고 지치다 배터리가 순간 탁 꺼지듯이 기절하는 것처럼 잠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도 여전히 커피를 끊기는 아쉬웠다. 그러다 커피를 끊은 지 20일 차 되는 날 점심식후에 디카페인 커피가 아닌 일반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셨다. 그리고 그날 날밤을 샜다. 승무원 시절엔 밥먹듯이 밤을 새워야 했는데 오랜만에 밤을 새우니 다음날 일상생활이 안되고 너무 힘들었다. 그간 커피를 끊으며 몸이 좀 더 카페인에 민감해진 것 같다. 이 경험으로 나는 카페인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고 카페인이 그간 나의 수면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수면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수면의 질을 크게 높여보고 싶다면 커피를 끊어보는 시도가 큰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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