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단상
상트페테르부르크 백야의 여름밤이 깊도록
맥주와 포도주를 다 비웠을 때
그가 배낭에서 압생트 한 병을 꺼냈지
고흐가 마셨다던 싸구려 독주
그로 인해 시신경이 파괴되었다고
그로부터 처음 들었지
우리에겐 더이상 마실 술이 없었고
그는 이 술을 권할 순 없다며
혼자 잔에 따라 마셨는데
그래도 좀 아쉬웠던지 한 잔 정도
마실 수 있냐며 권했을 때
이 술을 일상적으로 마셨을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며
보드카보다 맑고 향기로웠을 그 마음을
우린 같이 따라 마셨지
고흐와 선술집에서 술을 마셨을 그들처럼
나는 한여름 페테르부르크의 한 외진 아파트
낡은 창가에 앉아 그와 술을 마셨네
가난한 예술가의 삶과 그의 영혼에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