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눈으로 삶을 다시 설계한다면

by 모두부자되는세상

우리 집 창밖을 보면 놀이터가 보인다. 요즘 어떤 아파트들은 아이들이 없어 놀이터를 없애고 주차 공간이나 다른 시설로 만든다고 하는데 우리 아파트 단지는 아이들이 꽤나 있다.


창밖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참 좋은 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놀고 하는 것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때로는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기도 하고, 위험한 놀이도 하고 아무튼 그 모습과 소리가 좋다. 정말 타임머신이 있다면 아이로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이 50을 넘긴 반백살 아저씨가 되다 보니 창 밖의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어릴 적 어땠나? 생각도 들 때가 있다. 잘은 기억은 안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별다른 추억이 없는 것이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정말 조용한 아이였다. 그런 모습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누님과는 11살, 형님과는 9살 차이가 난다. 원래는 저와 3살 터울의 누나가 있어야 하는데 첫돌이 갓 지났을 때 아파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마 그 누님이 살았다면 나라는 사람은 없었을 수도 있다.


학교를 들어가기 전 나는 늘 혼자였다. 아버지는 회사로, 어머님은 쥐꼬리만 한 아버지의 월급 가지고는 생활이 어려워 동네 공장과 건설 현장에 부업을 다니셨다. 누님과 형님은 당연히 학교에 갔고, 아침 9시가 넘어가면 그날 저녁까지는 거의 혼자였던 셈이다.


그 시기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아랫집 아주머니가 절 봐주셨던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네에도 저와 친구가 될만한 또래는 없었다.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집에 나와 동갑인 여자아이가 있긴 했는데 잠시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동네에는 나보다 3-4살 많은 형들이 전부였고 가끔씩 나를 껴주어 놀아주곤 했는데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어릴 때 말하는 방법을 놓쳤던 것은 아닌가 싶다.

책이라도 많이 봤으면 좋은데 한글을 완전히 깨친 것은 국민학교를 입학하고도 2학년 여름방학이 지나서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항상 나머지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선생님들이 열정이 있었고 자신들의 제자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냥 자기 할 일 하고 퇴근해도 될 텐데 공부 못하는 나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에게 다시 수업을 해주고 알 때까지 가르쳐 주었으니 말이다. 요즘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한글을 미리 때우고 심지어 영어까지 공부하고 들어가는 세상이니 참 많이 변하기도 한 것 같다.


이야기가 잠깐 새기는 했지만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나는 늘 누군가와 상대하는 것을 늘 어렵게 느끼곤 한다. 솔직히 나라는 사람이 재미없기도 하거니와 운동을 잘하는 편도 아니기에 가끔 오해를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 말이 없으니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렵게 생각하거나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좀 적극적으로 친구들에게 다가가 놀았다면 더 많은 친구와 좀 더 밝은 성격을 가졌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생각해 보면 내가 먼저 친구들에게 다가가 같이 놀자고 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너무 시끄러운 아이들은 오히려 내가 피했는데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런 친구들과도 잘 놀고 싶다.


세상을 보는 것도 좀 더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증을 가지며 탐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 애 늙으니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아마도 내 행동이 굼뜨고 세상 관심이 없고 조용한 탓이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나는 굉장히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았다. 아버지 탓을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아버지는 모험을 좋아하지 않았다. 늘 자신이 빛이 없다는 것을 굉장한 자랑으로 여겼고 돈을 그저 아끼고 모으는 것 밖에는 돈을 버는 방법은 그저 노동을 통해 서라고만 생각하셨던 것 같다.


형님이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도 반대가 많았는데 형님이 사업에 실패할 때마다 월급 생활이나 하라고 다그치셨다. 그런 영향인지는 몰라도 나 또한 모험을 싫어하고 무엇을 할 때 굉장히 두려움이 많아 시작도 못해보고 늘 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놓쳐 지나간 것들이 많았다.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다가가 좋아한다는 말도 못 해보고 끝난 경우도 허다하다.


만약 정말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좀 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늘 도전하면서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가 보통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으니 무엇을 해도 불안한 것이다. 어떤 일이 닥치게 되면 나처럼 할까 말까? 남들은 어떻게 하나 눈치만 보다가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어디서 나올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가 아닐까 싶다. 자신을 사랑해야 자신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은 스스로가 찾아야 하는 것이지만 매일 하는 '긍정 확언'이 도움이 될 것이다. 스스로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외쳐도 되고, 글로 써서 스스로 뇌에 각인을 해도 좋다.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이유 중 또 하나는 지식의 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경우 정말 지식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헷갈리고 갈등을 했다. 그나마 최근 3년 전부터 독서를 하며 나의 무식함을 조금 유식함으로 채우고 있다. 아는 것이 하나 둘 쌓이다 보니 자신감도 붙었고 실행력도 늘었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매일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며 자신을 바라보면서 부족한 점을 채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목표만 크게 잡는 것은 그냥 꿈일 뿐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그들이 쓴 책을 보면 '운'이라는 것도 노력하는 자에게만 다가온다고 한다. 설사 아무 노력 없이 '운'이 온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은 '운'이 왔다 갔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나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자신감을 만들고 나를 믿게 해주는 유일한 도구다. 나를 믿고 그 믿음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나의 과거를 생각해 보니 할까 말까 고민이 될 때는 우선해 보고 후회하자는 마인드도 중요하였다. 이왕 하는 거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거기에서 배우는 것이었다. 성공을 하면 성공한 경험을 쌓고, 실패하면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실패 없이 성공한 사람은 없다.


발명왕 에디슨도, 수많은 곡을 남긴 베토벤도, 철학, 과학, 예술에 천재성을 보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수많은 습작들과 실패를 교훈 삼아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그런 것을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실패를 하면 "내가 그러면 그렇지" 하고 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는 실패는 배우는 것이라는 마인드로 바뀌었다.


어린아이로 돌아가 내 인생을 다시 설계한다면 나는 첫째 좀 더 적극적인 아이가 될 것이고 많은 친구를 사귈 것이다. 둘째로는 좀 더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될 것이다. 세 번째는 두렵지만 도전하는 용기다. 두려움에 포기했던 것들이 너무나 아쉬웠다.


누군가는 인생 별것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인생 별것 없지만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 반 백 살 어쩌면 많은 나이기도 하지만 요즘 시대에 과연 많은 나이라고 할 수 없다. 아직 우리에게는 50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다.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하고, 운동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야 한다. 은퇴를 했을 때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은퇴인 것이다.


자 나와 함께 조금씩 준비하면 된다. 오늘도 나를 찾아 떠나보자.



* 이 글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초고임을 감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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