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정리해 봐도 결국 다시 돌아갑니다. 마음을 저리로 넣어둘 요량은 제게 없나 봅니다. 당신을 좋아한 시간이 이유일까요, 당신의 목소리가 이유였을까요. 사실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하네요. 찰나를 떠올려도 마음이 요동칩니다. 당신을 떠올리는 일은 이토록 큰 행복만을 가져다주네요. 마음을 다독이려 떠난 여행에, 다시 목적지를 잃고 마냥 빠져버리다 겨우 헤어 나왔습니다. 당신이라는 존재를 정리하려 한 제 탓이겠지요.
저는 당신의 조각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흔적에도 어느새 입가엔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그저 흔적을 보고, 생각을 떠올리는 것 하나만으로도요. 바보처럼, 헤실헤실. 그리 웃고 있는 저를 매번 발견하고는 합니다. 당신이 없는 빈자리는 무척이나 크겠지만, 그 기억을 안고 당신을 그릴 수 있으니 다행이려나요.
더는 전과 같이 좋아할 순 없지만, 그래도 저는 여전히, 아주 많이 당신을 좋아합니다. 여타의 아픈 감정들은 제 몫이 되겠죠. 끝이 보이는 여정에 오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저려옵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저에겐 이 순간들이 충분합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눴던 말들, 함께 본 장소. 당신께서 머문 자리에 제가 같이 할 수 있었다는 것. 그 사실이, 그 순간이 제겐 남았습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
사랑은 숙취와 흡사함이라, 행복했던 만큼 아프대요. 당분간 술이 미처 깨지 못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머리가 울리고 속이 울렁거리겠지만, 견뎌내야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충만해진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행복이 마음에 자리하고, 어쩌면 앞으로 영영 가져보지 못할 감정들을 담아보았으니.
이 순간들로 인해 오래오래 아플 수도 있고, 오래오래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두 감정 모두가 제게 남아있을 듯하네요. 어느 순간에는 환희로, 다시 어느 순간엔 후회로. 그렇게 마음이 요동치겠죠.
그럼에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한 순간에라도 머무를 수 있었단 사실이.
해서 이제는 멀어지겠습니다. 아직은 그 조각들이 제게 많이 남아있으니, 천천히 비워낼게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상자에 담아야겠습니다. 향기가, 기억이 새어 나오지 못하게 차곡차곡 쌓아 꼭꼭 덮어야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조금은 무뎌지는 날이 와서 덤덤히 견딜 수 있을 때쯤. 그때쯤 다시 상자를 열었을 때 색이 바래지만 않길, 꼭꼭 쌓아 올린 기억 그대로 자리에 여전히 있어주길 바라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