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혀있던 귀는 영영 열리지 않을테다. 도연은 잘 알고 있다. 마음에 한번 각인된 일은 여간해서 풀리지 않았다. 그 생채기 위에 한번 더 주문이라도 걸 듯 곱씹고 되새김질하며 마침내 부위를 단단하게 만들고 만다. 다만 그 단단함으로 또 다른 아픔을 견디는 약이 되진 못한다. 그저 아픔을 머금은 채로 굳어져갈 뿐이다. 어쩐지 서서히 녹아가며 온화해질 리 만무하다. 도연은 그런 식이다.
그것도 모자라 공기가 통하지 않는 골무를 덧씌워 상처 위에 바느질을 거듭한다. 더 아프기도 싫고 더 나아질 것 조차 기대하지 않겠다는 그녀만의 의식이다. 곯으면 곯았지 닿음으로 인해 치유가 될 거란 기대는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봉인해제되진 않을지 그 곳을 톡 건드려 확인까지 하는 극도로 폐쇄적인 사람. 세상에 지쳐, 삶에 지쳐 발악 중인지 모른다. 어떻게든 바뀌어보려 했음에도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시간과 세월조차 용인해주지 않은 경우에 갈 길이 그 곳 밖엔 없다. 컴컴한 어딘가. 계속해서 상자 속 안으로 들어가고 더 깊이 들어가다 보면 마침내 더는 갈 길도, 내려갈 곳도 없어지는 컴컴한 바닥이다. 세상에는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 변화할 수 있기에 인간이며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해낼 수 있기에 사람이거늘 그 변화가 절대 안 되는 사람. 그게 자신이 될 줄은 몰랐다. 변화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너무 서글프다고 말하고 다닌 게 불과 십오 년 전의 자신이었다. 어쩐지 서글프지 않냐며 비아냥 하듯 자신은 그들보다 조금 나은사람인 양 스스로를 확인하곤 했었다.
도연은 사람들의 말을 잘 못 듣는다. 그러다 안듣는다. 결국 들리지 않게 된다. 귓가에 손을 모아 크게 소리 내어도 들리지 않음이 가능한 줄 옛날엔 몰랐다. 대화의 초입이 지나면 말소리는 웅웅하는 소리로 덧입혀져 대체로 동문서답을 하고 사람들과는 그렇게 서서히 멀어지는 수순이다. 자신이 뭔가 이상한 줄은 어렴풋이 안다. 무엇이 문제인 줄도 대략 안다. 하지만 벗어나는 방법을 모른다. 이십 대 삽십대의 방황은 이해받고 기회를 부여받는다. 사십 대의 방황은 어디서도 알아주지 않는다. 내전에서 무능한 상대를 썩 물리치지도 못했으면서 뭘 믿고 감히 여기까지 왔냐는 듯이, 이삼십 대의 찌꺼기를 해결하지 않고 온 대가, 우스움만 보따리로 받을 뿐이다. 건네주지않고 짓누른다. 아작이 날때까지 꾸욱.
이십 대와 삼십 대 , 삼십 대와 사십 대에 이쯤은 이뤄놓고 와야 한다는 암묵적 룰이 있다. 그게 물질적인 것과는 한없이 먼 정서와 마음에의 계급이라 도연은 더욱 서글프다.
대부분의 말은 어쩌면 똥이라던 한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앞뒤 맥락이 가차 없이 누락된 왜곡이 우려되는 말일지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세상도 왜곡의 세상인걸. 그런 똥 같은 말가운데서도 자신에게는 약이 되는 말이 있다. 사람을 살리는 말 같은 거. 그런 게 있는 희망을 갖는 순간 빛은 보일 테다. 다만, 그런 말조차도 컴컴한 상자 저 깊은 곳에 있는 도연에게는 웅웅 거림 그 이상이하도 아니다. 그럴수록 웅웅 진동소리조차 소음이 되어 귀도 막아버리고 만다.
'이게 내가 받는 벌이구나.'
내 삶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해서 여기까지 왔구나. 사십 년간 이걸 얻으려고 살아온 건가 싶어 기가 찬다. 헛웃음이 나오다가 경멸의 마음에 깊이 빠졌다가 건져지면 다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적어도 힘들고 싫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건 그곳이 지옥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이 지옥이라는 걸 정확히 자각한 순간 진정한 화마지옥에 휩싸인다. 그런 불길 속에서 몇 달이 넘도록 도연은 헤어 나오지 못했다. 닿을 듯 말 듯 휘어감다가 도 이렇게 끝이구나 싶을 때 올가미를 놓는다. 삶의 의욕을 조금이라도 가지려 하면 다시금 그녀를 쥐어짠다.
"누가 널 그렇게 아프게 했니? 누가 널 이지경까지 만든 거니?"
사십 대에게 그런 말은 누구도 묻지 않는다. 스스로 했어야 할 일을 못해낸 사람일 뿐.
한때는 '어떻게 그런 곳에서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살아오셨어요...'라고 위로를 건내고 싶었을텐데.. 이제는 스스로 만든 굴 속에서 어떤 꿈도 꾸지 않은 채 구겨진 색종이처럼 버려져 사람들의 눈길조차 닿지 않는 장롱뒤편에 쌓인 먼지 만도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 도연을 버린 건 도연 자신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에게 있던 모든 기회가 다 사라진 것처럼 열차가 떠났음을 느낄 때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건 새로운 표를 끊기보다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목적지에 가는 것을 포기해 버린다. 역시 안되는 것이었다며 그저 그 동그란 바닥이 나의 유일한 세상이 된 양 만들어버린다.
닫혔던 귀를 열면..
이 모든 건 도연이 생각한 세상일 뿐이었다. 카메라 앵글을 영수와 자식들에게 돌려본다. 필름도 맨 처음으로 돌려본다. 모든 걸 거꾸로.
영수는 생각했다.
'이 여자를 우물밖으로 몸뚱이를 끌어내 뱃가죽이라도 우물가장자리에 걸쳐놨건만 이 여자는 두레박에 걸린 밧줄도 잡지 않고 자꾸만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 물 깊이가 어떤 줄도 모른 채. 아주 떨어지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스스로 떨어지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구해지지 않았음을 한탄하는 그런 사람. 그래서 무조건 살려야 하면서도 참 이렇게 살려주기 싫은 사람 같다. 있으면 고달픈데 없으면 아파서 놓을 수 없는 존재 같다. 뭘 자꾸 하려고 하지 말고 잘 해내려 하지 말고 도움의 손길을 그저 덥석 잡고 온전히 맡기기만 해도 좋을 텐데. 그렇게만 해줘도 아픈 곳을 낫게 해 줄 순 있었을 텐데..'
그런 가족의 눈빛을 도연은 잘 읽어낸다. 하지만 번번이 틀린다. 걱정 어린 마음에서 오는 영수의 끝마음은 읽어낼 줄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직감은 정확했던 적은 없다. 늘 한 끗 차이로 어긋난다. 닫힌 귀를 열면 만나게 될 세상에선 도연도 영수도 평온해 지기를. 꼭 그런 세상에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