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다. 모든 게 다 알 수 없어 헤매이고 어렵기만 한 날 들이다.
매일 거울치료 중인 도연은 고달픔과 서러움과 부아가 섞여 절로 표정이 일그러지는 고약한 마음의 냄새를 풍긴다. 거울치료를 통해서 완치가 되진 않았으니 거울 진료라고 해야 하나 싶다. 하루에도 여러 번 스스로가 미워진다. 미워지다 혐오하게 된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런 면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받기 힘들 것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어린 시절 들었던 구제불능이라는 말이 진언이 되어 지금의 도연을 만든 거라면 부모의 계획은 완전 성공이다. 참 이런 소원은 끝끝내 잊지 않고 이뤄내 주시니 하늘에도 신이 계시긴 계신 모양이다. 단지 내 편이 아닐 뿐이다. 스스로 일어날 힘이 있는 정신상태 건강한 이의 편일 뿐. 마지막 자존심이 알량한 존심으로 깎여내려 진 이에게 그런 자비는 없을지도 모른다. 지하 4층 세계로 한 없이 내려갈 뿐이다. 그곳에서 빛 한 줄기라도 기적처럼 만날 수 있을진 모를 일이다.
도연의 환멸 섞인 한숨소리,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틈새로 숨겨보려 하지만 어림없다. '쏴-' 쏘아붙이는 수도 소리도 이겨먹는 그런 한숨이다. 수 번을 몰아 쉬어도 부아가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인지 울화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다. 그 절망적인 소리를 열 살배기 딸내미가 그대로 답습했다. 옛날 영등포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뭔 어린년이 한이 많은지..'라고 욕 한번 찰지게 박을 수준이다. 정말 신물 나게 싫다. 내 생의 과정과 가장 동떨어진 곳, 조용하고 맑은 향이 나는 곳에 살게 하고 싶었던 두 자식 놈이 마치 자석으로 끌어들인 듯 도연의 그것들만 빼다 박았다.
그 놈의 한숨소리, 복압 가득하게 쏘아붙이는 모습, 그래놓고 말 몇 마디에 바로 무너져 수도꼭지 틀어둔 듯 울어재낀다. 혼자 둘 때마다 읽기 어려울만큼 무겁고 서슬 퍼런 중편 소설즈음 뚝딱 만들어내는 상상력까지. 쓸데없이 이런데서 선행학습을 한다. 굉장히 수월하게.
그저 빗자루로 쓸어 담아 소각해버리고 싶은 그런 모습들이다.스스로에게서.
'어찌 그런 것을 닮아버린 거니..'라고 슬퍼할 겨를도 없다. 십 년을 매일같이 들숨과 날숨, 얼굴근육, 말, 행동, 눈빛하나까지 초점을 맞추고 지낸 도연 스스로의 탓일 뿐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십 년이 지나니 이제야 알겠다. 그렇게도 귓가에 매일을 알려줬건만.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자업자득이다.
바야흐로 안팎으로다가 혐오의 시대다. 정치도 경제도 관계도 사회도 모든 게 다. 비교하고 이겨야만 하고 내어 줄줄 모르고 내 것을 빼앗기면 바보천치 등신이 되어버리는 그런 삶. 아득바득 내 새끼에게도 그런 것만을 먼저 가르친다. 현실적인 교육이라며 자화자찬 할테다. 나처럼 당하면 안되다고. 그놈의 내 아이 만큼은. 그런 무식한 걱정을 할때마다 아이는 서서히 표나지 않게 망가져 가는 줄 모르고.
그 이면의 날 것의 윤곽이 보이고 옳지못한 결과들을 수년이 흘러 삶의 곳곳에서 다름아닌 내 아이들을 통해 목도하게 될 때마다 삶의 의욕도 점점 더 깎일 뿐이다. 나조차 한 개도 모르겠는 삶을 아이들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까지 더해지면 도무지 오를 수 없는 산이 되어버린다. 하고 싶지 않아져 버리는 거다. 내팽개쳐버리고 싶다. 하지만 내팽개칠 수 없어 살포시 던지는 척 놓아두었다 이내 심장과 가장 가까운 가슴팍에 고이고이 두고픈 그런 것들. 마음 밖도 안도 도울 수없고 도와달라 요할 수 없고 자력이 아니면 안 되는 삶이니. 무재칠시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지만 애초에 그런게 없는 세상이었던 듯싶다.
'저기요. 저 돈 꿔달라는 거 아닌데요. 당신 것을 빼앗겠다는 게 아닌데요. 왜 그렇게 내게 박절한지요.'
그렇게 묻고 싶다. 도연에게 자신감은 다른 이에게 과한 과잉감정일 뿐, 다른 사람과 한 끗 결이 다른 감정선들을 꼬투리 잡는다. 그렇게 가슴속 새순부터 서서히 죽여가고 있다. 그냥 이곳은 원래 그런 곳인데 도연은 그저 불시착한 외계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적응해보려 하지만 내면체계가 다른 사람이라거나.
얼마가 흘렀다.
포기의 선에 다다랐을 때 무념으로 더해져 온 전화위복 덕분에 문득 희망이란 걸 보았다. 그게 희망인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한번 살아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으니 그 이름을 희망이라 꼭 붙여줄 테다. 희망의 끝이 행복이 아닐지는 모른다. 이미 경험했고. 하지만 수천만 사람들의 싸움터에서. 전쟁터에서. 마침내 그것을 보았다. 한 번 더 믿어보겠다고 도연은 생각했다.
'아 고쳐지는구나. 고칠 수 있구나.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힘이 남아있구나.'
바깥에의 있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들이 나를, 내 새끼를 살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들은 내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단지 가슴속에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 격려했을 뿐이다. 나는 그것을 목도했을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