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있는 내가 좋다

by 양연화


04.29.


라라랜드를 드디어 보았다. 꿈을 쫓는 이가 얼마나 멋있는지 꿈을 쫓는 이의 열정이 얼마나 멋진가를 보여주었다. 또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할 마음 맞는 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또한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꿈이 없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순간동안 가지게 된 꿈이 아닌 진짜 나의 꿈은 정확히 찾지 못했다. 그래도 형체는 있다. 자유로운 직업, 창의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것이다.

어제는 어비웃타임을 보았다. 여느 타임 슬립 영화처럼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이 영화는 주어진 하루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살라고 한다.


이 두 영화를 보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맞는걸까?’ 하고는 생각했다. 내 꿈에 가까운 삶은 여행을 다니며 소설을 쓰는 것이다.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며 삶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또한 내 꿈의 세상을 소설로 그리는 것이다. 사실 예전에 작가나 영화 감독 같은 꿈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허황된 세계를 쫓는 직업인 것 같아 포기했다. 그러다가 과학을 연구해서 인류의 진보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무작정 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는 대한민국 교육에서 야기된 잘못된 꿈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만큼 머리가 좋지도 않다. 구체적인 꿈은 대학에서 찾기 위해서라도 혹은 대학에 가서 더 큰 꿈을 야기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대학을 주 목표로 잡는게 맞는 것 같다. 내 그릇은 이정도라 이렇게 타협했다. 후회 없는 선택은 없다지만 이 선택은 덜 후회하는 선택일 것이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다른 이의 열정을 보기를 좋아한다 했다. 자신의 잃어버린 것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라고. 나는 열정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근데 요즘 들어 느끼는 바인데 열정과 같은 종류를 포함한 감수성이 많이 약해졌다. 몇 달 전만 해도 인상깊은 영화를 보면 하루동안은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데 요즘엔 그런 것이 없다. 한 때 내가 감수성이 많은 스스로를 혐오하며 평온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했던 적이 있었다. 다시 기도해야 겠다. 난 슬픔이 좋다. 슬프지 않은 나는 한심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러기에 슬픔으로 위로 받는다. ‘슬프니까 괜찮아, 이 슬픔이 지나면 좀 더 괜찮아질거니까 괜찮아’ 하곤 말이다. 그러기에 울고있는 내가 좋다. 그저 숨만 쉬는 쓸모 없는 사람이 아닌 지친 삶을 감내하고 더 나아질 미래를 그리는 사람이 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눈물 없는 나는 그저 쓸모없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무언가를 느끼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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