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행복에 대하여 1) 알파와 베타

by 이병일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은 그의 산문집 『다른 색들』에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사건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내가 경험했던 정신 상태와 감정이었다”고 고백합니다.


행복에 대하여, 저희 가족이 상처를 극복해 가는데 첫번째로 도움을 준 관점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 뿐만이 아니라, 세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야 할까를 고민하는데 도움이 되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평생 쫓아온 행복은 흔히 좋은 차, 넓은 집, 사는 곳, 직업, 연봉, 건강한 신체 같은 외적 조건(β)에 있다고 믿기 쉽지만, 사실 행복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주관적 역량(α)에 의해 결정됩니다.

행복의 메커니즘: 알파(α)와 베타(β)의 정의

은행에서 백여명의 사람들과 창구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복면을 쓴 강도가 들어와 총을 쐈습니다. 당신 팔에 맞았다고 해볼게요. 이것은 운이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은 연구를 통해, 개인의 세계관에 따라 이 사건의 해석이 극명하게 갈린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백 명 중에 왜 하필 내가 총에 맞았을까?”라며 불운을 탓하지만, 어떤 이는 “머리나 심장이 아니라 팔에 맞아서 천만다행이야”라며 안도합니다.


긍정심리학은 이를 베타(β) 조건과 알파(α) 역량으로 설명합니다.

베타(β) 조건: 이는 우리가 흔히 행복의 척도라 믿는 외적 환경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소득 수준, 주거 환경, 사회적 지위, 건강 상태 등이 포함됩니다. 많은 이들이 이 베타를 확장하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소모하지만, 심리학적 연구들은 베타가 주는 행복의 지속력이 놀라울 정도로 짧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는 인간이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익숙해지는 ‘쾌락 적응’기제 때문입니다.

알파(α) 역량: 주어진 환경을 해석하고 수용하며,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의미를 찾아내는 내적 능력을 뜻합니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소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 교수는 그녀의 저서 『행복도 연습이다』에서 이를 과학적인 수치로 증명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행복의 50%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설정값(Set point)’에 좌우되며, 우리가 그토록 집착하는 환경적 조건(β)이 행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 10%에 불과합니다. 놀라운 점은 나머지 40%가 우리의 ‘의도적 활동’, 즉 알파(α)의 영역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가 타고난 기질이나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훈련과 태도 변화를 통해 행복의 크기를 비약적으로 키울 수 있는 광활한 영토가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고전의 음성으로 깨우는 알파의 영토

한 중견기업 회장님, 부사장님과 칭기스칸 전골요리집에서 점심식사를 하다가 회장님께서 던지신 화두가 떠오릅니다. 아이들이 인지하는가를 명확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고전을 읽어주는게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이죠. 이 대화는 제 삶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주 3회 정도는 둘째 연서의 머리맡에서 10~30페이지씩 책을 읽어주곤 합니다. 제 아내와 달리 문학작품이나 고전과는 거리가 멀었던 저였지만, 연서 덕분에 조지오웰의 『1984』, 토머스모어의 『유토피아』, 마크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같은 명작들을 함께 호흡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좋아하던 이문열의 『삼국지』나 좋아하는 작가인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 『엔드 오브 타임』, 『엘러건트 유니버스』 같은 책들을 읽어주기도 합니다. 연서가 만 9살이 넘다보니, 그 세월동안 꽤 많은 책들을 읽어준 것 같습니다.


연서의 뇌가 조금씩이나마 깨어나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 거겠죠? 그게 고전의 내용일지, 책을 읽어주는 아빠의 음성일지, 『시크릿』에서 얘기하는 저의 간절한 마음이 일으키는 파동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믿으며 오늘도 책을 읽어줍니다. 고전이 수백 년간 살아남은 이유는 인간 본연의 ‘알파 역량’을 다루는 법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서에게 도움이 될까를 느끼며, 동시에 제가 책을 읽어줌으로써 힘을 얻습니다.

연서에게 책을 읽어주던 도중, 데자부를 느꼈던 순간이 있습니다. 각자 다른 시대 배경을 가진 두 저자가 다른 접근방법을 통해, 꽤 유사한 통찰을 제시하는 부분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루소의 저서 『에밀』과 유발 하라리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행복이 왜 내면의 역량에 달려 있는지에 대해, 매우 근원적인 답을 제시합니다.

욕망과 능력의 조화: 루소가 말하는 행복의 본질

우리는 절대적인 행복이나 절대적인 불행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우리 감정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행복이나 불행은 만인이 공유하는 감정이지만 다만 그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러나 항상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이란 소극적인 상태에 불과한 것으로서 고통의 다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고통의 감정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과 분리될 수 없으며 쾌락 또한 그러하다. 모든 욕망은 부족함에서 비롯되는데 그 부족함이 고통이다. 그러므로 불행이란 욕망과 능력간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참다운 행복에 이르는 인간의 지혜란 능력이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은 줄이고 능력과 욕망을 완전히 대등한 상태로 놓는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모든 힘은 활동상태에 들어가고 마음은 안정을 얻은 조화로운 상태에서 사람은 자기에게 알맞은 위치에 놓여지게 된다. 만물을 최선의 상태로 만드는 자연은 인간도 그와 같은 상태로 만들었던 것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자기보존에 필요한 욕망과 그에 따른 능력만을 주고 그 밖의 능력은 필요에 따라 발휘할 수 있도록 마음속 깊이 숨겨 놓았던 것이다.
인간의 능력과 욕망이 조화를 이루어 불행을 느끼지 않는 것은 원초적인 상태에서 뿐이다. 마음속에 잠재해 있던 능력이 활동하기 시작하면 모든 능력 중에서 가장 활발한 상상력이 눈을 뜨고 다른 능력을 능가하게 된다. 선과 악을 불문하고 우리의 능력의 한계를 확대하고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의지에 의해서 욕망이 자극되고 조장된다
그러나 처음에는 바로 눈 앞에 있는 것 같이 보였던 대상도 막상 잡으려고 하면 도망쳐 버린다. 또는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모습을 바꾸어 멀리서 나타난다. 이미 지나온 나라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법이기 때문에 가치없게 여겨지는 반면 아직 밟아보지 못한 나라는 끝없이 확대되어 보인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끝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지쳐 버린다. 그리고 쾌락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행복은 그만큼 멀어져 간다.
반대로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은 능력과 욕망간의 차이가 적어져 행복에 가까워진다. 현실세계에는 한계가 있으나 상상의 세계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므로 현실세계와 상상세계의 조화를 위해서는 상상의 세계를 제한해야 한다. 행복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으며 불행은 상상에 달려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논리지만 적용하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러므로 실천이 문제가 된다.


사피엔스의 비극: 풍요로운 세상에서 길을 잃다

흥미로운 결론 중 하나는, 돈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까지만이며, 그 정도를 넘어서면 돈은 중요치 않다. 경제 사다리의 맨 밑에 붙박여 있는 사람의 경우 돈이 많으면 행복이 커진다. 만일 당신이 식당 아르바이트로 연간 1,200만원을 벌며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인데 갑자기 5억원까리 복권에 당첨되었다면, 당신의 주관적 안녕은 오랫동안 큰 폭으로 높아진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더 이상 빚의 늪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힐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연봉 2억 5천만원을 받는 대기업 임원이 10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다거나 회사 이사회에서 갑자기 연봉을 두배로 올리기로 결정했다면, 이로 인해 높아진 행복감은 몇 주밖에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험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것은 장기적으로는 기분에 큰 차이를 만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더 세련된 차를 사고, 저택 같은 집으로 옮기고, 시바스리갈 12년산 대신에 밸런타인 30년을 마시는 데 익숙해지겠지만, 이 모든 것은 머지않아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되어버릴 것이다…(중략)
가족과 공동체는 우리의 행복에 돈과 건강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간에 유대감이 강하고 구성원을 잘 돕는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즉 가족이 제 구실을 못하거나 소속될 공동체를 찾지 못한 이들에 비해서 훨씬 행복하다. 결혼은 특히 중요하다. 좋은 결혼은 행복과, 나쁜 결혼은 불행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각종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조건은 물론이거니와 신체적 조건과도 상관없다. 무일푼의 병자라도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행복감이 높다. 다만 병자의 가난이 너무 심하지 않고, 그 병이 퇴행성이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지난 2세기 동안 물질적 조건이 크게 개선된 효과가 가족과 공동체의 붕괴로 상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의 평균적 사람이 1800년보다 더 행복하지 않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자유조차 나쁘게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배우자와 친구, 이웃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들은 우리를 버리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개인이 각자의 삶의 길을 결정하는데 전례 없이 큰 힘을 누리게 되면서, 우리는 남에게 헌신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와 가족이 해체되고 다들 점점 더 외로워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행복이 부나 건강, 심지어 공동체 같은 객관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당신이 손수레를 원해서 손수레를 얻었다면 만족하지만, 새 페라리를 원했는데 중고 피아트 밖에 가지지 못한다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복권 당첨이든 끔찍한 자동차 사고든 시간이 지나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비슷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태가 좋아지면 기대도 부풀기 마련이라, 객관적 조건이 극적으로 좋아져도 불만일 수 있다. 상황이 나빠지면 기대가 작아지기 마련이라, 심각한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행복감은 이전과 비슷할 수 있다.

기대치라는 이름의 함수: 행복의 주관성

루소는 행복을 ‘욕망과 능력 사이의 균형’으로 정의했습니다. 능력이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을 키우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며, 참다운 지혜는 이 욕망을 자신의 능력 범위 안으로 조화롭게 데려오는 것이라 말합니다.


하라리 역시 이에 동의합니다. 그는 행복이 부나 건강 같은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강조합니다. 손수레를 원해서 손수레를 얻은 사람은 만족하지만, 페라리를 원했는데 피아트를 가진 사람은 불행합니다. 결국 우리가 베타(외적 조건)를 늘리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만큼 ‘기대치’라는 이름의 알파가 커져 버린다면 행복의 총량은 제자리걸음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알파(α)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단순히 욕망을 억누르고 안빈낙도하는 것만이 답일까요?

알파(α)를 다루는 법: 관찰, 감사, 그리고 유대

알파를 다루는 법은 루소가 말한 ‘상상의 제한’에서 시작해, 하라리가 강조한 ‘공동체의 회복’으로 완성됩니다.


첫째, 내 ‘기대치’의 관성력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수록 생활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것이 ‘당연한 기본값’이 되는 순간 우리는 베타의 노예가 됩니다. 지하철 대신 택시를 타는 것이 편안함이 아니라 당연함이 될 때, 우리 뇌의 행복 카운터는 멈춥니다. 알파를 다룬다는 것은 내 생활의 편의가 늘어날 때마다 그것이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특별한 혜택’임을 의식적으로 상기하는 훈련입니다.


둘째, 상상의 영토를 ‘비교’가 아닌 ‘발견’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루소는 상상력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그 상상력을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내 안의 가능성’으로 돌리면 알파는 강력한 회복제가 됩니다. 아이에게 고전을 읽어주는 행위는 아이의 뇌 속에 베타(장난감, 게임)가 줄 수 없는 더 넓은 정신적 영토(알파)를 지어주는 일입니다. 외적 조건이 무너졌을 때도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생각의 근육’을 키워주는 것이죠.


셋째, ‘조건 없는 유대’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라리는 가족과 공동체의 유대가 돈과 건강보다 행복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말합니다. 베타는 나를 배신할 수 있지만(사업 실패, 사고), 튼튼하게 구축된 알파의 영역인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는 내가 무너졌을 때 나를 다시 붙여주는 접착제가 됩니다. 무일푼의 병자라도 헌신적인 가족이 있다면 억만장자보다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알파가 베타의 결핍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행복을 위한 노력이란

우리는 절대적인 행복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루소와 하라리가 공통으로 말하듯, 행복은 외적 조건(β)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생각(α)에 달려 있습니다. 복권 당첨이든 가혹한 사고든 시간이 지나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비슷해지는 이유는 우리 뇌의 적응력과 기대치의 조정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쩌면 더 좋은 조건을 만드는 노력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 속에서도 내 욕망과 능력의 균형을 맞추고, 무너진 환경 대신 사랑하는 이와의 유대를 공고히 하며, 주관적 안녕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행복은 어느 날 우연히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며, 감각을 깨워 쟁취해야 할 거룩한 역량입니다.

이전 08화2부(이론) 신체 예산과 회복의 메커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