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행복에 대하여 3) 크기보다 빈도

by 이병일

우리는 흔히 인생의 거대한 한 방, 즉 ‘로또 당첨’이나 ‘천지개벽할 성공’이 우리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듯, 그 성공 이후의 삶은 영원히 ‘Happily Ever After’일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심리학이 발견한 행복의 실체는 드라마틱한 반전이 아니라, 일상의 아주 작은 ‘밝은 점’들을 얼마나 자주 채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장 중계: 김경일 교수가 말하는 ‘행복의 경제학’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은 사피랜드나 삼프로 TV 등을 통해,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로또식 행복’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행복의 정의를 새롭게 내립니다. 제가 이해한 교수님의 메시지 중, 세가지 정도가 깊이 다가왔습니다.


- 행복은 ‘강도(Intensity)’가 아니라 ‘빈도(Frequency)’다: 행복은 도구입니다. 올해 경험하는 행복은 내년의 고난을 이겨내게 만드는 도구고 앞으로 10년을 버티게 해주는 연장입니다. 그런데 수명은 길어지고 시련은 자주 오죠, 그래서 이 명제가 중요합니다. 행복은 크기(Intensity)보다 빈도(Frequency)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1년에 100점짜리 행복 한번 경험하는 유기체보다, 10점짜리 행복 10번 경험하는 유기체가 정서적으로 훨씬 건강합니다.


- ‘쾌락 적응’의 함정, 100억 로또가 정답이 아닌 이유: 우리는 30억, 100억 이라는 거대한 보상이 영원한 행복을 줄 것이라 믿지만, 인간의 뇌는 강력한 재각에도 매우 빠르게 적응합니다. 큰 보상도 시간이 지나면 기본 상태로 돌아오며, 그 이후에는 더 큰 자극이 있어야만 같은 수준의 행복을 느낍니다.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큰 보상은 기존의 인간관계에 의심을 낳고 외로움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소득이 올라갈수록, 같은 소득수준에서 행복을 느끼는 편차가 더 커진다고 합니다. 이는 제가 앞에서 언급한 베타와 알파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행복은 ‘목돈’이 아니라, ‘잔돈’이다: 행복은 인생 역전을 노리는 복권이나 목돈이 아니라, 주머니 속에 언제든 꺼낼 수 있게 준비된 ‘잔돈’ 이어야 합니다. 내가 언제 기분이 좋아지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10점짜리 잔돈 리스트가 많은 사람일수록 삶의 통제권을 잃지 않고 행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님의 조언처럼, 100점짜리 거대한 행복 한 번을 위해 364일을 지옥처럼 버티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파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매일 10점짜리 소소한 행복을 열 번 느끼는 사람은 뇌가 끊임없이 보상을 받기 때문에 훨씬 더 단단한 회복 탄력성을 가집니다. 결국 행복해지고 싶다면 거창한 목표를 세울 게 아니라, 오늘 하루 중 나를 웃게 할 ‘잔돈’같은 행복을 얼마나 많이 주머니에 넣느냐에 집중해야 합니다.


에드 디너의 연구: 왜 소소한 기쁨이 거대한 성공을 이기는가

이러한 통찰은 세계적인 행복학 권위자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의 연구에서도 증명됩니다. 그는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장기 추적 조사를 통해 ‘행복한 감정의 강도보다 빈도가 주관적 안녕감을 예측하는 데 훨씬 더 강력한 지표’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디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아주 큰 사건(복권 당첨, 승진 등)이 일어났을 때 일시적으로 매우 높은 행복감을 느끼지만, 이내 자신의 ‘기본 행복(Set point)’으로 돌아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일상에서 ‘적당히 기분 좋은 상태’를 자주 유지하는 사람들은 전체적인 삶의 만족도가 훨씬 높고 안정적이었습니다.


가끔 느끼는 강렬한 환희보다 소소한 즐거움을 얼마나 자주 경험하느냐가 그 사람의 전체 행복 수치를 결정합니다. 큰 기쁨은 곧 적응되어 사라지지만, 작은 기쁨은 우리 삶의 배경음악처럼 깔려 전체적인 삶의 질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행복은 ‘어쩌다 한번 터지는 불꽃놀이’가 아니라 ‘매일 밤 우리를 밝혀주는 가로등’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행복 넛지(Nudge): 의지보다 강력한 환경의 힘

김경일 교수님은 우리가 행복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질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유튜브 인터뷰에서 이를 ‘행복 넛지(Happiness Nudge)’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의지보다는 환경을 믿는다, 행복해지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내 주변에 배치하는 ‘상황 설계’가 훨씬 더 강력하다고 얘기합니다.


김경일 교수: "운동을 가고 싶다면 '내일부터 운동 가야지'라고 결심하지 마세요. 대신 오늘 밤에 운동화를 현관문 바로 앞에 딱 두세요. 아침에 나가면서 발에 걸리게 만드는 겁니다. 내 의지가 개입하기 전에 환경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게 넛지입니다.”


이것은 영화의 미장센(Mise-en-Scène)과 같습니다. 감독이 관객의 감정을 유도하기 위해 소품 하나, 조명 하나를 의도적으로 배치하듯, 우리도 우리 삶의 공간에 행복의 소품들을 배치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향기가 나는 디퓨저를 화장실에 두거나, 가장 행복했던 여행지의 사진을 모니터 옆에 붙여두는 것. 이 사소한 시각적·후각적 자극들이 뇌에 끊임없이 ‘미세 행복’ 신호를 보냅니다.


제리 스터닌의 ‘밝은 점’의 확대

하지만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찾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삶의 문제가 너무 거대해 보일 때 우리는 낙담하기 마련이죠. 1990년, 세이브 더 칠드런의 제리 스터닌(Jerry Sternin)이 마주했던 베트남의 상황이 바로 그랬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그에게 6개월 안에 아동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조건은 처참했습니다. 위생 설비는 형편없었고, 깨끗한 물은 부족했으며, 시골 사람들은 영양실조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자원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가적 빈곤과 시스템을 6개월 안에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이때 스터닌은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분석하는 대신 ‘무엇이 잘되고 있는가’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마을을 돌며 아주 가난한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들은 바로 그 집단의 ‘밝은 점(Bright Spot)’이었습니다. 스터닌은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을 관찰했고, 남들과 다른 사소한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보통의 어머니들은 하루 두 번의 큰 식사를 주었지만, ‘밝은 점’어머니들은 같은 양의 음식을 하루 네 번으로 나누어 먹였습니다. 또한 남들이 가치 없다고 버리던 작은 민물 새우나 게, 고구마 잎을 밥에 섞어 아이들에게 먹이고 있었습니다.


스터닌은 이 ‘밝은 점’을 마을 전체로 확대했습니다. 외부 전문가의 지시가 아니라 이웃의 성공 사례를 본 어머니들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불과 6개월 뒤 65%의 아동이 영양 상태를 회복했습니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내 삶의 어둠을 고치려 들기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작은 ‘밝은 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확대하는 것이 훨씬 강력한 해결책이라는 것입니다.


스터닌의 성공 비결은 외부의 거창한 솔루션이 아니라, 마을 내부에 이미 존재하던 우수 사례를 발견하고 전파한 데 있었습니다. 우리 삶도 하나의 마을과 같습니다. 모든 것이 문제투성이고 불행해 보일 때조차, 우리 하루의 어느 구석에는 반드시 건강하게 살아남은 ‘밝은 점’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점을 너무 사소하게 여겨 무시하거나, 아예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베트남의 어머니들이 옆집 엄마의 작은 습관을 보고 희망을 얻었듯, 우리도 우리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행복의 습관들을 찾아내어 삶 전체로 전파해야 합니다.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에 이 ‘밝은 점’의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 먼저 나의 하루를 정밀하게 관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나의 ‘밝은 점’그래프: 일상의 미장센을 복원하는 기술

글래스고 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인간의 근본 감정 4가지(두려움, 분노, 슬픔, 기쁨) 중 긍정적인 것은 ‘기쁨’하나뿐입니다. 이제 우리의 하루를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빛나는 ‘밝은 점’들을 정밀하게 관찰해 봅시다. 뇌과학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인 ‘기쁨’은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이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이 귀한 기쁨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어릴 적 방학 숙제로 그리던 원형 생활계획표를 그려보기를 권합니다. 종이에 큰 원을 그리고 24시간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어제 하루를 복기하며 내가 기쁨을 느꼈던 시간, 즉 나의 ‘밝은 점’이 언제였는지 표시해 보는 것입니다.

사례 1. “출근길 15분의 사치”– 30대 직장인 A씨 매일 아침 지옥철에 몸을 싣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업무를 시작하는 A씨는 만성 피로에 시달렸습니다. 그녀가 ‘밝은 점 그래프’를 그려보았을 때 발견한 유일한 빛은 사무실 건물 1층 카페에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5분’이었습니다. 그녀는 결심했습니다. 이 ‘밝은 점’을 15분으로 늘리기로요. 이제 그녀는 평소보다 10분 일찍 집을 나섭니다. 좋아하는 에세이 한 페이지를 읽으며 마시는 커피 한 잔. 단 15분의 확대였지만, 그 기쁨의 ‘빈도’가 그녀의 8시간 근무를 버티게 하는 정서적 예산이 되었습니다.


사례 2. “전쟁 같은 육아 속 틈새 전술”– 워킹맘 B씨 퇴근 후 다시 ‘육아’라는 제 2의 직장으로 출근하는 B씨는 늘 아이에게 화를 내고 후회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녀가 찾은 ‘밝은 점’은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나와 정적 속에 마시는 ‘시원한 보리차 한잔’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순간의 감각에 고도로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차가운 기운, 집안의 고요함. 그녀는 이 ‘밝은 점’을 더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예쁜 유리잔을 샀습니다. 하루의 끝에 확실한 ‘보상(빈도)’이 있다는 믿음이 생기자, 아이와의 전쟁 같은 시간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사례 3. “은퇴 후 상실감을 채운 텃밭”– 60대 C씨 평생 몸담았던 직장을 떠난 C씨는 사회적 역할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에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베란다의 작은 화분 하나에서 ‘밝은 점’을 발견했습니다. 매일 아침 흙을 만지고 물을 줄 때의 평온함이었습니다. 그는 이 점을 확대해 주말 농장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수확물의 양(크기)이 아니라, 매일 아침 싹이 얼마나 텄는지 확인하는 ‘행복의 빈도’를 즐깁니다. 거창한 사회적 성공보다 매일 아침 나를 불러내는 초록색 생명이 그의 삶을 다시 환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결론: 고치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

행복은 어딘가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모험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일상에 뿌려진 ‘밝은 점’들을 세밀하게 채집하는 기술입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평론을 “영화를 옹호하는 가장 멋진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것은 “나의 남루한 일상을 옹호하는 가장 품위 있는 방식”일 것입니다. 베트남의 어머니들이 작은 새우와 고구마 잎으로 아이의 생명을 구했듯, 우리도 일상의 사소한 기쁨들을 발견하고 그 빈도를 높임으로써 우리 삶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원형 계획표에는 어떤 점들이 찍혀 있습니까? 그 점이 아무리 작고 희미할지라도, 그것을 응시하고 확대하는 순간 당신의 삶은 조금씩 더 밝은 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것입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빛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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