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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악장 : 음악 그리고 극

음악에 실어 보내는 누군가의 이야기

by 오록

오늘도 우연히 이곳에 당도하신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 저번 시간에는 매체, 그중에서도 tv에 집중을 해보았어요. 미디어 매체에서 음악은 상황의 전개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이야기의 직접적인 전달보다는 상황에 양념을 추가해 주는 하나의 구성요소가 되죠. 오늘은 '문화'분야에서 조금 더 음악이 앞에 존재하는 미디어, '극'을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경극, 가부키, 판소리 등 동양에도 다양한 극 문화가 존재합니다. 특히 판소리는 음악을 가지고 1명의 소리꾼이 모든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고수의 북장단에만 맞춰서 음악을 전개하고 청중들의 추임새가 구성요소라는 점에서 독특한 문화죠. 판소리는 언젠가 귄록루역에서 '역사'를 주제로 하면 심도 있게 다뤄볼 생각입니다.


오늘은 서양 극음악을 다뤄보려고 해요. 오페라와 뮤지컬, 2가지 장르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두 장르는 많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음악을 통해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전개한다.'라는 점에서 음악이 가장 앞에 존재하는 극이라고 생각해요.


오페라에서는 '아리아', 뮤지컬에서는 '넘버'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등장인물이 부르는 노래죠. 혹은 오페라를 보고 감상평을 음악으로 남긴 요약본 형태도 존재합니다. 이 정도 기본 바탕을 가지고 지금부터 4명의 극음악 이야기로 떠나보시죠!


#Do you hear the people sing?

https://youtu.be/urxk4mveLCw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넘버 하나하나가 빼놓을 것 없이 유명한 뮤지컬이에요. 저는 초등학생 때 이 뮤지컬을 영화 버전으로 처음 접했는데요, 내용은 어려웠지만 펑펑 울면서 영화관에서 나왔던 기억이 있네요.


나중에 제가 조금 더 자라고, 이 극의 내용을 다 이해하게 되었을 때. 어릴 땐 화려한 노래들에 묻혀 저에겐 인상 깊지 않았던 넘버가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의 대척점에 있던 인물의 넋두리를 담은 노래인데요. 제 오늘의 노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넘버, 자베르의 “Stars”입니다.

이 넘버는 도망을 다니는 장발장을 잡기 위한 자베르 경감의 굳은 신념이 담긴 노래입니다. 하늘의 별들을 보며 이 땅 위의 법칙을 수호하고 감시하는 존재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타락하는 자에게는 하늘의 엄벌이 있을 것이라는 철저하고 냉정한 법치주의의 신념을 드러내죠.

어릴 때 저에게 자베르는 단순히 빌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주인공 장발장의 일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성가신 존재였죠. 하지만 커서 이 작품을 다시 보았을 때, 자베르의 입장도 전혀 잘못됨이 없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자베르의 시선에서 빌런은 장발장이었어요. 과거가 수상한 탈옥수의 정체를, 개인적 감정이 아닌 법에 의해 철저하게 밝혀내겠다는 자베르의 의지를 그대로 노래한 것이 이 “Stars”라는 넘버이고요.

영화의 제목인 프랑스어”Les Miserables “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작품에서 불쌍한 사람들은 특정 누군가를 지칭한 표현이 아니에요. 당시 프랑스의 사회적 불평등에 고통받던 사람과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 자신의 굳은 신념의 한계와 모순을 깨달아버린 사람 등등. 절대적인 선과 악은 결국 이 작품엔 없어요. 불쌍한 사람들만 있을 뿐이죠.

이 넘버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자베르가 “Stars”를 노래하기 전, 장발장이 어린 코제트를 구하고 떠나며 가족애를 느끼며 “Suddenly”라는 넘버를 부릅니다. 자베르의 비애와 대비되는 이 넘버는 사실 원작 뮤지컬에서는 없었던 장면이라고 해요. 영화에서 추가된 이 노래로 인해 등장인물 간의 갈등과 서사가 보다 극명하게 드러나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또 뮤지컬에서도 영화엔 없는 넘버가 하나 있는데, 감상하실 때가 온다면 한번 찾아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극음악은 사실 제가 즐기는 분야는 아닙니다만, 이 레미제라블은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품이라 꼭 소개해 보고 싶었습니다. 여담으로 대학생 때 이 곡은 무대에서 록의 노래와 호흡을 맞춘 적도 있는 곡이라 더욱 애정이 가는 것 같아요. 4대 뮤지컬 중 하나인 레미제라블, 여러분의 취향에는 어떤 넘버가 가장 귀에 들어오나요?


#언럭키 로미오와 줄리엣

https://youtu.be/XEkDsUrmFC4?si=zTa811kUrTxh4lfH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곡은 헝가리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노르마의 회상(Reminisces de Norma)입니다. 노르마의 회상은 프란츠 리스트가 벨리니의 오페라 ‘Norma'를 바탕으로 편곡한 피아노 환상곡입니다. 리스트 특유의 극적인 전개와 기교적 화려함이 살아 있으면서도, 원작의 선율과 감정을 충실하게 살려낸 곡으로 평가받습니다. 피아노 한 대로 오페라 한 편의 기승전결을 연출한 리스트의 천재적인 면모를 확인시켜 줍니다.

특히 고요하게 시작해 점차 고조되며 클라이맥스로 몰아가는 구조는 리스트 특유의 ‘연출자형 작곡가’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연주자에게는 감정 해석과 기교, 내면의 서사 감각까지 모두 요구하는 곡입니다. 천천히 쌓아 올려 언제 터뜨려줄지 모르는 긴장감과 파트별 클라이맥스가 나올 때의 쾌감은 청자들의 숨을 멎게 만듭니다.

오페라 노르마는 기원전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와 로마 간의 긴장 속에서, 드루이드 제사장 노르마와 로마 장군 폴리오네 사이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작품입니다. 노르마는 비밀리에 로마 장군과 사랑에 빠져 두 아이까지 낳지만, 그가 자신을 떠나 젊은 신녀 아달지사를 사랑하게 되면서 고통에 휘말립니다. 종교적 의무와 개인적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던 노르마는 끝내 모든 것을 고백하고, 자신을 배신한 연인을 용서한 채 함께 불에 몸을 던지는 비극적 결말을 맞습니다. 이 오페라는 고전적인 희생과 용서, 그리고 인간적인 고뇌를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특히 주인공 노르마의 고백과 내면적 절규가 음악적으로 강렬하게 표현됩니다.

리스트의 노르마의 회상은 원작 오페라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들을 발췌해 리스트만의 피아노 언어로 재창조한 작품입니다. 서주에서는 고요한 밤과 불안한 긴장감이 느껴지며, 이어지는 부분에서 오페라의 대표 아리아인 ‘Casta Diva(신성한 여신이여)’의 선율이 등장합니다. 리스트는 이 선율을 극적으로 변형하고, 뒤따르는 군중 합창과 갈등 장면을 격렬한 트레몰로와 아르페지오로 구현합니다.

후반부에는 폴리오네와의 절망적인 감정이 격렬하게 터져 나오는 대목이 이어지며, 마지막은 피날레처럼 폭발적인 종결로 마무리됩니다. 이 곡은 단순한 편곡을 넘어서, 원작의 서사와 감정을 피아노 안에 오롯이 옮긴 극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리아는 서정적인 'Casta diva'와 군중합창 장면인 ‘Guerra, Guerra!'입니다. 두 곡 모두 리스트 버전에 등장하니 한 번씩 들어보고 리스트가 어떤 연주효과를 작품에 썼는지 비교하는 것도 재밌습니다.

만약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복잡한 설명보다는 줄거리만 이해하고 눈을 감은 상태로 한 번 느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무대는 없지만 촛불이 켜지고, 터져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 그리고 비극이 흐르는 전쟁과 같은 장면들이 그려질지도 모릅니다.

한 곡의 음악이 어떻게 하나의 연극이 될 수 있는지, 그 질문의 답을 이 곡에서 찾으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당신만의 회상으로 떠나보세요.


#어째서 또...?

https://youtu.be/Wk4ijMscv20?si=URj5ZBalu6F7iOM3

저번에 소개했던 ‘날개’를 작곡하던 시기, 저는 뮤지컬 넘버들을 즐겨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킬 앤 하이드』는 전 곡의 악기 구성과 멜로디를 외울 정도로 반복해 들었던 작품이었죠. 이상하게도 아침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끝낸 뒤, 머리를 말리는 그 타이밍이면 어김없이 이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습니다.

Murder, Murder

혼란과 공포 속을 내달리는 도시 사람들의 외침.
누군가의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이 내 일이 아니라는 안도감에 스스로 열광하는 아이러니한 군중.
그리고 그 소란 너머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한 사람.
아무도, 그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곡은 단순한 뮤지컬 넘버라기보다는
어쩌면 하나의 ‘경고’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마음의 어둠,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 조용히 금이 가던 내면이
어느 날, 가장 날카로운 방식으로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

하이드는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지킬이라는 한 사람 안에 오래도록 숨어 있던 그림자.
그가 만든 약은 그저, 그 그림자에게 얼굴을 주었을 뿐이었죠.
그러니 『Murder, Murder』는 연쇄살인의 노래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내면이 무너지는 풍경’을 함께 바라보게 만드는 장면에 가깝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아마도 그런 음악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조금씩 삐걱대던 스스로를
누군가 대신해 노래해 주는 듯한 기분.
누군가는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보지만,
또 누군가는 그 음악 안에서
자신의 마음이 잘 지내고 있는지를 조용히 묻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는 그 순간마다
이 노래가 흐른 이유.
어쩌면, 제 안의 하이드가 그때마다
조용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일지도요.

하지만 그걸 스스로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매일의 루틴 속에서 다시 ‘지킬’로 돌아오고자 애쓴다는 것.
그 자체가 우리의 싸움이고,
그 싸움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일 겁니다.

내일 아침엔 또 어떤 노래가 흐를까요.
부디, 이번엔 조금 더 따뜻한 곡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당신입니까, GOAT시여..

https://youtu.be/ptjwYIGIj7Q

러시아, 극음악, 공연하면 어떤 음악이 생각나시나요? 유명한 음악들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서유럽 오페라의 형식 속에 러시아의 민속 음악과 러시아어 특유의 성질을 잘 녹여낸 러시아 5인조, 그중에서도 무소로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가 있죠. 혹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자주 들리는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 아니면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 음악 <불새>, <페트로슈카>, <봄의 제전> 정도를 떠올리실 것 같네요.

하지만 오늘 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상치도 못한 작품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단막 오페라', '발레와 아리아의 조화를 가져온 작품', '이 작곡가의 서정성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하지만 정작 작곡가 본인은 생전에 자신이 이 작품을 작곡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작품번호조차 붙이지 않은 오페라입니다. 작곡가는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오늘 제가 가져온 작품은 <알레코>라는 오페라예요.

먼저 오페라 <알레코>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해보려고 해요. 알레코는 집시 무리들과 방랑하기 위해 그의 귀족 신분과 안정적인 삶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집시 소녀 젬피라와 사랑에 빠지죠. 하지만 젬피라가 알레코를 떠나 젊은 집시 남성과 사랑에 빠지자 알레코는 두 사람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알레코는 살인에 대한 형벌로 집시 사회에서 추방되게 되죠.

오늘 가져온 음악은 '알레코의 노래'라는 아리아입니다. 요약한 줄거리 중에서는 두 사람을 살해하기 직전, 젬피라와의 추억을 회상하다가도 복수심을 불태우기도 하는 노래죠. 어쩌면 '알레코의 독백'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라흐마니노프의 생각을 제가 따라갈 순 없겠지만,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직접 러시아어 가사를 분석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인생과 사랑의 무상함', '실연의 아픔' 2가지가 이 짧은 오페라에서 라흐마니노프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람의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별을 겪은 후에 졸업연주회 마지막 곡으로 이 노래를 골랐습니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내가 이 아리아에서 느낀 감정을 모두에게 전달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불만족스러운 연주였지만 나름 좋은 평가를 받고 졸업했습니다.

오늘 제가 이 음악을 가져온 이유는 하나예요. 귄록루역의 구성원 4명의 음악 취향은 정확히 4가지로 갈릴 겁니다. 4명 모두를 만족시키는 음악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만큼은 4명 모두가 존경하는 작곡가이고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잡담 없이 그 음악 이야기만 하는 편입니다. 저의 가장 친한 친구들 3명이 제 도전적인 졸업연주회 선곡을 응원해 준 이유도 '라흐마니노프의 아리아를 찾아와서 선곡했기 때문에' 였을 겁니다.

어쩌면 저희의 유일한 공통분모,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의 음악을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이 잠시나마 즐겼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가져온 음악입니다. 부디 저희의 긴 이야기가 흥미로웠길 바라며 이만 오늘 이야기는 마무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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