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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3악장 : 음악 그리고 스포츠

뜨거운 열정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수단

by 오록

오늘도 우연히 이곳에 당도하신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학교 현장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교육과정 협의회를 할 때면 '예체능 과목 교육과정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음악, 미술, 그리고 체육 선생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 학기 수업과 평가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예체능은 하나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죠.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을 전공한 귄록루역의 구성원들이 가진 많은 공통점 중 하나는 '운동을 좋아한다'입니다. 구기종목을 즐기는 사람, 혼자만의 수행을 즐기는 사람, 자신이 성장하는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 등 지향점은 다르지만 각자 나름대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3악장의 대주제를 '문화'로 잡으면서 3악장의 문을 닫는 주제는 '스포츠'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면서 내뿜는 열정, 혹은 성취감의 표출은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더 구체적으로 와닿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제부터 각자가 가져온 스포츠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풀어볼까 합니다. 4명 각자의 시선에서 푸는 운동 이야기, 부디 가볍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https://youtu.be/en9NvQu6vi8?si=RflOr6aQ_F-Ftgin

제가 이번에 가져온 곡은 요아소비의 ‘무대에 서서’(舞台に立って)입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 누군가의 삶과 웃음, 두려움과 용기가 교차하는 순간을 담아냅니다. 자신의 꿈을 무대에서 펼쳐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J-POP 감성으로 정제해 노래합니다.

금주 주제가 스포츠인데 웬 무대냐고요? 이 곡이 일본 방송사 NHK스포츠에서 2024 파리올림픽 및 패럴림픽 테마곡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이 좀 오타쿠 같을 수도 있지만 제가 지금부터 알려드릴 곡의 서사와 음악적 장치, 구조들을 이해하시면 어느샌가 반복재생을 걸어놓으시게 될 겁니다 :)

가사 내용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는 가사 번역을 처음 보고 굉장히 울컥했습니다. 처음부터 이 길밖에 없다는 확신과, 언제나 결과와 성과만 남는다는 현실 사이에서 묵묵히 자신을 이끌고 온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좋아하니까. 그 하루하루가 의미 없게 느껴졌더라도, 이 순간은 지금껏 꿈에 그려온 장면들을 이루어내기 위한 무대에 서있다는 내용입니다. 좋아하는 일 때문에 지쳐있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곡에는 이런 아름다운 가사를 들려주기 위한 기가 막힌 음악적 장치가 쓰였습니다. 후렴구 뒷부분에서 드럼과 리듬기타만 남고 다른 악기들이 갑자기 빠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첨부 음원 기준 1분 22초, 2분 54초)


이런 기법이 쓰인 부분을 ’stripped-down section’이라고 합니다. 이는 레이어(악기의 개수)를 줄여 청자가 보컬과 가사에 더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냅니다. 이때 나오는 가사들은 상처뿐이었던 모든 날들이 지금으로 이어져왔고, 그 어떤 순간도 헛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이 섹션에선 드럼이 ‘띵’ 소리가 나는 라이드 심벌을 치지 않고 ‘딱’ 소리가 나는 크로스 스틱으로 비트를 찍습니다. 마치 두근대는 사람의 심장소리를 연출한 것 같아 음악이 더 실감 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심장은 터질 듯이 두근거리고,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 되뇌며 계속해서 일어서는 것. 그게 진짜 청춘이고 낭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이 노래를 꿈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무대‘라는 건 꼭 음악적 공연을 위한 ‘Stage'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껏 간절히 원하는 것들을 위해 노력했던 그 모든 것들이 ’ 무대‘가 될 수 있습니다. 연습, 시험, 면접, 진짜 무대, 경기, 취업준비 같은 것들 말이죠.

매년 이맘때쯤, 연초부터 열심히 준비해 왔던 것들이 다 의미 없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신다면 꼭 한글번역과 함께 이 노래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좋아하는 걸 처음 시작할 때 먹었던 그 아름다운 마음을 다시 꺼내주는 그런 노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数かずある中なかで選えらんだのは
(수많은 것들 중 이걸 고른 이유는)
きっと最初さいしょから分わかっていたから
(분명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これじゃなきゃダメなんだって
(이게 아니면 안 될 거라는 걸)
- ’舞台に立って‘ 中


#오늘도 죽어보자

https://youtu.be/3dm_5qWWDV8

여러분은 요즘 어떤 운동을 즐기시나요? 학창 시절 저는 구기종목을 좋아하던 학생이었어요. 야구를 한 적도 있었고 축구와 농구에 빠져 살던 적도 있었죠. 여학생의 비율이 높은 음악교육과의 특성상 매년 체육대회는 전 종목을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일자리를 찾아 고향에 돌아온 저는 요즘 모두와 하는 구기종목보다는 혼자 할 수 있는 헬스와 러닝에 빠져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노래는 대학생 시절의 제가 운동을 시작하기 전 들었던 노래, 그리고 현재 제가 운동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제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노래 중 가장 전투력 상승에 적합한 음악, 1994년 영국에서 결성된 3인조 밴드 뮤즈의 3집 <Absolution>의 수록곡 'hysteria'입니다.

Hysteria의 음악적 특징부터 이야기해 볼까 해요. 이 곡은 락, 그리고 밴드 음악의 베이스 라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곡입니다. 2013년에 '뮤직레이더'에서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베이스라인 25선 중 1위에 오르기도 했죠. 듣기만 해도 손가락이 저려오는 라인뿐만 아니라 강렬한 퍼즈 톤을 입힌 베이스 소리는 남자의 심장을 자극합니다. 베이스 위에 깔리는 신들린듯한 기타 리프도 전투력 상승에 도움이 되죠.

Hysteria라는 말의 어원은 히랍어로 '자궁'이라고 해요.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학대하거나 신경질적인, 혹은 예민한 상태에서 '히스테리'라는 말이 유래됐죠. 그리고 이 곡에서도 화자는 무언가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습니다. 난 무너져가고 있다, 지금이 내가 마지막으로 제정신인 순간이다, 그러니 너의 심장과 영혼을 내게 주어라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이쯤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느끼셨겠지만, Hysteria의 톤과 분위기는 헬스라는 운동에 정말 적합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 정도 웨이트 트레이닝에 미친 사람들에게 적합하죠.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 몸의 변화와 중량의 성장에 쾌감을 느끼고 누군가의 눈에는 스스로를 학대하는듯한 행위는 나에게 부리는 '히스테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히스테리는 저에겐 긍정적인 히스테리예요. 식단을 통제하고 꾸준히 운동을 즐기는 삶,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얹으면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저에게 운동을 통해 부리는 히스테리는 역설적으로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정말 강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면, 오늘은 운동 전에 뮤즈의 음악 어떠신가요?


#지옥의 종소리, 한 남자의 발걸음

https://youtu.be/etAIpkdhU9Q?si=q8T68nyZE_-q8L3t

야구장은 참 이상한 공간입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역사를 쓰고, 누군가는 조용히 사라지죠. 하지만 가끔은, 단 하나의 등장만으로 공기 전체를 바꿔버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9회, 파드리스가 앞서고, 상대 팀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그 순간, 구장의 조명이 한 번 깜빡이고 무겁고 낮은 종소리가 천천히 퍼져 나갑니다.

“Hells Bells.”

불펜 문이 열리고, 트레버 호프먼이 걸어 나옵니다.
어깨 위로 내려앉은 긴장감, 그리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 한 사람의 무게가 구장 전체의 공기를 단숨에 바꿔 놓습니다.

AC/DC의 이 곡은 처음부터 비장한 기운을 품고 있습니다. 멤버 본 스콧의 죽음 이후 발표된 Back in Black. 죽음을 딛고 다시 돌아온 자들의 음악. 장송처럼 울리는 종소리 위에 고전적인 록 기타 리프가 덧씌워집니다. 위협적이고, 절도 있는. 무언가를 ‘끝낸다’는 감각.

“You’re only young, but you’re gonna die.”

이건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선언입니다.
이제 끝났다는, 여기서 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런 냉정하고도 단호한 선언.

호프먼 역시 그렇게 선언하듯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는 단순한 ‘전설’로 정리하기엔 복잡하고도 단단합니다. 1994년, 그는 시속 90마일 중반대의 강속구와 날카로운 팜볼로 승부하는 전형적인 파이어볼러였습니다. 그러다 어깨 수술을 받았고, 그의 패스트볼은 80마일대 중반의 ‘똥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투수라면, 거기서 끝이었겠죠. 하지만 호프먼은 오히려 그 이후 더 오래, 더 위대하게 마운드를 지켰습니다. 구속이 떨어졌다고 ‘맞춰 잡는 투수’로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속이 아닌 무브먼트, 빠르기보다 구위, 힘이 아닌 완성도로 오히려 ‘더 강한 투수’가 되었습니다.

결정구는 여전히 체인지업이었지만, 그 체인지업이 위협적일 수 있었던 건 패스트볼이 여전히 ‘패스트볼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속도는 줄었지만, 그 공은 여전히 타자들의 타이밍을 무너뜨렸고, 끝내 게임을 닫아버렸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등장곡이 아닙니다. ‘마무리를 짓는 자만이 쓸 수 있는 음악.’ ‘끝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걸어 나올 수 있는 종소리.’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의 끝을 마주하게 됩니다. 기한이 있는 일, 관계의 변화, 마음의 균열, 혹은 계절의 경계.
그때마다 저는 이 노래를 떠올립니다. 혹시 내 안에도, 지금 마운드에 올라야 할 한 사람이 서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종소리가 울리고, 우리는 마지막 공을 손에 쥡니다. 어쩌면 오늘 하루는, 그걸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거겠죠.

Game over.


#한 영웅의 서사시, Oh my captain!

https://youtu.be/7YAAyUFL1GQ?si=1_JNA5vr19UOmG9f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 중 하나인 PL에서 지금도 역사를 쓰고 있는, 누가 뭐래도 한국의 레전드 중 하나인 축구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는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면서 저를 해외축구의 세계로 처음 이끌었는데요. 학창 시절 항상 새벽잠을 참아가며 축구에 몰입하게 해 준 이 선수의 하이라이트에서는 항상 이 곡이 재생되곤 했습니다. 오늘 제가 가져온 곡은 제 축구 영웅 손흥민 생각이 절로 나는, 우리의 새벽을 깨워주던 곡,“Fall Out Boy - The Last Of The Real Ones”입니다.

이 곡은 2018년 Fall Out Boy라는 미국 밴드그룹의 7집 앨범 수록곡으로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폴 아웃 보이라는 밴드는 락 팝을 지향하면서도, 메탈과 같이 너무 무겁지는 않은 절충안적인 음악을 하는데요. 폴 아웃 보이 특유의 스포티한 사운드는 원래도 스포츠나 하이라이트, 또는 게임의 매드무비 BGM으로 많이 쓰이던 것들이었어요. 이 곡 또한 스포티비 프리미어리그 중계에서 엔딩곡으로 사용되었죠. 손흥민의 팬인 저는 덕분에 새벽마다 자장가(?)로 이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곡은 통통 튀는 피아노 루프로 들썩이며 시작합니다. 곧이어 이 곡의 상징적인 코러스 섹션이 등장하는데, 도입부만 들어도 새벽에 부모님 몰래 TV를 틀던 중고등학생 시절 저의 설렘이 재현되는 느낌입니다. 그러고는 후렴에서 시원하게 질러주는 보컬의 목소리는 정말.. 남자들의 심금을 울리죠. 새벽에 이 노래를 들어보신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노래 가사는 누군가에 대한 사랑에 관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저에게는 한 스포츠 스타에 대한 존경과 인정을 담은 노래로 들립니다. 손흥민이 주장으로서 몸담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라는 팀은 냉정히 말하면 절대 강팀은 아닙니다. 한때는 강력한 선수들로 자주 상위권을 꿰차던 팀이었지만, 그마저도 우승 경력은 전무했고, 손흥민을 제외한 스타 선수들이 다 빠져나간 지금은 말할 필요도 없이 추락해 버렸죠. 제 오늘의 노래 제목처럼, 손흥민은 이 멸망한 팀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진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시간으로 2025년 5월 22일. 캡틴 손흥민을 필두로 한 토트넘은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왔던 유럽팀 대항전 우승컵을 끝끝내 차지하게 됩니다. 마치 이 노래가 지금의 손흥민을 위해 지어진 것처럼 잘 어울리지 않나요?

사실 저는 리버풀 팬입니다만, 손흥민이 뛰는 토트넘에 대한 응원의 마음은 항상 내심 있습니다. 다음 영웅이 나타나기 전까지, 손흥민은 한국 축구와 토트넘의 ’ 마지막 진짜‘이니까요.


“Cause you’re the last of a dying breed, Write our names in wet concrete.”
“너는 죽어가는 종족의 마지막 존재니까, 굳지 않은 콘크리트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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