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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악장 : 음악 그리고 미디어

각자의 추억 속으로

by 오록

오늘도 우연히 이곳에 당도하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

저번 시간에는 영화 속의 음악을 통해 각자의 인생 영화와 그 속에 담긴 음악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영화보다는 조금 더 대중적인 소재를 가져와봤어요. 크게 잡자면 미디어, 그 속에서는 만화, 게임, 예능, 코미디 등 tv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대중매체들입니다.

시간예술의 속성을 지닌 음악은 우리가 접하는 대중매체의 어떤 순간, 즉 시간의 상징물이 되기도 합니다. 감동을 받은 순간의 bgm일수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그널일수도,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하는 장치일수도, 전설이 된 한 사람을 상징하는 순간을 꺼내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죠.

그리고 오늘 이야기에서는 각자의 인생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경험한 뜻깊은 순간을 상징하는 음악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최대한 대중적인 소재를 통해 각자의 추억을 풀어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각자 그 순간으로 돌아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지금부터 4명의 추억 속으로 떠나보시죠!


#13년의 토요일, 그 뒷이야기

https://youtu.be/bns0ppXau34

오늘은 음악 이야기보다는 한 프로그램에 대한 제 엄청난 팬심을 공개해 볼까 합니다. 토요일에는 무한도전, 일요일에는 1박 2일, 그리고 월요일이 다가옴을 알리는 개그콘서트 엔딩곡까지 스마트폰이 없던 유년시절의 저에게 tv는 유일하게 연예인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매체였습니다. 주말 낮에는 야구를 하고 집에 귀가해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무한! 도전!"을 외치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주장하는 6명, 혹은 7명의 남자들의 도전을 보며 어린 저는 배꼽을 잡고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릴스, 각종 ott 등 옛날의 추억을 원할 때 언제나 끄집어낼 수 있는 2025년의 저는 여전히 제13년의 토요일을 책임져줬던 토요일의 남자들에 빠져서 살고 있어요. 오늘 제가 가져온 큰 주제는 '무한도전', 그중에서도 가장 길었던, 호불호가 갈렸던 장기 프로젝트 레슬링 특집 'wm7'의 한 장면입니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은 수많은 논란이 존재한 특집이었어요. 위험한 도전임에도 전문 교육 인력과 의료진을 배치하지 않았다, 너무 호흡이 길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결국은 감성에 호소하는 방송 아니냐 등등 많은 논쟁을 낳은 특집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장충체육관에 방문하고, 후에 본방송을 시청한 시청자들은 '이런 고통이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라는 반응을 보였죠.

제가 오늘 선택한 노래, 그리고 한 장면은 wm7의 마지막 3경기 등장 직전, 싸이가 축하무대를 하고 대기 중 정형돈은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입니다. 모든 멤버들은 걱정을 하고 심판으로 나선 하하는 정형돈을 위해 시간을 최대한 끌어주죠. 이러한 상황의 극적 전개를 위해 싸이의 연예인 무대와 대기실의 무한도전 멤버들의 모습이 교차편집되며 연예인 가사가 자막으로 깔리는 장면은 여전히 명장면으로 회자되곤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제 긴 설명보다는 첨부한 장면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추가로 레슬링 특집의 긴 서사를 다 봐주신다면 무한도전 키즈로서 더 만족할 것 같아요.

https://youtu.be/ElvB45FHXQA

최근 무한도전은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이라는 밈으로 회자되곤 합니다. 사회에 어떤 일이 생기면 무한도전의 장면이 등장하고 밈으로 소비되곤 하죠. 없는 게 없는 이 프로그램에서 저는 무한도전을 통해 인생을 배운 것 같습니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견뎌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연기와 노래, 코미디까지' 다 할 수 있는 희생정신을 배우고 있어요.

이 글이 어디까지 퍼질진 모르겠지만 제 유년시절, 13년의 토요일을 책임져준 남자들에게 꼭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할 수많은 무도 키즈들은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제 인생 최고의 아이돌이자 이상향일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내일

https://youtu.be/bgmMpT_m-t4

저와 비슷한 세대를 살아간 사람이라면 “개그콘서트”를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항상 월요일 아침이면, 학교에서는 전날 밤에 본 개그콘서트에 대한 대화가 주를 이뤘죠. 이 개그콘서트에 대해 다들 공감하실 추억이 하나 있을 텐데요. 바로 우리의 심장을 내려앉게 하는, 다음날 아침 평일의 시작을 알리는 개콘의 엔딩곡입니다. 이 곡이 사실 원래 있던 노래라는 거 아셨나요? 제 오늘의 곡이기도 한 이 잔인한(?) 노래의 제목은 바로 Stevie Wonder의 “Part-Time Lover”입니다!

이렇게 한국인에게 공포와 절망의 상징으로 유명해져 버린 이 곡은 “Isn’t She Lovely?”와 함께 스티비 원더의 대표곡 중 하나로 소개됩니다. 신나는 리듬과 중독성 강한 멜로디는 발매 당시에도 큰 인기를 끌었어요. 세계적으로 디스코 열풍이 한창이던 1985년, 스티비 원더의 이 실험적인 신스 사운드는 대중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 해 빌보드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죠.


신나는 곡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가사는 사뭇 불편한 편이에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하룻밤만을 사랑하는 불건전한 남녀의 불순한 사랑을 노래합니다.
“We are strangers by day, lovers by night. Knowing it's so wrong, but feeling so right”
“우린 낮엔 모르는 사이, 밤엔 사랑하는 사이야.
잘못된 걸 알지만, 기분은 너무 좋아. “
… 뭐 꼭 좋은 이야기만 노래하란 법은 없으니까요.


개그콘서트의 음악을 담당했던 이태선밴드는 이 곡의 멜로디를 가져와 신나는 밴드음악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추가로 앞부분에 전주를 임의로 추가해 흥겨움을 더했죠. 항상 개그콘서트 엔딩에서는 이 노래와 함께 개그맨들이 커튼콜처럼 다 나와 막 장기자랑을 하고 마무리 인사를 하곤 했었는데, 다들 기억나시려나요.


항상 아쉬움에 TV 앞을 떠나지 못했던 유년 시절의 우리들은 이 신나는 노래라도 끝까지 들으며, 어떻게든 내일을 맞이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을 거예요. 하지만 다음날 학교에서 개그콘서트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어젯밤의 아쉬움은 새까맣게 잊은 채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겠죠. 지금 이 곡을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이번엔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이에요. 내일은 여러분의 생각만큼 절망적이지 않을 거니까요.


#이름 없는 초대장

https://youtu.be/E3T3xTxVg-c?si=gmSTpgHIlQAgrBAV

”어느 날 밤, 새하얀 봉투에 들어 있던 이름 없는 초대장 하나가 도착했다. 말없이 약속된 시각, 번쩍이는 샹들리에가 천장을 가득 채운 무도회장에는 검은 리본과 반짝이는 보석을 두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발끝에서 피어나는 음악과 웃음이 흘렀다. 호명도, 목적도 없이 시작된 이 밤의 정체는, 그저 이 도시가 아직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 같았다. “

오늘 제가 들고 온 곡은 저희 세대라면 모를 수가 없는 추억의 만화, ‘톰과 제리'의 한 에피소드에 통째로 삽입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의 서곡입니다.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빈의 화려하고 사교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입니다.

서곡은 본래 오페라나 오페레타, 혹은 연극의 시작에 앞서 연주되는 관현악 곡으로, 관객의 집중을 유도하고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예고하는 역할을 합니다.
낭만주의 시기에는 단순한 도입부를 넘어, 작품의 주제 선율을 미리 들려주거나, 정서적 분위기를 음악으로 암시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본 작품은 높은 완성도 덕분에 가볍고 화사한 ‘오프닝 음악’으로서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관현악곡으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작품의 특징으로는 낭만주의 시대 오페레타 작곡 기법인 빠른 템포 전환, 유쾌한 리듬 구성, 반복적인 선율 사용이 잘 나타납니다. 경쾌한 도입부에서 점차 웅장함과 극적인 긴장감을 쌓아가는 구조는 당시 작곡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청중 몰입 기법의 전형이며, 전체적으로는 가볍고 화사하지만 동시에 치밀하게 설계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 덕분에 ‘톰과 제리’의 익살스러운 분위기에 잘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여러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버전이 있지만 저는 여러분들께 Carlos Kleiber 지휘의 Vienna 필하모닉이 연주한 버전을 추천드립니다. 템포도 빠르고 강약대비가 뚜렷하며 무엇보다 무도회 분위기가 제일 잘 나타납니다. 단순히 잘 연주한 게 아니라 빈에서 태어난 곡을 빈이 가장 잘 이해한 방식입니다.

이 작품을 건네드리며 여러분들을 무도회 같은 우아한 밤으로 초대하겠습니다 !


# Legends never die

https://youtu.be/4Q46xYqUwZQ?si=zLYHVoVCUIJ65uXL

9게임을 하든 하지 않든, ‘페이커(Faker)’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SKT T1의 미드라이너, 이상혁.
2013년 프로 데뷔 후 지금까지 무려 10년 넘게 세계 무대 최정상에서 활약 중인,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입니다.

오늘은 그 전설을 상징하는 노래 한 곡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2017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의 공식 테마송, Legends Never Die.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희생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고난을 거친 자만이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 문장은 Faker 선수의 커리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데뷔 첫 해, 롤드컵 우승. 그 뒤를 이어 2015, 2016년 월드 챔피언의 자리에 다시 올랐고, 2017년엔 준우승.
누구보다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그 길은 언제나 영광으로만 채워져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2018년엔 팀이 월드 챔피언십 본선 진출조차 하지 못했고, 2019년과 2020년에도 생각만큼의 결과를 거두지 못했죠.
가끔은 ‘은퇴’라는 단어가 언론에 오르내렸고, ‘왕조는 끝났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Faker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슬럼프를 견디고,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며, 다시 올라왔습니다.
2023년. 그는 네 번째 롤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죠.

Legends Never Die는 단순한 게임 주제가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사를 곱씹어 보면 이 곡은 결국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넘어질지언정 좌절하지 말라고.
두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자만이, 진짜 전설이 된다고.

“When everything's lost, they pick up their hearts and avenge defeat.”

페이커가 보여준 지난 10년은 이 가사의 현실적인 구현이었습니다.
매 순간 기대와 압박, 승리와 패배의 한복판에서 그는 무너지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전설’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썼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겪고 있는 실패나 상처도 결국 하나의 ‘과정’ 일지 모릅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여러분만의 전설이 시작될 수 있을 테니까요.

여러분은 어떤 것의 전설이 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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