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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악장 : 음악 그리고 영화

한 곡에 담는 2시간의 정수

by 오록

오늘도 우연히 이곳에 당도하신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저번주 프롬나드를 거쳐서 드디어 우리의 이야기가 3악장 세션에 도착했습니다. 귄록루역에서 가져온 3악장의 메인 주제는 '음악과 문화의 연결'입니다. 음악 그 자체도 문화의 한 분야지만 음악은 많은 문화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성요소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많은 문화예술 중 영화를 주제로 다루려고 합니다. 각자 생각하는 영화의 정수를 담은 음악을 가져와서 모두가 알만한 영화,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음악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영화를 다루다 보니 사랑 이야기를 하게 돼서 자연스럽게 각자가 요즘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서도 가볍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각자 선정한 영화와 음악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시죠!


#돌아올 수 없었던 사랑과 다시 마주한 순간.

https://youtu.be/Chs2bmqzyUs?si=0Lc_mq3_1FuE5RWS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따라 걸어온 이들에게 이 음악은 단순한 삽입곡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아이언맨으로 시작된 인피니티 사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노래. 그 긴 여정의 끝자락에 이 곡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 모든 시간이 다시금 떠오르게 됩니다.

It’s Been a Long, Long Time은 1945년, 전쟁이 끝나던 해에 발표된 곡입니다. 전설적인 트럼펫 연주자 Harry James와 그의 빅 밴드, 그리고 보컬 Kitty Kallen이 함께했죠. 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남편을 맞이하는 아내의 목소리로 노래되는 이 곡에는 그리움, 안도, 기쁨,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평온이 담겨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단순한 문장 하나가 담아내는 감정의 깊이를,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견디며 보낸 시간들,
그 끝에서 비로소 서로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터져 나오는 숨결 같은 말. 그 한 문장 안에 긴 겨울이, 그리고 봄의 입김이 동시에 스며 있습니다.

스티브 로저스가 과거로 돌아가 오랜 연인이었던 페기 카터와 춤을 추는 그 장면에 이 노래는 조용히 스며듭니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그들이 걸어온 시간, 그리고 도달한 마음의 마지막을 보여줍니다. 그 순간, 이 곡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그들의 시간을 대신 말해주는 목소리가 됩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얼마나 쉽게 멀어질 수 있고, 그럼에도 다시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처럼 느껴질 수 있는지를요.
크게는 거대한 서사의 마지막을, 작게는 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노래로. 이 곡은 그렇게 제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던 마음이, 조용히 다시 숨을 쉬는 순간.
그 순간에 이 노래가 흐른다면, 우리도 언젠가 조용히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낭만 넘치는 지구종말 이야기.

https://youtu.be/JkK8g6FMEXE?si=t8IgfnliauaXuuj7

“잠들기 싫어요.”


“왜요?”


”잠들면 당신이 그리워질 테니까요. “


잠드는 시간조차 아까울 만큼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나요? 미국의 한 여배우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남편과의 위 대화를 회상했습니다. 이를 감명 깊게 본 작곡가 Diane Warren은 이 이야기를 가사로 사용해 노래를 만들었는데요, 그 곡이 바로 제 오늘의 노래, 영화 [아마겟돈]의 OST “Aerosmith - I Don’t Want to Miss a Thing”입니다.

저는 이 노래를 영화보다 먼저 알게 되었는데요, 바로 국민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조정”편에서 BGM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한도전의 애청자였던 저는 노래에 감명을 받아서 찾아 듣기 시작했고, 이후에 아마겟돈이라는 영화의 존재도 알았어요.

노래 덕분에 제 인생 영화를 찾은 셈이죠.


마이클 베이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영화 [아마겟돈]은 지구의 소행성 충돌을 막아내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재난 SF 영화입니다. 주인공 해리는 처음엔 동료이자 예비 사위인 AJ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며 전우애가 싹트고, 결정적인 순간 결국 해리는 AJ 대신 목숨을 희생하며 당신을 아들처럼 사랑했음을 유감없이 표현합니다.


해리의 딸과 사위를 향한, 나아가 이 지구를 향한 사랑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이 OST는 이 메시지를 가장 잘 담은 하나의 편지가 되었죠.

이 노래는 희생을 초월한 사랑을 보여주는 순간 가장 어울리는 노래가 아닐까 싶어요. 가족, 전우•동료, 연인 등등… 모든 생명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싹터, 마지막에는 지구를 구해낼 만큼 큰 힘을 발휘하게 하죠. 우리 모두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살아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 생각보다 강할 거예요.


#나 같은 게 널 사랑해도 괜찮을까?

https://youtu.be/GDTD24KsdGc?si=_GqqkFcT8U3p6dqr

Love Like You는 미국 애니메이션 스티븐 유니버스의 엔딩곡으로, 시리즈 전체를 조용히 감싸는 감정선의 결을 지닌 곡입니다. 부드러운 피아노 라인과 절제된 보컬이 특징이며, 사랑에 대한 단순한 고백이 아닌, "내가 너를 사랑해도 괜찮을까”라는 자기 의심에서 시작되는 섬세한 노래입니다. 이 곡은 단순한 러브송이라기보다, 사랑을 마주할 때 느끼는 무력감과 감탄이 공존하는 내면의 대화에 가깝습니다.

가사는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그는 자신이 불완전하고 어딘가 어두운 존재라고 믿습니다. 그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 밝고, 따뜻하고, 특별한 사람입니다. 사랑받고 싶지만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의 조용한 고백이, 음악 속에 고요히 흐릅니다.
“I always thought I might be bad “
(난 항상 내가 별로라고 생각해 왔어)
"Cause I think you’re so good, and I’m nothing like you.”
(넌 너무 좋은 사람이지만 난 너 같지 않은걸)
“I wish that I knew what makes you think I’m so special.”
(넌 왜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이 노래는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여러 인물의 감정에 겹쳐지는 테마로 쓰입니다. 그중에서도 펄이라는 캐릭터가 로즈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마음에 가장 가깝습니다. 깊이 사랑하지만, 끝내 그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던 인물의 내면을 그대로 품습니다. 또한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자격 없는 사랑’,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자기혐오’, ‘그럼에도 사랑하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반복되기에, Love Like You는 이 작품의 가장 본질적인 주제를 담은 노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비단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더라도, 이 노래가 품고 있는 감정은 우리 모두의 마음 어딘가에 스쳐갔던 감정일 수 있습니다. 너무 좋아서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 그 옆에 설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열등감, 그리고 그런 나도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밀려드는 순간이 분명 있습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향해 쏘아 올리는 감정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Love Like You는 그런 의문을 아주 부드럽고 아름답게, 그리고 적절하게 전해주는 음악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사람을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인가요?


#라쿠나는 나에겐 필요 없어.

https://youtu.be/e_NJ1jnU-TU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아시나요? 오늘 이야기할 음악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영감을 얻은, 월간 윤종신 2015 10월호 수록곡 '기억의 주인'입니다. 제 개인적인 이 노래에 대한 감상평은 '조엘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기억을 지우는 과정'이에요. 1절에서는 기억을 지우기 전 조엘의 상황, 그리고 조엘이 느끼는 두려움을 이야기합니다. 2절에서는 기억을 지우고 난 후 조엘이 느끼는 혼란스러움을 이야기하고 있죠.

작사가 윤종신의 최대 강점은 일상의 언어로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고 '텅 빈 내 기억이 외로워' '보고 싶어요 그대, 나를 데려다줘요'같은 일상의 대화체로 이야기를 전개하죠.

음악 자체는 전형적인 이별의 순간을 그리는 발라드입니다. 제가 느끼는 특징이 있다면 짧은 호흡으로 툭툭 던지는 직설적인 이별의 상황이 기억이 사라진, 이별한 화자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이터널 선샤인>을 2시간 동안 볼 열정은 없거나, <이터널 선샤인>에 매료된 사람들이라면 이 노래는 꼭 들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최근에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봤습니다. 제 인생은 정말 지우고 싶은 기억 투성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남은 기억은 항상 함께해야 하는 인연이자 악연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에 실수했던 기억을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가끔 지치는 날에는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을 꺼내 추억에 잠길 수도 있죠. 과거부터 알았던 사람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때, 그리고 그 사람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 때는 '아, 과거의 너는 이런 사람이었고 여전히 변하지 않았구나'라는 피드백을 해주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기억은 사라지더라도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아요. 증오, 연민, 사랑 등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기억이 남아있다면 이 감정을 표출하지 않게 막아주는 장치가 될 수도 있죠. 안 좋은 기억이 있었으니 피하면 그만이니까요.

<이터널 선샤인>, 그리고 '기억의 주인'은 사랑과 기억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듭니다. 위의 두 문단은 제가 나름대로 최근에 내린 결론인 것 같아요. 여러분도 연휴를 즐기다가 문득 할 일이 사라진다면 사랑, 그리고 기억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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