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4. 프롬나드 : 이 녀석들의 근황

해뜨기 전이 제일 어둡대. 근데 너무 어두워.

by 오록

오늘도 우연히 이곳에 당도하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벌써 15번째 이야기를 하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음악과 과학, 어, 문화 3가지 큰 주제를 연결해서 정말 다양한 장르를 다룬 것 같네요. 저희는 글을 쓰면서 정말 즐거웠는데, 여러분들도 부디 즐거운 여정이었길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2월 말에 시작한 이 이야기가 벌써 6월의 첫날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그런데 저희의 근황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4악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저희의 근황 이야기를 음악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부제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네. 사실 많이 암울합니다. 사실 각자 바쁜 삶을 살고 있어서 우리도 글로 근황 좀 확인하자!라는 가벼운 의도였는데 글의 순서를 편집하고 연재를 준비하는 지금 천천히 읽어보니 너무 암울하네요..


오늘 글은 즐거움을 찾기보다는 사회 초년생 2명과 병장 2명의 신세한탄, 그 속에서 약간의 위로를 얻어간다고 생각하시고 음악을 통해 이 녀석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지금부터 각자의 삶 속으로 떠나보시죠 :)


#내가 할 수 있는 건

https://youtu.be/YviN1 tuXbzc? si=WHpXncMWh2 aZ1 uuj

깊은 우울에 빠져본 적이 있나요? 오늘은 한 사람을 심연에서 꺼내 준, 재기와 환희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큰 실패 없이 순탄한 작곡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야심차게 작곡한 첫 교향곡이 역대급 혹평을 받자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러시아 5인조 중 한 명이자 라흐마니노프의 지인이었던 작곡가 세자르 큐이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1번 공연 이후 “지옥의 음악원에서나 좋아할 음악이다”라며 악평을 쏟아부었죠. 뿐만 아니라 이 교향곡 1번은 대중들에게도 혹평을 받으며 차갑게 무시를 당했습니다.


크나큰 첫 실패에 충격을 받은 라흐마니노프는 이후 몇 년 동안이나 곡을 쓰지 못하는, 소위 ’ 슬럼프‘에 빠지게 돼요.

이렇게 주저앉아 있던 라흐마니노프는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합니다. 니콜라이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끊임없이 당신의 다음 작품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최면 치료를 합니다. 이 4개월간의 최면으로 성공의 믿음을 가지게 된 라흐마니노프는 곡을 하나 작곡하는데, 이것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역작 “피아노 협주곡 2번”입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제가 피아노 전공을 결심하게 된 인생곡입니다. 전공 선택에 대한 고민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저는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이 곡 연주를 듣고 진로를 결정했어요. 마지막 악장의 피날레는 이 곡의 서사를 모르던 저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환희와 벅차오름으로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이후 이 곡은 제가 꼭 쳐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곡이 되었어요.

사실 근황을 이야기하기 위한 글로 서론을 많이 잡아먹었는데요, 요즘 저는 군대에서 이 곡의 악보를 읽고 있습니다. 군대라는 집단은 우울감과 고독감을 느끼기 가장 좋은 곳이잖아요? 어느덧 남은 복무일이 100일도 남지 않은 말년 병장이지만, 의외로 지금이 군생활에 가장 회의감이 드는 시기인 것 같아요. 요즘 군생활에서 유일한 낙이, 일과가 끝난 후 자유시간에 피아노 연습을 하는 거예요. 이 곡을 읽고 있자면, 일과 시간 동안 받은 스트레스와 잡생각이 사라집니다. 저도 라흐마니노프처럼 이 곡의 도움을 받고 있는 셈이죠.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가는지가 중요한 거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지금 힘들다면, 또는 그런 순간이 온다면 이 노래를 한번 들어 보세요. 라흐마니노프의 서사와 환희로 가득 찬 피날레가 여러분의 마음의 짐을 덜어 줄지도 몰라요.


#Fuck everything and just live

https://youtu.be/oWHnn6jvW4c

근황이요.. 아직도 전역을 안 한 저는 진절머리 나는 통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제 잘못이 되고, 엊그제 병장을 달았는데 이젠 후임이 잘못해도 제 잘못이랍니다 하하. 특별히 요구한 것도 없지만, 바라는 것도 많다고 간부들은 저를 질책하기 바쁘고.. 뭘 어떻게 해도 “그래봤자 네가 문제다”로 끝나는 구조. 그게 지금 제가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제일 짜증 나는 건 제가 아무리 생산적으로 살려고 해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복무하고 있는 군악대는 언제 어떤 행사가 잡힐지 모르기 때문에 계획표라는 게 굉장히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제 루틴이 자주 망가지기 일쑤죠. 파워 J로써 상당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전 이 케케묵은 구조들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저는 매일 밤마다 독서실 연등을 가고, 시간 날 때마다 엎드려서 푸시업을 하고, 평일 밤과 주말에 피아노 연습도 행사나 근무가 잡히지 않는 한 빼먹지 않고 갑니다.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발악을 합니다.

이유를 몰랐던 순간도 많았지만, 어느 날 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이 하루하루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바로 깨달았습니다. 무작정 살아남는 게 아니라 나를 잃지 않고 이 시간을 건너가는 것. 그게 진짜 의미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이런 하루들이 끝도 없이 반복되면 가끔은 무력해지고, 내가 나를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저는, 매일의 버거움 속에서도 작게라도 저를 지키는 선택을 해요. 일과에 치여 짬 내서 하는 게 전부일 지라도 말이죠. 그게 쌓이면 언젠가는, 이 시간을 지나온 제가 꽤 멋지다고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래도 시간은 거꾸로 가진 않으니까요.

’Stay young‘은 그런 노래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수치심과 죄책감을 심어주려 해도, 우린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젊고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무엇이 와도 멈추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자는 겁니다. 뭘 하든 어차피 저희는 엄청나게 젊으니까요. 이건 단순한 반항이 아닌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이자 감정적 독립의 선언입니다.

지긋지긋한 일상에 갇혀있거나, 외부로부터 통제당하는 삶을 살고 있거나, 이상한 집단에 가두어져 있는 모든 분들께 이 노래를 추천드립니다. 아닌 분들도 한 번씩 들어보세요. 노래 진짜 신나거든요 ㅋㅋㅋ 그리고 우린 엄청 젊잖아요. 중요한 건 아까도 말했듯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겁니다.

“Hey! stay young and invincible”
(이봐! 언제까지나 젊게 살자고! 그리곤 천하무적이 되는 거야)
“‘cos we know just what we are”
(우린 우리가 누군지 잘 알고 있잖아)


#하루의 일기, 다섯 개의 내용

https://youtu.be/vmDDOFXSgAs

제 요즘 하루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움직입니다.
운동, 식사, 공부, 휴식, 잠. 다섯 개의 구간이 나뉘어 있고, 저는 그 안에서 규칙적으로 숨을 쉽니다.

처음엔 이 리듬이 어색했습니다. 왜 똑같은 흐름을 반복하며 살아야 할까. 운동이 끝나면 식사를 하고, 식사 후엔 책상 앞에 앉고, 모든 일과가 지나가면 침대에 누워야 합니다.

이런 반복은 지루하고, 때론 막막하기까지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구조는 하나의 곡처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고, 이어지되 조금씩 변주되는 흐름. 리듬 속에서 천천히 익숙해지고, 몸과 마음이 그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Dave Brubeck의 Take Five는 그런 음악입니다.
보통의 재즈가 4/4 박자 위를 걷는다면, 이 곡은 이름 그대로 5/4 박자. 어딘가 비틀린 듯하면서도, 들을수록 안쪽으로 들어오는 리듬. 건반 위를 톡톡 걷는 피아노, 그 위로 떠다니는 알토 색소폰. 그리고 그 모든 흐름을 조율하는 드럼의 절제된 박자.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제 하루가 겹쳐집니다. 익숙한 듯 낯설고, 단순한 듯 수없이 복잡한 다섯 개의 루틴.
운동으로 몸을 깨우고, 식사로 채우고, 공부로 머리를 쓰고, 휴식으로 조금씩 풀고, 잠으로 하루를 덮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첫 박자부터 시작됩니다.

이 리듬은 언제쯤 끝날까요.


사실,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나만의 템포를 잃지 않는 일. 너무 빠르지 않게, 너무 늦지 않게. 조금 어긋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다섯 박자처럼,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채우는 일.

다시 피아노가 흐르고, 드럼이 숨을 고릅니다.
내일도, 우리의 리듬은 계속될 겁니다.
Take five, again.


#일단 나부터. 좋은 소식.

https://youtu.be/hlk1N68DAgQ

솔직히 요즘 좀 힘드네요. 힘들다? 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냥 지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두괄식으로 전개하는 글을 싫어하지만 이 감정이 살아있는 지금 제 근황을 나열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쳤어요. 사회생활을 핑계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숨기는 것,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외면하는 행위는 나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제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만취한 상태로 집에 돌아가며 오늘 소개할 노래를 듣고 있어요. 아마 이 이야기를 이 상태로 마무리한다면 간단한 노래 소개와 함께 제 근황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제가 가져온 노래는 우리 곁을 떠난 아티스트 mac miller의 'good news'라는 곡입니다.

'Good news'의 가사를 처음 작정하고 해석했을 때 이 사람은 왜 내 이야기를 미국에서 죽기 직전에 한 거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지만 반쯤은 무슨 이야기를 한지도 모르겠고, 잠시 길에서 벗어나 쉬고 싶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제가 우울감에 빠진 모습도 싫겠지만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것을 더 싫어할지도 몰라요. 이 밖에도 good news의 가사는 맥 밀러가 죽기 직전에 써 내려간 이야기지만 아이러니하기도 현대인들에게는 잠시나마 휴식과 위로를 줍니다.

학생 때 꿈꿨던 삶을 지금 저는 반쯤 이룬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현실을 깨달을수록 방향성을 잃고 열정은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그냥 하루 뭉개다가 집에 가서 내 할 일 하지 뭐라는 생각 투성이죠. 하지만 혼돈의 카오스였던 5월을 보내주고 우리에겐 6월이 찾아왔습니다. 6월의 목표는 '저를 괴롭히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기'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저부터 좋은 소식을 하나씩 전해 보는 것, 그것이 행복해지는 첫 번째 방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2025년은 제 주변인들 모두가 참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모두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어딘가에 갇혀서 어둠 속을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제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은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힘든 일이 생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도 이 말을 하면서 오늘 이야기는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대.

일단 나부터 good news를 하나씩 전할 테니 각자의 좋은 소식을 만들어서 가장 찬란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keyword
이전 14화13. 3악장 : 음악 그리고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