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이곳에 당도한 당신들에게.
귄록루역에 도착하신 여행객분들 반갑습니다 :) 아무래도 브런치스토리에서는 처음 가이드를 해보다 보니 제가 정말 아끼는 동료 3명과 함께 여러분의 여행을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다들 저만큼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 친구들인 만큼 저와 함께 열심히 여러분들의 음악 여행을 돕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저희가 추천드리는 여행 방법을 소개해드릴까 해요. 여러분들이 방문하실 때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보려고 합니다. 하나의 주제 안에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가이드들이 추천드리는 음악을 같이 들어보려고 합니다.
가능하시다면 소개된 음악을 들으시며 가이드를 읽어주시는 게 저희가 가장 추천드리는 여행방법입니다. 음악을 들을 상황이 안되시거나 저희가 소개해드리는 음악이 너무 길다면 마음속에 간직했다가 기억이 났을 때 꺼내서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음악 여행의 시작점에서는 저희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한 20대 초반,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객 분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저희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속에서 음악을 즐기는 방식과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경험을 가지는 시간을 가져주신다면 음악을 사랑하는 저희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귄의 이야기 #놓쳐버린 이름.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이름 3글자를 머릿속에서 되뇌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웃음이 새어 나오는 사람이요. 제 경우엔 전에 만나던 사람이 그랬습니다. 대학생 시절 그 친구와 만날 당시에 애플뮤직의 추천으로 이 노래를 듣게 되었고 음악 여행 가이드로써 저를 소개하기 위해 오늘 이 곡, 최유리의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의 제목‘굄‘이란 '유난히 귀여워서 사랑함' 또는 '남에게 사랑받을만한 특성'입니다. 그리고 귀엽다의 뜻은 ‘예쁘고 곱거나 또는 애교가 있어 사랑스럽다’라고 정의되고 있네요. 사랑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계신다면 수록곡이 2곡인 싱글 앨범이니 2곡 다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음악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최유리라는 가수의 특징이라면 구어체로 담담하게 직설적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가창을 합니다. 귀로 부드럽게 흘러들어오는 특유의 음색과 대중가요에서 많이 쓰이는 스트링 사운드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후렴구 '아쉽게 지난 놓쳐버린 말을 다해'의 상승하는 멜로디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설레어오는 마음을 연상케 합니다. ‘놓쳐버린 말을 다해’라는 가사는 들뜬 마음에 차마 해주지 못했던 소중한 말들이 집에 와서야 생각났다는 것, ‘얼마만큼 내가 어떻게 감히 말해, 귀를 열어줄래 네 이름을 불러줄게’라는 가사는 좋아한다는 감정을 말로 정리하기 어려워 결국 마음을 담아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연애 초반의 서투른 사랑과 많이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해석의 여지는 다르고 원곡자의 의도도 모르지만 제 나름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해석이라기보단 제가 그 사람과 만나며 이 노래를 들을 때 들었던 감정이 더 정확할 겁니다. 저희는 이 여행에서 평론이 아닌 감상을 하려고 하고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전달해 주는 매개체이니, 청자의 감정에 따라 감상평이 변하는 주관적인 예술이기 때문이죠.
저에게 음악은 어떤 순간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상징물입니다. 그저 그런 하루에 들었던 음악을 몇 개월 혹은 몇 년 뒤에 들으면 무심코 흘려보냈던 그때의 기억들, 그 당시엔 소중한 줄 몰랐던 기억들, 어떤 경우엔 냄새까지 어렴풋이 기억나게 해 줍니다. 마치 시간을 기록하는 LP판처럼 말이죠.
지금은 인연이 다 되어서 접점이 없지만 그때가 그리워질 때면 이 노래를 듣곤 합니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마음껏 귀여워하고 싶을 때 또는 귀여움을 받고 있을 때 한 번씩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사랑이 더 성숙해졌을 때 이 노래를 꺼내 들으면 초반의 풋풋한 사랑이 생각나 더 애틋한 마음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록의 이야기. #우리가 가장 빛나던 순간.
첫 여행의 주제를 저희를 소개하는, 저희의 20대 초반 시절의 이야기로 정한 후에 저라는 사람 개인을 소개할지 우리를 소개할지 고민을 좀 해보았습니다. 아마 제 개인의 이야기는 이 음악여행 속에서 풀어낼 기회가 많을 것 같아서 저는 제 찬란한 순간을 상징하는 노래, 이세계의 '낭만젊음사랑'이라는 노래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이 노래의 가사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제 기준 청춘의 3요소인 낭만, 젊음, 사랑 3가지를 직설적으로 강조하는 가사를 가지고 화자가 청자에게 나와 함께 청춘을 빛내보지 않을래?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비단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친구에게 하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고요.
아마 이 노래의 후렴구는 다들 아셔도 아웃트로는 모르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라는 가사를 마지막으로 전달하고 잠깐의 정적 후 나오는 기타 솔로는 나랑 같이 갈 거지? 이제 달려 나가자!라는 느낌을 줍니다.
단순한 코드진행 위에서 여름밤의 불꽃놀이처럼 터져 나오는 일렉기타의 강렬한 톤과 다듬어지지 않은, 휘몰아치는 솔로라인은 길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같이 청춘을 빛내보고자 하는 화자의 열정을 대변해 주는 장치라는 생각도 합니다.
성장을 하고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안 좋은 기억들은 희석되고 좋은 기억들만 가져가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음악은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매개체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빛났던 공연장을 기억하게 해주는 이 곡을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면서 다시 그때의 열정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무언가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분들, 혹은 젊은 날의 열정을 그리워하는 분들께 이 노래를 추천드려요. 이 곡을 듣고 있는 3분 40초나마 잠시 현실을 벗어나 가장 젊고 찬란했던, 낭만 가득했던 그날로 돌아가보는 건 어떨까요?
루의 이야기.
#엎친 데 덮친 격, 불운은 하나로 끝나지 않아.
https://youtu.be/XerppQXti5A?si=0m4MB0qDncFjuXPk
살면서 불행한 시기를 겪어본 적이 있나요? 저는 대학교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군대 자대 배치를 받을 때까지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동기들은 대부분 논산 훈련소로 배치받았지만, 저는 강원도의 한 훈련소로 가게 되었죠. 게다가 자대에 전입하자마자 동기제가 6개월에서 3개월로 바뀌면서, 부대 내에서 유일하게 저만 동기가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던 사람에게 갑작스럽게 관계를 정리하자는 통보까지 받게 되었죠.
그때부터 혼자만의 시간이 생길 때마다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해야 하지? 내가 잘못 살아온 걸까? 익숙한 노래를 듣고, 좋아했던 영상들을 봐도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그런 저를 챙겨주던 선임들이 가장 즐겨 들었던 장르가 바로 재즈였습니다. 클래식이 전공이었던 저에게 재즈는 그야말로 충격이었어요. 정해진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밴드가 코드 진행과 흐름만 공유한 채 서로의 호흡을 맞춰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신선하고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누구 하나 돋보이려 하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함께 빛나는 그 연주가 참 행복해 보였죠.
합주 쉬는 시간, 실용음악을 전공한 선임들이 잼(즉흥합주)을 하는 모습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나도 다시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 저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즈로 가득 채우고, 하루 종일 듣고 따라 부르며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을 울렸던 곡들 중 하나가 바로 Chet Baker의 'Everything Happens to Me'였습니다. 멜로디는 전혀 우울하지 않지만, 가사는 불행과 좌절을 노래하는 곡.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라는 가사는 마치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노래에서 느껴지는 좌절은 절망적이라기보다 담담했습니다. 마치 "그래,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 나만 겪는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이런 순간을 겪는다는 걸. 그리고 그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걸요.
재즈는 저에게 그런 위로를 건넨 음악이었습니다. 그리고 챗 베이커의 노래는 그중에서도 가장 따뜻한 한마디를 건넨 곡이었죠.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음악 장르를 접할 때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죠. 음악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낯선 것들은 처음엔 조금 두렵게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도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음악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위로를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론이나 전문적인 지식은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음악을 사랑하는 필수 조건은 아닙니다. 낯설지만 설레는, 때로는 두렵지만 따뜻한 음악의 세계. 함께 걸어보지 않으실래요?
역의 이야기. #기억은 음악 안에 보관할 수 있다.
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제대로 된 기억조차 많지 않던 어린 시절 아직까지 또렷하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기억 중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저녁마다 아버지와 동네를 한참 동안 산책했던 나름의 루틴입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낡은 MP3 플레이어를 챙겨 갔는데, 그 안에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100이라는 폴더 하나뿐이었습니다. 클래식의 'ㅋ'자도 몰랐던 우리 부자는 그저 조용히 걷고, 함께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 폴더 안에는 오늘 소개해드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2악장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도입부의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가 호른인 줄도 몰랐지만 선율이 너무 좋아서 꼭 두세 번씩 돌려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제가 점점 성장을 하고 아버지와의 산책을 피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 곡도 저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전공하게 되면서 교향곡이라는 장르는 후순위로 밀려나기도 했고요.
그렇게 고등학생인 저와 대학생인 저를 거쳐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음악과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 곳은 뜻밖에도 군대였습니다.
제 동기들은 대부분 클래식을 전공한 친구들이었고, 아침마다 TV를 클래식 채널에 고정해 두고 하루 일과를 준비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늘 틀어 놓던 TV에서 우연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2악장의 첫 음을 듣는 순간, 마치 10년 전으로 순간이동한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음악을 공부하면서 이 곡을 찾아들은 적은 없었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선율을 저도 모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0년 넘게 잊고 있었던 산책로, 지나쳤던 카페와 놀이터까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펼쳐졌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음악을 타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유년시절의 제가 이 곡을 들으며 천천히 동네를 한 바퀴 돌던 것처럼 제가 소개하는 이 곡의 2악장은 A-B-A' 세 도막 형식의 느린 악장입니다. 저와 아버지의 추억을 상징하는 호른 선율이 산책을 하며 어떤 악기를 만나서 변하고 다시 돌아오는지 생각하며 이 곡을 감상하신다면 다소 어려운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 우리의 주의를 끌면, 그 순간의 감정과 경험이 함께 기억 속에 저장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음악을 들으면,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그때의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납니다.
혹시 저희와의 여행을 통해 이 문단까지 도달하셨다면 여러분도 여러분의 인생 음악을 통해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을 한 번 꺼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음악 속 어딘가에, 당신이 미처 잊고 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