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2층집에서 1층집으로

제2막의 시작을 알린 이사

by 기록가 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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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이 있는 사람처럼 나는 자주 이사를 했다.
초등학교만 네 군데를 다녔으니,

이 정도면 팔자에 ‘이사’가 있는 셈이다.


미국 주재원 가족은 보통 한 집에 4–5년을 산다.
렌트는 1년 단위로 갱신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2년 계약을 제안했다.

한국식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묻어났을 것이다.

다행히 랜로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번 집도 2년 계약이다.
미국에서는 1년 단위 렌트를 선호하는 이유가

임대료 인상 때문이라지만, 우리가 만난 집주인들은

오히려 장기 거주자를 더 반겼다.

서로의 계산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처음 미국에 올 때는 조건이 분명했다.
2층 싱글하우스, 게이트 커뮤니티, 단정하게 관리된 조경.


‘안전하고 멋있는 집’이 최우선이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알게 됐다.
2층집은 멋있다.

하지만 매일 오르내리다 보면

로망은 체력 앞에서 무너진다.

청소도, 빨래도, 아이를 부르며 계단을 오르는 일도 은근히 고되다.

임신이나 신생아 육아를 떠올리면 더더욱 현실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다.
“단층집으로 가자.”


게이트와 커뮤니티 수영장이 주는 안정감도 분명 있었다.

HOA가 조경을 관리해주니 외관은 늘 반듯했다.

하지만 집은 10년 이상 렌트로 돌려진 상태였다.

잔고장은 가늘고 길게 이어졌다.


변기 펌프를 고치면 파이프에서 물이 새고,

1층을 손보면 2층에서 문제가 터졌다.

랜로드는 성실했지만, 임시방편의 수리는 또 다른 문제를 낳기 일쑤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적어도 파이프와 수전, 변기만큼은 새것인 집으로 가자고.




‘향’도 처음엔 크게 따지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스터룸과 거실이 북향이었다.

캘리포니아인데도 집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남향 방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적어도 아이 방만큼은 남향으로 하자고 했다.
햇빛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사실 더 솔직한 이유도 있다.
이 집에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느꼈다.


둘째를 떠나보냈고, 임신 기간 동안 2층집은 유난히 버거웠다.
첫째는 친구 문제로 힘들었고, 나는 한국 엄마들 사이에서 인간관계로 지쳤다.


정착은 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래서 이사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새 출발’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막상 단층집을 알아보니 우리 지역에서는 오히려 1층집이 더 비쌌다.
그리고 우리는 수영장 있는 집을 비선호했는데,

어쩌다 보니 수영장이 딸린 집으로 오게 되었다.


처음엔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프라이빗 수영장이 있는 집에 언제 또 살아보겠는가.
주어진 상황을 불평 대신 경험으로 바꾸어보기로 했다.


집은 3–4개월 동안 천천히 보았다.
리뉴얼 여부, 배관 상태, 햇빛 방향, 동네 분위기.

꼼꼼히 따져보니 마지막 결정은 오히려 빨랐다.


“최고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의 최선이다.”




이사 후 일주일은 넉다운 상태였다.
한국식 포장 이사를 했지만, 정리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박스를 뜯고, 쓰레기를 버리고, 가구를 다시 배치하고,

커튼을 달고, 조명을 바꾸고.
그 와중에 아이 농구와 야구 경기가 번갈아 이어졌다.


좀비처럼 하루를 넘겼다.


일주일쯤 지나자 비로소 ‘우리 집’이라는 감각이 생겼다.


이전 집이 화려한 커뮤니티 속의 세련된 공간이었다면,

지금 집은 전형적인 미국 집이다.

백인 노부부가 오래 살다 처음으로 렌트에 내놓은 집.

인테리어는 올드하지만 배관과 설비는 새것이다.


게이트도 없고, HOA도 없다.
모든 것은 셀프 서비스다. 남편은 연일 고생 중이다.
수영장 관리인이 있다지만 벌레와의 싸움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집에선 ‘정말 미국에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사와 동시에 삶도 속도를 높였다.


컬리지 수업을 듣고, 아이를 라이드하고,

대학원 지원을 준비하며 토플을 봤다.

CV와 SOP, 추천서를 정리하고 있다.

육아휴직 종료와 퇴사 절차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몸은 바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차분하다.


지난 2년이 ‘정착과 아이’에 초점을 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나’를 다시 꺼내는 시기 같다.


공부를 시작하니 나를 소개하는 문장이 달라졌다.
대학원을 준비한다고 말하면, 어떤 이들은 시기와 의문을 보냈지만,

외국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 응원했다.


“그래야 네가 여기서 일할 수 있지.”
현실적인 조언과 함께.


한국에서의 학력과 경력은 미국에서 자동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의 이력을 쌓고 싶다.


컬리지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를 설명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최근 본 토플에서 예상보다 고득점을 받았을 때,

지난 2년의 시간이 숫자로 증명되는 느낌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분명히 나아지고 있었다.




회사로부터 육아휴직 종료 연락을 받고

퇴사 절차를 밟으며 마음 한편이 적적했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한국 엄마들과의 관계에서 멀어진 일도 있었지만,

대신 새로운 인연이 들어왔다.
경계가 분명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응원해주는 사람들.


조금 더 영어가 유창해지면,
내 생각을 100% 표현할 수 있겠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화려함 대신 현실을 택했고, 커뮤니티 대신 독립을 선택했다.


이번 이사는 단순히 집을 옮긴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조금 이동시킨 일이다.


이 집에서,
내가 생각해온 많은 것들이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더 나답게 살아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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