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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집아기

by 권옥순 Mar 14. 2025

섬집아기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1954년 시작된 국내 최초의 어린이 음악 프로그램으로 동요 보급을 위해 추억의 명곡부터 교과서 수록곡, 최신 동요까지 다양한 곡을 소개하고 함께 부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아이들이 동요를 많이 부르게 되었고, 학교에서도 동요와 창작동요를 많이 가르쳤다. 그러나

요즘에는 트로트가 유행하면서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이 많이 줄어들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어릴 때 바닷가에 가 본 적은 없었지만 바다를 상상하며 ‘섬집아기’란 노래를 좋아해서 자주 불렀다. 조용하게 시작되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서정적인 가락과 애틋한 노랫말이 좋았다. 초등학교 시절에 주로 불렀던 노래는 ‘반달’, ‘오빠 생각’, ‘흰 구름’, ‘가을길’, ‘가을맞이’, ‘찔레꽃’ 등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성악 전공하신 음악 선생님께서 가곡을 비롯해 좋은 노래들을 많이 가르쳐 주셨다. ‘동무생각’, ‘비목’, ‘목련화’, ‘님이 오시는지’, ‘사랑’, ‘수선화’, ‘선구자’, ‘고향의 노래’, ‘그네’, ‘그 집 앞 등 많은 가곡과 독일 민요인 소나무야(O Tannenbaum)를 원어로 축제 때 부르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특별활동 시간이 있었다. 전 학년 학생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부서에 가서 활동을 하는데,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미술부에 들어갔다. 그런데 하루는 머리가 벗어진 음악 선생님께서 미술실에 오시더니 갑자기 그림 그리던 나를 불러 강당으로 데려가셨다. 시골이지만 규모가 큰 우리 학교에는 강당에 피아노가 있었다. 선생님은 피아노를 치며 내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셔서 떨리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넌 이제부터 미술부 하지 말고 합창부 해” 하셔서 그날부터 합창부로 가게 됐다. 어리둥절했지만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기에 합창부도 싫지는 않았다. 워낙 숫기가 없던 나는 부끄러워 얼굴은 홍당무가 되면서도 소풍 가면 제일 먼저 불려 나가 ’ 물물이 골‘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께서 매년 가정환경을 조사한다고 TV나 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셨다. 우리 집에는 그런 것이 없어서 손을 들지 못해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가난은 창피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불편할 뿐이라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교사가 된 후에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신경을 썼다. 합창부 선생님이 나의 재능을 발견해 주신 것처럼. 

  노래는 가난도 이겨낼 수 있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앞으로’라는 노래를 가르치며 푸른 꿈을 심어주었고, ‘노을’이라는 노래로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감성을 불어넣어 주었다. 어두웠던 아이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노래를 싫어하던 남자아이들도 잘 따라 불렀다.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셨던 합창부 선생님을 떠올리며 틈틈이 동요를 많이 가르쳐서 지금도 제자들을 만나면 그 추억을 얘기하곤 한다. 

  중학교 때 이미자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가 있었고 가요도 많이 불렀다. 하지만 나는 가요보다 가곡에 관심이 많았고 좋아했다.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시창’과 피아노 음을 듣고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 넣는 ‘청음’에 능숙해 한때는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개인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포기했다. 그러나 평생 천직이었던 초등 교사는 내가 좋아하던 음악, 미술을 다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지금은 목소리가 예전처럼 올라가지 않아서 플루트, 첼로, 오카리나, 칼림바를 배우며 노래보다는 악기 연주로 음악을 즐기고 있다.

  정년퇴직을 한 후에도 기간제 교사로 학교에 나가 2학년 아이들에게 ‘안전’을 가르쳤다. 교과서에 동요가 실려 있지만 아이들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TV에서 트로트 열풍이 불면서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트로트와 아이돌 노래와 춤을 좋아한다. 트로트가 나쁜 음악은 아니지만 동심을 가꿔 주고 싶어서 매 수업마다 한 곡씩 동요를 가르쳤다. 신나는 음악에 길들여진 아이들이기에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지만, 조금씩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선생님, 오늘은 어떤 노래 불러요?”라는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보니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즐겁게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주 한 곡씩 가르치는 동요를 통해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아이들 마음이 아름다운 동심으로 가득 채워져서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동요로 아름다운 동심을, 어른들은 가곡으로 마음 뜨락에 서정과 사랑이 더해 가기를 바라며 ‘섬집아기’를 조용히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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