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루이의 언어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저번보다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결과를 받아 들고 일주일 동안 공부하고, 이 주간 생각했다.
지금 루이에게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
전에도 말했지만 루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네 개의 언어(네덜란드어, 영어, 한국어, 폴란드어) 속에서 세상을 시작한 아이였다. 루이가 스스로 선택한 언어는 영어다.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 언어이기도 했고, 코로나 시기에 계속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먼저 익혔다. 네덜란드어는 네 살 반부터 시작했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바로 학교에 들어갔으니, 기본적인 언어 습득의 여유도 부족했다.
루이는 다섯 살부터 언어치료(logopedie)를 받기 시작했다. 네덜란드는 언어치료가 잘 되어 있고 비교적 보편적이다.
학교나 부모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GP나 보건의 소견서를 받아 신청할 수 있고, 보험 적용이 되기 때문에 비용 부담도 없다. 다른 나라 상황은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여러 이유로 많은 아이들이 언어치료를 받는다.
나는 루이가 네덜란드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지 1년쯤 지나서 치료를 신청했다. 당시 담임은 ‘아직 필요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어느 순간 루이 발음이 크게 달라지는 시기가 있었다. 내가 먼저 이상하다고 지적하자 그제야 선생님도 동의했다. GP에게 소견서를 받아 동네 로호페디에 등록했고, 무려 6개월을 기다린 끝에 선생님을 배정받았다.
그 무렵 루이는 한국어를 알아듣기만 했고 말하지는 않았다.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루이의 주된 언어는 자연스럽게 영어였다.
첫 번째 언어치료사는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이십 대 초반의 선생님이었다. 열정적이었고, 30분 수업을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루이도 그녀를 만나러 가는 걸 좋아했다. 그때까지 루이는 단어량이 부족한 편이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고, 테스트 결과도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이사 문제로 그만두면서, 우리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다른 언어치료사로 옮겼다.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새 담당 치료사 멜라니와는 9개월을 함께했다. 그러나 태도가 매우 성의 없었고, 우리와의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았다. 영어로 이야기해도 이해를 못 하는 느낌이었고, 대화 중에도 집중하지 않는 기운이 강했다. 루이는 그녀가 수업 중 자주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자료라고 가져오는 것도 종이 한 장이 전부였고, 이전 선생님에 비해 난이도도 너무 낮았다. 결정적 문제는 테스트 결과였다. 이전보다 퇴보한 점수가 나온 것이다.
테스트지를 받아 하나하나 살펴보니, 루이가 평소 알고 있는 것들도 전부 틀렸다고 표시돼 있었다. 당시 루이는 막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테스트를 도와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멜라니가 평가한 루이의 언어연령은 세 살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몇 개월 동안 수업을 했는데 오히려 전보다 낮아질 수가 있단 말인가. 루이의 네덜란드어는 분명히 늘고 있었다. 만약 내가 네덜란드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결과를 믿고 멜라니를 따랐을지도 모른다. 지나고 보니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안일한 한 어른이 내린 결과가 한 아이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서둘러 다른 언어치료사를 찾았다. 한 달을 기다려 새 선생님 다미와 첫 상담을 했다. 다미는 전 기록을 보고 싶어 했지만, 우리는 새 테스트를 원했다. 테스트를 다시 진행했고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루이는 또래 네덜란드 아이보다 약간 낮은 정도였고, 대부분 단어량과 문장 구조의 문제였다.
언어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6개월마다 테스트를 본다. 하지만 6개월이라고 해봐야, 일주일에 25분씩 총 24회다. 너무 짧다. 결국 집에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매년 여름 네덜란드를 8주 정도 떠나 있고, 다른 휴가 때는 폴란드나 다른 나라에 머문다. 루이의 네덜란드어가 자연스럽게 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번에는 나도 너무 바빠 루이 언어를 충분히 챙기지 못했다. 이 부분을 설명했지만, 네덜란드 시스템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어쨌든 결과는 결과다.
다미와 상담을 이어갔다. 다미는 솔직하게 말했다.
“루이처럼 멀티링구얼 아이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확신이 없다.”
그 말이 오히려 신뢰를 줬다. 전문가랍시고 부모를 가르치려 들거나 성급하게 단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루이를 돕고 싶어 했다. 다미는 루이에게 멀티링구얼 전문 기관의 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네덜란드에는 언어치료 외에도 켄탈리스(Kentalis)라는 국가 기관이 있다. 켄탈리스는 난청·청각장애·언어발달장애·의사소통 장애를 전문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곳이지만, 난청·장애만 보는 것은 아니다.
루이처럼 여러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아이, 즉 다국어 아동의 언어 노출 구조, 각 언어의 발달 속도, 인지적 언어 처리 능력, 언어 간 전이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루이는 한 언어가 급격히 성장하면 다른 언어가 저성장 하는 패턴이 있다. 이번 여름에는 영어와 한국어가 많이 늘면서 네덜란드어가 거의 늘지 않았다. 그나마 퇴보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다른 다국어 가정의 부모들은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돕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우리는 켄탈리스에 대기를 넣었다. 학교에도 상황을 알리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다미에게 요청했다.
“이제부터 루이에게 문법 중심의 수업을 해 주세요.”
나도 집에서 루이와 네덜란드어 문법을 시작하기로 했다. 학교에도 문법 위주의 수업을 부탁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 난 날들이었다.